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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Jul 05. 2023

내가 누군지 알려준다는데

궁금하지 않으세요

오랫동안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이미 이렇게 생겨서 이렇게 살고 있는데, 굳이 수많은 질문을 거쳐, 그래요 이게 바로 나예요... 하며,

내가 누군지 확인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가끔, 자신이 극 소심한 성향임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것을 보았다.

과연 진정한 소심함인지 소심을 가장한 대범함 인지 구분이 어려웠다.

그래서, 더욱 신뢰가 가질 않았다.


그러나, MBTI는 알고 있었다.

한 번 알고 나면, 이 테스트에 가장 깊고 빠르게 빠져들 타입이라는 것을.

어쩌면, 스스로를 알기에 이 오랜 세월 세상과 무관하게 시작조차 안 하려 했던 것일까.

급기야, 영국 친구들한테까지 유형을 묻기 시작했다.

가볍게 나눌 대화 토픽으로 내겐 딱이었다.


아이들 영어만 재미있으란 법 없다.

성인들의 영어도... 뭐 좀 재미가 있어야 계속 달릴 힘이 나지 않을까.


아이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들어간 알파벳 이니셜에 관심이 많다.

성인들이라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자 하는 것에 관심이 가지 않을까.

순수한 재미로. 그래서 선택해 보았다. 영어로 해보는 MBTI.


https://www.16personalities.com/free-personality-test


집에서 영어로 할 말이 은근히 없어서, 영어로 대화하는 게 어렵다는 호소를 들었다.

한 편에서 테스트 질문을 크게 읽어주고, 답변하는 방식은 어떨까. 아이들 앞에서 엄마 아빠가 영어로 십 분이상 대화하는 장관을 연출할 수도 있겠다.


영어공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아는 언니가 있다. 한 번 해보라고 보냈더니, 파파고 돌려서 해석해야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결국 다 해낸 언니에겐, 내게 없는 글자가 세 개나 있었다.


언니의 제보에 따르면, 외국인들은 오히려 MBTI를 신뢰하지 않거나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이 유난히 사주나 MBTI에 집착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러게. 흥미로운 질문이라 더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아직까지, 내가 재미로 물어봤던 영국 친구들의 부정적 반응은 없었다. 그저 가볍게 서로 니껀 뭐냐 물어보고, 나는 무엇일 것 같으냐 맞춰봐라 하는 정도의 가벼운 대화가 오간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떤 타입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알게 되는 것도 나름 흥미로웠다.


혹시, 누군가 MBTI 자체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면, 또 그에 맞는 대응을 하면 된다. 나도 뭐 그렇게 믿는 건 아니다. 요즘 유행이라 한 번 물어봤다. 그나저나 너는 뭐 그렇게까지 부정적이냐. 아 그렇구나. 그것도 일리가 있다. 왜 사람들은 여기에 의미를 둔다고 생각하냐. 아, 그거 기가 막힌 접근이다. 전에는 그렇게 생각 못해봤다. 맞다 맞다. 생긴 대로 자신을 사랑하며 열심히 살면 된다. 네 말이 맞다.


여기에서 MBTI는 도구다. 편안한 대화의 창을 여는 가벼운 도구. 모든 창이 다 활짝 열리진 않을 수도 있지만, 두드려는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는 언니는, 영어가 짧아서 이렇게까지 물으며 대화를 이어가기는 힘들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일단, 한 문장 잘 만들어 놓았다가 두고두고 써먹어 보시라 했다.


이것은, 대학교 시절, 짧은 캐나다 어학연수 시간에 했던 방법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1. 하나의 답변을 준비해 놓는다.

2. 상대를 바꾸어 대화를 한다. 이때 상대의 질문은 같다.

3. 준비해 놓은 답변을 다른 상대와 얘기하다 보면, 달라진 파트너 수만큼 반복하게 된다.

4. 유창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누군가 이 비슷한 질문을 하면, I'm fine thank you and you?처럼 자동으로 나만의 답변이 준비되는 것이었다.


재미를 설득해야 하면 지는 것이긴 한데...

아무튼, 한 번 해보고 흥미를 느낄 수 있다면

밑져야 본전.


Try. Nothing to lose.



だめでもともと. 다메데 모토모토. 밑져야 본전.

모토모토...이건 기억하기 좀 쉽다.


photo: <WHO AM I?> by Valma Murray, DD.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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