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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Jun 06. 2023

아이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

'이 영상 다시 돌려 보실게요.'

금쪽이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아이의 생활을 기록한 영상을 보고 놀라는 부모님들이 종종 계셨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가 선택한 행동을 미처 몰랐다가 미안해하며 우는 분들도 있었다. 내 아이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결국 금쪽처방은, 아이를 새롭게 바라보고 달라진 부모님들이 열쇠였다.  




영국에서 유아교육을 공부할 때, 아이들을 관찰 기록하는 과제는 실습 때마다 있었다. 한 아이를 정해놓고 한 발 뒤로 물러서 아이의 행동, 또래와의 관계등을 보이는 그대로 적는 것이다. 사람인지라, 자신의 시각에서 보긴 하겠지만, 되도록 주관적인 감정이나 판단을 배제하고 최대한 눈에 보이는 사실만을 기록한다.


이 관찰일지의 최대 수혜자는, 아이다.

예를 들어 보자. 바닥에 물이 쏟아져 있고 컵은 나뒹굴고 아이 옷이 젖어 있다. 아이는 아직 자기표현이 유창하지 않다. 다른 일로 바쁘던 선생님이 이 상황을 목격하고, 아이가 부주의해서 생긴 일이라 여기고 대처한다. 만일, 다른 아이가 물장난을 친 뒤 컵을 던져 놓고 도망갔는데, 우연히 옆에 있다가 물벼락을 맞은 경우라면? 아이가 부주의했다는 억울함은 풀어주고, 도망간 아이를 데려다 어지러워진 자리를 정돈하는 책임감을 알려주는 것은, 사건의 전말을 보고 있던 그 누군가이다.


이 외에도, 아이를 상세히 지켜보다 보면, 아이가 선택한 상황에 대한 퍼즐 조각을 다 갖고 있는 것과 같아, 아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따라서, 시기적절하게 아이에게 맞는 서포트를 할 수 있게 된다. 앞 뒤 맥락을 알고 접근을 하게 되니, 긍정적 관계 형성에도 도움을 준다.


이런 방식의 관찰일지는, 학교에서 근무할 때 쓰임이 많았다. 또한, 아이들을 관찰하는 습관은, 논문을 쓸 때 특히 도움이 되었다. Ethnography(에스노그라피)라는 연구방법을 적용했는데, 여기서 ethonos는 그리스어의 '사람들', graphein은 '기록'이란 어원에서 왔다. 즉, 사회와 문화의 다양한 현상을 현장 기록과, 현장 조사를 통해 이해하고 탐구하는 학문이다.


교실문화를 '다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새로운 눈'이었다. 이미 익숙한 교실에서 정답은 다 있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었다. 아주 단편적으로, 두 아이가 똑같은 문제 행동으로 학습 분위기에 영향을 주었다. 한 아이는 저소득층의 늘 말썽을 부리는 아이였고, 다른 아이는 칠레 출신으로, 아빠가 판사이고 영국으로 유학을 온 가정으로, 아이의 신체적 불편함으로 인해 특수교육 지원을 받고 있었다.


똑같은 행동에 대해, 사람들은 다르게 반응했다. 전자는, '사지 멀쩡한 아이가 왜 수업을 방해하는가'의 시선을 받는다. 행동에 대한 제재와 불이익의 경고를 받기 일쑤다. 아이는 종종 교실 밖에서 반성하는 시간을 갖곤 했다. 후자는, 전자에 비해 훨씬 관대하다. 아이가 처한 '특수한 상황'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반영되어 있고, 아이가 가진 귀염성으로, 문제행동이 '그럴 수도 있음'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전자는, 다른 학생들의 배움에 피해를 주는 취급을 강하게 받았다. 후자는, 다른 학생들의 도움이 많이 필요한 아이로, 반 학생들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했다. 삼 개월 정도, 관찰과 기록, 인터뷰와 두 아이에 대한 정보를 모두 모아 분석해 보고 난 뒤에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스로도,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던 상황에 대한 반전이었다. 단순히, 문제 행동에 대한 해결책은 없는가에 대해 질문을, 사회적 계층의 문제, 교육에 대한 민주적 시각으로 넓혀주신 교수님께 두고두고 감사하는 이유이다.


이때의 깨달음으로, 반에서 가장 어려웠던 아이와의 관계를 풀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여섯 살 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게 '되바라진' 아이라고 여겼었다. 아이도 나를 싫어했었다. 많은 아이들과 오래 생활했었지만, 이렇게 상극으로 매 순간 시험에 들게 하는 아이는 처음이었다. 아이와의 드라마틱한 관계 개선은 '새로운 눈'을 통해서였다. 그동안의 시각과 견해를 내려놓고, 아이를 다시 바라봤다. 아이가 친구들과 대화할 때, 과제를 풀 때, 혼자 시간을 보낼 때 등. 한 발 짝 물러나서 바라보았다. 전에 보지 못했던 퍼즐 조각을 찾고 나니, 아이가 달라졌어요는 저리 가라였다. 다른 아이였다. 한국으로 오기 전, 아이는 내게,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까지 말해 주었다.




저녁을 먹으라고 재촉을 해도, 아들은 딴청만 부렸다. 안방 베란다에서 물장난하는 아들을 발견했다. 이미 십여분이 넘게 밥 먹으라고 했던 터라, 급한 말 한마디가 나가기 직전이었다.


아들은 수도꼭지에 연결된 호스로 짧게 짧게 (소심하게) 물을 뿜어 보다가 우연히 힘조절에 실패하여 팍 터진 물줄기에 눈이 반짝였다. 그리고 조금씩 과감하게 물줄기를 쏘아 맞은편 문에 맞는 큰 소리를 즐겼다. 그래서 그냥, 모른척하고 돌아와 아들 없이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곧 있다가, 만족스러운 얼굴의 아들이 제 발로 와서 스파게티를 먹었다. 짧았지만, 그 과정을 보지 못한 채 물줄기를 쏘아대고 있는 대목부터 반응했다면... 순간적으로 밝아진 아들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면... 매우 불편한 저녁 시간이 되었으리라.




징검다리 연휴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시는 모든 분들께.

바쁘고 피곤한 일상, '새로운 눈'으로 일상의 활력을 지켜보시라는 의미로, 긴 글 적어보았습니다.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대상이 그 누구이든, 그 무엇이든.

천 개의 조각인지, 만 개의 조각인 지 알 수 없지만, 퍼즐을 맞춰나가며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새로운 조각을 찾을 때마다, 새로운 즐거움이 도착할 것입니다.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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