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한 타입
유아풀 미끄럼틀.
신이 나서 무한 반복 층계를 오르내리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엄마가 내려가보라 응원해 주고, 아빠가 받아준다 내려오라 해도 요지부동인 아이도 있다.
신기한 것은,
선뜻 내려오지 않는 아이들이
안 타겠다고 층계로 다시 내려가지도 않는다.
타고 싶은 마음과 무서움의 갈래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일단은,
미끄럼틀 앞에 버티고 서서 움직이지를 않는다.
그나마 아직 앉지 않았다면, 다음 차례 아이가 먼저 내려가기라도 하는데.
앉아 놓고 내려올 생각을 안 하면, 뒤에서 아기를 세워 놓고 기다리는 엄마도
그 엄마를 뒷배경으로 자신의 아이를 바라보는 아빠도 살짝 애가 탄다.
미끄럼틀에 물이 나오고 있어서
살짝 움직이면 미끄러질 텐데, 용하게 자리 잡고 앉아서 꿈쩍을 앉는다.
그러다 아이는 도저히 안 되겠는지 되돌아 나오려고 몸을 돌리는데,
그 순간 몸이 미끄러지며 오히려 방향을 잃어 머리를 살짝 부딪히며
엉겁결에 내려온다.
그리고 물에 빠져 놀라서 운다.
아빠는 아이를 안아 들어 올리며,
무서웠느냐고 달래준다.
미끄럼틀 앞에서의 망설임.
별것도 아닌데.
내 아이 뒤로 줄이 늘어서면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을 듯싶다.
또 다른 아이가 주저하며 버틴다.
엄마가 어떻게든 태워 보려 해도 발버둥을 쳐서 거부하는 동안,
다른 아이들을 몇 명이나 먼저 내려보내는 동안,
아빠는 내려와 보란 말도 포기하고 팔짱을 끼고 말았다.
조그만 아이들은 미끄럼틀 위에 서서 버티고.
덩치 큰 아빠들이 무릎까지 오는 물속에서 나란히 모여 서서
내려와 보라 어르는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물놀이 가는 모든 이들을 응원하고 싶어졌다.
모두가 꿈꾸었을 한적한 인피티니 풀장 사진으로 위로를 대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