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약기운일까. 아들이 낮잠을 잔다.
가져온 어린 왕자 책을 집어 들었다.
It's a little lonely in the desert...
사막에서 만난 뱀과의 대화가 재미있다. 자신을 킹코브라보다도 강력하다고 소개하는 손가락만 한 뱀에게 어린 왕자가 말했다.
"You're not very powerful... You don't even have feet. You couldn't travel very far."
그러자 뱀이 말했다.
"I can take you further than a ship... Anyone I touch, I send back to the land from which he came."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이렇게 고상하게 하다니. 독성은 모르겠으나, 문장력은 강력하다.
다행히, 손가락 뱀은, 험난한 지구, 그것도 사막 한가운데 떨어진 어린 왕자를 가엾게 여긴다. 언젠가 어린 왕자가 자신의 별이 너무 그리우면 자기가 도와줄 수도 있을 거라는 자비로운? 도움을 암시한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 읽든, 뾰족함을 보듬어주는 매력이 있다.
어린 왕자는 까마득한 기억 속 사막을 불러냈다.
이스라엘 사막여행을 할 때, 가이드는 작은 씨앗 하나를 손바닥 위에 얹었다. 사막의 식물은 언제 물을 만날지 모르기에 한 방울의 물만 있어도 뿌리를 내릴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물병에서 조심스레 물을 떨어뜨렸다. 물이 닿자마자, 씨앗에선 솜털 같은 것이 일어났다. 애타게 물 한 방울 기다려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는 녀석. 준비된 생명이었다. 지금 찾아보니, 회전초 씨앗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집트 사막여행을 할 땐, 뜨거운 모래 바람이 기억난다. 스카프로 둘둘 말아 가려도 입속으로 끊임없이 씹히는 서걱서걱한 모래. 바람과 함께 살을 때리는 따가운 모래. 사막은 멀리서 바라보면 그 능선과 그림자가 하나의 예술 같지만, 정작 타들어가는 모래를 밟으며 힘들게 걸어 올라갈 때는 그 멋을 감상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개인적으로)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사막에서 무사히 지프차에 구조? 되어 오아시스에서 대접받은 이집트 꽃 차였다. (이집트 여행 당시, 관광객을 돈으로만 생각하는 그들에게 크고 작은 사기를 하도 당해, 혹시 우리를 데리러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살짝 걱정했더랬다.)
오아시스가 있는 마을로 들어설 때 바닥에 뭉개진 당나귀의 푸른똥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어린 왕자가 느꼈을 사막의 외로움이 오아시스에선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비슷비슷하게 살아가는 풍경을 보니 그 또한 참 반가웠다. 유일하게, 관광객을 손님으로 대접해 주었던 곳이었는데, 아쉽게도 그때 마을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곳의 기억을 더 부여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낮잠 자기 딱 좋은 정도의 편안한 자연광, 창 밖에선 차소리 복도 밖에선 아기 울음소리와 간호사쌤들의 짧은 대화 소리가 섞여 들렸다. 그래도 아이는 기침 없이 곤히 잔다.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 주어졌다. 외롭다고 느끼지 않았는데, 어린 왕자가 사막에서의 외로움을 논하니... 갑자기 병실 안이 적막하게 느껴졌다.
701호 우주 엄마도 그랬을까.
휴게실에 들어섰을 때, 아이는 링거 걸이는 방 끝 편에, 자신은 다른 편 끝에 앉아 있었다. 엄마는 무표정하게 핸드폰을 보고 있었고, 아이는 누워서 티브이를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일단 스탠드를 아이 쪽으로 붙여주고 옆쪽으로 앉았다. 아이가 몸으로 장난을 치다가 뻗은 발에 엄마가 맞아 아파했다. 남자아이들의 발차기는 주의를 요한다. 아프다. 엄마가 조금 진정이 되어 보여 아이의 나이를 물으면서 둘의 신경전을 다른 데로 돌려보고자 했다.
마침, 아이의 링거 스탠드에는 종이 접기가 한가득 꽂혀 있었다. 종이접기를 잘하는 모양이라고 하자마자, 엄마는, 발에 차인 옆구리의 고통을 잊고 금방 신이 나, 학교에서 종이 접기로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접힌 종이를 꺼내 보이면서, 아이가 독자적으로 접은 거라며 만개한 잇몸을 보여주었다. (동남아 분인 듯한데, 굳이 어느 나라인지 묻진 않았다. 영국에선, 길 가다 만난 사람도 Chinese or Japanese? 냐고 물었다. Korean이라고 하면, North or South라고 묻는다. 가던 길 그냥 가세요 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휴게실에 들어서면서 본 굳은 인상은, 일곱 살 아들의 종이접기 얘기를 할 때 찾아볼 수 없었다. 병원이란 환경에서, 물리적으로 가깝게 다가가기는 서로 조심스럽다. 그래도, 기회가 되어 아이의 안부를 묻고 인사를 나누며 잠깐은 웃는다. 유독 아이들 이름을 불러주며 친근하게 웃어주는 쌤들이 있다. 덕분에 덩달아 웃는다. 이마저도 없으면, 병원도 사막과 다를 게 없지 않을까 싶다.
아이와의 24 시간 함께 작은 공간에서 부대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돌이 갓 지난 아기 엄마는, 파트너에게 00 이도 주사 맞아 아프다고 빨리 오라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약물치료로 신경이 한 층 더 예민해져 있고, 활동량도 축소되어 이래저래 스트레스가 쌓여 있다. 아들도, 어제오늘 생떼가 늘어 새벽 다섯 시부터 심신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다 또, 평소보다 길어지는 낮잠에... 괜히 머리를 쓸어준다.
아들과 약먹이는 것, 호흡기 치료, 밥 먹는 거, 심심함을 달래주는 것, 예민해진 심기 받아주는 동안에는 홀로 사막을 걷는 느낌이다. 그러다, 안정을 찾고 '엄마 안아줘' 하며 웃으면 언제 그랬느냐 다시 힘을 내본다.
사막과 오아시스는...
이집트에도 있고
오늘을 사는 이 마음속에도 있다.
僕はとてもうれしい。보쿠 와 토테모 우레시이. 나는 매우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