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 Lee Jul 09. 2023

그들이 하는 말을 하라고

아들이 알려주었다.

몇 달 전 만났던 다섯 살 아들 또래 일본 친구와 다시 연락이 되었다. 두 번째 만남은 의도적으로 도서관으로 정했다.


만나기 전, 한국말보다 일본어와 영어로만 소통을 하기로 일본인 어머니의 협조를 구했다. 어머니는, 아이도 본인도 영어를 잘 못한다며 걱정을 했다. 괜찮다고 했다. 다행히, 일본어를 위해 언제 어디서나 엄마와는 일본어를 쓰는 것이 당연한 아이였기에, 아이와 하던 대로 일본어로 소통하시라 했다. 아이가 한국말을 하고 싶으면 당연히 할 수 있다는 전제이지만, 일단 우리의 기본 공통어는 일본어와 영어였다.


얼마 전 만났던 대표님과의 경험으로, 아이들에겐 상대의 언어를 인식하는 초기화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에 착안한 제안이었다. 대표님은, 영어 문장도 아니고 영어 단어만 던졌다. 그럼에도 처음 보는 사람이 자기에게 한국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자 당연하다는 듯 영어로 소통을 했다. (비록, 엄마와 한국말로 얘기하는 것을 보았음에도, 아들은 영어를 썼다. 참고로 그 분은  한국분.)




두 번째 만남이긴 해도, 본 지 몇 달이 지난 터라 두 아이는 서로 서먹했다. 게다가 한글책을 골라 읽어 달라 하니, 한글 책을 일본어로 혹은 영어로 바꾸어 읽으며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럼에도 어른들은 침묵을 할지언정 성급히 한국말로 어색함을 털어내지 않았다.


우리 모두를 살린 건, 만국 공통의 언어, 색깔 이야기였다. 어느 순간 두 아이가 나란히 어린이용 소파에 앉고, 골라온 영어책 중에 아이가 관심을 보인 책을 읽어 주십사 일본 어머니가 책을 건넸다. 자연스럽게 책을 읽어주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서로 좋아하는 색 이야기로 넘어갔다. 일본어로 색을 어떻게 말하는지도 배웠다. 아이들의 긴장이 조금씩 풀려가는 게 보였다. 아이가 학원에서 배웠을 법한 영어도 가끔 흘러나왔다.


일본인 엄마, 한국인 아빠. 아들 또래 여자 아이와 세 살배기 남동생. 이렇게 네 식구는 일본어로 말을 주고받았다. 영어로 말을 섞으려 하자, 아들은 내게 귓속말로, 일본에 사는 사촌형이 쓰는 말을 하고 있으니, 그들이 쓰는 언어를 쓰라며 자기도 일본어 쓰는 흉내를 냈다.


아이들의 언어 습득이 상대적으로 빠른 이유가, 이런 말랑하고 유연한 생존 본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저 사람이 쓰는 말로 얘기를 해야, 상대가 알아듣는다는 기본적인 사실. 다만, 그 사람의 언어를 내가 아직 모르니 일단 좀 들어봐야겠다는 접근. 듣다 보니, 이 상황에서 저 소리를 내는 것 같으니, 이 말이 그 뜻일 것 같다고 유추. 다들 조곤조곤 재미나게 이야기를 하니, 나도 끼어 한 마디 해보고 싶은 본능. 들은 대로 일단 한 번 투척하고 반응을 살펴보는 실험정신. 


다중 언어를 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말하길, 자신들은 언어 천재가 아니라고 한다. 인간의 뇌에,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장치가 들어있다고 촘스키 양반이 알려주었다. 그들은, 우리 뇌에 있는 장치를 효과적으로 이용한 것뿐이다. 거기에, 이해 가능한 인풋이 있으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밥을 먹고 소화를 시키듯,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크라센 할아버지가 오랜 세월 일관성 있게 많은 증거 보여주면서 말이다.


한 줄 영어, 한 마디 아웃풋의 본질은 효과적인 인풋과 아웃풋의 선순환 만들기이다. 인풋만 있고, 언어로 아웃풋 할 곳이 없는 아이들에게, 아웃풋의 공간을 만들어 줄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의미 있는 아웃풋을 통해 말하는 재미와 언어를 배우는 의미를 스스로 알게 해 주자고, 이중언어 하는 아이의 엄마가 다문화 그룹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어디로 어떻게 얼마나 갈지는 모르지만, 높은 파도에도 현명하고 유쾌하게 대처할 수 있는 선주로서 방향키를 잘 잡아보려 한다.


물론, 어딘가에 또 다른 다문화 그룹이 형성되어 있을 터인데, 막상 아이가 편하게 조인해서 또래들과 한 마디 해 볼 기회는 근처에 그리 많지 않았다. 혹시, 찾으신 분... 알려주세요. Please.  


버스를 타고 가다가, '맛있는 안주 있는 술집 찾아다니다가 직접 차린 술집' 비슷한 내용의 간판을 본 기억이 난다. 자꾸, 이 집 사장님 마음이 떠오른다. 안주만 맛있다고 가게가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아니기에. 부디, 배가 산으로 가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누굴 닮았을까. 금사빠 아들 녀석이 이쁜 친구에게 자꾸 뽀뽀를 시도해서, 영어는 꼭 영어만의 문제가 아님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해 주었다. 그래도, 도서관, 책, 새로운 언어... 이 모두가 달콤하게 기억될 수 있다면... 한 번 가보즈아.


우리 모두를 살린 고마운 스토리 공유합니다.


삼원색이 섞인다는 뻔한 이야기일 듯 하지만, 동글동글 귀여운 아이들이 주니어까지 탄생시키는 글과 그림은 뻔하지만은 않다.


<MIXED : A colorful story> by Arree Chung

https://www.youtube.com/watch?v=mn0ep5u0kZo





むらさきいろ. 무라사키이로. 보라색

きみどり. 키미도리. 황색을 띤 녹색. (설명된 색이 와닿지가 않는다. 노란색이 섞인 녹색이면 연두란 말 아닌가.)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누군지 알려준다는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