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씀 May 08. 2023

음식을 나누는 원칙

# 있는 밥상에 숟가락 더 얹기


가짐보다 쓰임이 더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더 중요하고,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욱 중요하다. (승효상, '빈자의 미학' 중)



음식은


자기가 먹는 것을 나누는 거라고 했다. 있는 밥상에 숟가락 하나만 더 얹으면 되는 것이다. 그래야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부담이 없고, 편안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작심하고 준비한 특별한 음식보다, 그냥 있는 그대로 내놓는 국수 한 그릇이 더 먹고 싶은 법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집밥이 먹고 싶어 군대에서 휴가 나온 아들에게 비싼 음식을 사주려고 애를 썼다. 부모로서 그게 당연하다 생각했지만,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살면서 무언가 잘해야겠다는 의무감을 갖지 않아야 한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 우리가 '사랑을 한다.'라고 할 때, 사랑은 정말로 무얼 하는 게 아니다. 특별히 무엇을 어떻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일상 그대로가 '사랑'이어야 하는 것이다. 내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는 것처럼.



옛날 거지들은


가난한 집 음식은 그냥 먹었지만, 부잣집에서 얻어 온 음식은 반드시 끓여 먹었다고 한다. 부자는 자기가 먹는 것을 주는 게 아니라, 먹다 남은 것을 주기 때문이라 한다. 쓰는 것을 주는 것은 나눔이지만, 남는 것을 주는 것은 버림이다. 먹고 남은 것을 주는 게 아니라, 주고 남은 것을 먹는 거라는 우화가 생각난다. 그동안 나눔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버림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나누는 음식도 '선물'이라 생각한다. 쓰다 남은 것, 먹다 남은 것을 선물이라 할 수 있을까. 쓸모없는 것을 지인에게 선물하는 사람은 없다. 선물이란 나에게 최선인 것을 주는 거라고 배웠다. 나한테 아깝고 소중한 것이라야 선물의 자격이 있는 것이다. 나눔은 주고 난 뒤에 채워지지만, 버림은 준 뒤에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자.



초식동물의 식사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무엇을 먹고 마실지를 생각하기보다는, 누구와 먹고 마실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하며, 그 이유는 친구 없이 혼자 식사하는 것은 사자나 늑대의 삶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헐, 그동안 우리 모두는, 예외 없이 육식동물(사자나 늑대)이 되었다. 동료가 굶주려도 혼자서 제 배를 채우는... 물론 코로나 상황에서 강제이격 된 채 혼자 밥을 먹었지만 말이다. 굳이 이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초식동물의 식사를 했으면 좋겠다. 목초지를 발견하고 큰 소리로 친구들을 불러 모아, 한자리에서 같이 먹는 초식동물로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





안 먹었구나? 이리 와 같이 먹자.


매거진의 이전글 혼자가 아닙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