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씀 May 19. 2023

둘둘 말린 것들의 속성

# 두루마리 화장지 같은 존재들


인생은 두루마리 화장지 같아서, 처음에는 아무리 써도 남을 것 같지만 반이 넘어가면 언제 이렇게 빨리 줄었나 싶게 빨리 지나간다고. 그 얘길 들으니까 나도 뭘 위해서 이러고 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천명관, '유쾌한 하녀 마리사' 중)



처음에는 모든 것이 많아 보인다. 


특히 시간이 그렇다. 출장 나온 첫날에는 언제 출장이 끝나나 싶다가도, 벌써 다 지났네, 하며 복귀를 준비하게 된다. 우리가 사는 것도 일과 같아서, 출장지에 도착해 두리번거리다 보니 훌쩍~ 절반의 시간이 지났다. 출장 목적을 고민하다 또 절반의 시간을 흘려보낸다. 마침내 돌아갈 시간이 되어서야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며 후회를 하는 것이다. 어느새 심지가 드러나 보이는 얇아진 두루마리 화장지를 보며 생각한다. 신이 나를 여기에 출장을 보낸 이유에 대하여.



보통 두루마리 화장지는 70m라 한다. 


요즘에는 기술이 발달하여 80, 90, 100m 화장지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지금 내 인생의 화장지는 얼마나 썼을까? 아마 절반은 훨씬 더 쓴 것 같다. 하긴 내가 사놓은 화장지라고 나만 쓰는 건 아니지. 내 인생이라고 내 맘대로 사는 게 아닌 것처럼. 살면서 둘둘 말린 것들의 속성을 명심해야 한다. 처음에는 언제 다 쓰나 하다가도, 절반이 넘어가면 왜 이렇게 빨리 주는 거야? 할 정도로 급격히 줄어드는 사기성 말이다. 분명히 남아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운데 휴지심에 붙은 몇 조각이 내 남은 인생의 전부일 수 있으니, 부디 정신 차리자.





어느 자리에 있는지는 중요치 않다. 얼마나 썼고 얼마나 남았는지도 중요치 않다. 세상을 위해 쓰였냐가 본질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음식을 나누는 원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