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생각난 그림책
병원에서의 하루는 오전 7:30분 회진으로 시작되었다. 긴 하루를 알차게 보내볼까 나름 기대했었다. 웬걸. 시간이 많이 있다 생각했는데, 한 일도 없이 하루가 갔다. 병원에서의 일상이 그렇듯, 때마다 약 챙기고, 띄엄띄엄 밥 먹고. 간단한 설거지를 해놓고. 바닥에 늘어진 물건을 정돈하고 나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 문득, 마음씀님의 <둘둘 말린 것들의 속성> 이 떠오른다. (하단부에 링크로 공유합니다.)
제한된 공간이, 아이와 보호자 모두에게 갑갑함을 선사했다. 아이는 짜증으로 어른은 지침으로 반응했다. 그러다, 전주 그림책 전시에서 보았던 이지수 작가님의 <움직이는 ㄱㄴㄷ> 이 생각났다. 이전까지, 아이들 한글공부용으로 나온 ㄱㄴㄷ 은 명사 일색이었는데, 2006년도에 동사로 표현한 책을 선보였다. 동사. 제목이 왜 움직이는... 인지 알 것 같다. 재미있고 신선한 발상이다.
ㄱ 으로 시작하는 수많은 단어 중에, '가두다'를,
ㄷ 으로 시작하는 수많은 단어 중에, '다치다'를,
ㅂ 으로 시작하는 수많은 단어 중에, '부러지다'를 선택한 작가님의 성향이 다소 부정적인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서평이 있어 오히려 놀라웠지만... 우리는 모두 ㄷ is for 다르다. 니까. ㅂ is for 받아들이다. 하기로 했다.
병원에 있으면, 시간이 많아 주야장천 책 읽기 딱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컨디션이 별로인 데다 약기운에 헤롱 하니, 생각보다 글자가 잘 들어오진 않나 보다. 평소보다 감정기복이 심해지고 눈물이 많아진 아들에게, 직관적이고 단순한 책이 좋을 것 같아 이수진 작가님의 책을 주문했다. 배달 오기 전에 퇴원하자.
색색이 점토로 만든 도넛 사진을 보면, 슬기로운 병원 생활을 하고 있는 듯싶지만... 정말 딱 십 오분 정도였다. 아이의 관심이, 손 하나로는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좌절감으로 바뀌어 결국 도넛이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쓰이기까지. 이 많은 병실이 거의 다 찬 것을 보면, 그만큼의 숫자만큼 놀고 싶은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리라. 어서어서들 나아서, 양손 가볍게 흔들며 실컷 뛸 수 있기를.
링거 줄이 치렁치렁 흔들리다 묘하게 바퀴 밑으로 들어가 있곤 한다. 들어갈 땐 순식간에 혼자서 들어가 놓고, 나올 때는 꼭 누군가가 바퀴를 들어 올려야 나오는 현상이 잠깐의 움직임에도 여러 번 발생했다. 누군가, 이 불편함을 해소해 준다면 참 좋겠다. 아니, 근본적으로 블루투스처럼 무선 수액주사가 발명될 수 있다면... 노벨의학상감이리라.
자유롭지 못하다는 심리적 요인으로 한 가지 덕을 보고 있다면, 갑자기 식욕이 늘었다는 것이다. 한정된 자원의 토마토는 이전보다 훨씬 달게 느껴졌다. 집에서 싸 온 밥도 김치도 모두 더 맛있다. 보호자가 더 잘 먹어야 한다며 보자기에 바리바리 싸서 보내온 할미의 마음이 끼니때마다 감사함으로 전해졌다.
감사 호르몬으로 잠깐 장난이 치고 싶어졌다.
ㄱ is for 기르다. 감사하다.
ㄴ is for 낳다. 나누다.
ㄷ is for 다양하다. 다행이다.
ㄹ is for ㄹㄹㄹㄹㄹ
ㅁ is for 모르겠다.
https://brunch.co.kr/@photothink/723
병실이 다소 덥다. 겸사해서 기억해 보는 한 줄.
暑いですね (아츠이데스네) - 덥네요(It’s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