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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Jul 15. 2023

물불도 안 가리고 사랑하는 추세인데

노키즈존도 격리해제하면 안 될까요.

주기율표 한 칸 한 칸이
가족이 모여 사는 아파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한창 상영 중인 <ELEMENTAL>을 보았다. 그동안, 트레일러나 짧은 영상으로만 조금씩 보던 아들과 한국을 방문한 사촌형의 첫 영화관 경험. 광고포함 두 시간이 되는 시간, 잘 볼 수 있을까 했는데. 녀석은 화장실 한 번 다녀오고 가끔 살짝살짝 몸을 꼬다가, 뒤에 앉은 사람들과 영화관을 잠깐씩 둘러보더니. 엔딩 크레디트 음악이 끝날 때까지 앉아 있었다. 그러더니 또 보고 싶다고 했다.


불답게 화끈하고 민첩한 불의 원소 Ember. 그녀 목소리를 연기한 Leah Lewis를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더 몰입이 되었다. 그녀 특유의 살짝 허스키한 느낌이, 내겐 매력 포인트였다. 그녀는 8개월 아기일 때, 중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되었다고 한다. Leah 양부모님은 같은 보육원에서 또 다른 아기를 입양해서 키웠다고 한다. 내 아이 하나도 허걱거리는 입장에서, 존경스럽다. Leah의 녹음영상을 잠깐 보니, 밝은 에너지가 통통거렸다. 그녀의 삶을 속속들이 알 순 없겠지만, 일단 보이는 모습으론 사랑스럽고 매력적이다. 잘 커준 그녀도, 마음으로 품어준 부모님도 고맙고 멋지다.


영화를 스포일 할 생각은 없고, 이미 세상이 다 아는 부분만 얘기해 보자면. 물, 불, 흙, 공기 사원소들끼리는 섞이지 않는 불문율을 넘어, 뜨거운 Ember (엠버)와 차분하고 감성적인 Wade (웨이드)가 사랑을 하게 되고, Ember는 자신의 길이라 믿어왔던 허상을 내려놓고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는 것. 픽사에서 유일한 한국계 감독 피터 손이 자신의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담았다는 내용을 알고 보면, 마음이 한결 뭉클해진다.  


화학 주기율표에서 영감을 얻은 손 감독도, 애니메이션을 하기까지 부모님의 반대를 겪었다고 한다. 영화 속 Ember는 손 감독의 삶과 많이 닮아 있다. 특히, 불 원소만의 특별한 의식인 듯 보이는 모습은 우리에게 익숙한 큰 절이다. 긍정적인 한국 문화의 힘이 불같이 일어나길 바래본다. (영화 자체는 흥행 성적이 저조하다고 말이 좀 많은 듯 하나...) 노란 불 켜진 영화관에서 듣는 엔딩 크레디트 음악은 마냥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O9_b5c8rVQ




저녁 뉴스에 서울시가 부모님들과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을 위한 '서울키즈 오케이존' 사업을 시행한다는 소식이 나왔다. 서울의 '키즈 오케이존'은 사업 추진 9개월 만에 500곳을 넘는 성과도 보도가 되었다.


2021년 11월 한국리서치에서 주관한 노키즈존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사업주가 행사하는 정당한 권리이자 다른 손님에 대한 배려'라는 명목으로 노키즈존 운영을 허용할 수 있다는 응답이 71%에 달한 반면, '허용할 수 없다'는 비율은 17%에 그쳤다고 한다.


노키즈존이 압도적인 지지로 허용될 수 있었던 그 배경을 전혀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2017년 영국의 텔레그래프에도 아이들은 출입을 제한한다는 레스토랑 방침에 반한 기사가 나온 것으로 보아, 한국에서만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진정 이 방법밖엔 없는 것일까.


출입이 안 되는 대상을 걸러야 하는 종업원은, 유모차 속의 아기와 엄마손을 잡은 아이가 옆에 있다면 어떤 표정으로 그들을 맞이할까. 심리적으로, '막아야 할 대상'이 먼저 떠오르진 않을까. 그 눈빛을 경험한 엄마와 아이는, 여기저기에서 거절을 당하고 물러나야 했던 Ember 아빠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듯싶다. 넌 불이니까, 다른 곳으로 가라고. 너희와 섞이고 싶지 않다고. 불이라서 역시 안된다고.


남녀노소 누구를 불문하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면 조심해야 하는 것이 맞다. 아이가 뛰어다니며 소란을 일으키면, 부모님이 제재를 하고 아이가 자신과 동행할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을 가르치는 게 맞다. 엄마들의 모임에서, 엄마와 아이와 뒤섞여 정신없는 속에서도 누군가는 타인을 배려하는 중심을 잡고 목소리를 낮추고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있는 곳을 꾸준히 알려주고, 자리에 맞는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소란을 피우는 아이들에게 눈살을 찌푸리기보다, 조용히 해주어야 하는 매너를 웃으면서 알려줄 수도 있다. '감히 내 아이에게' 라며 들고 나서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것은 노키즈존의 문제가 아니라 노 무개념의 문제이지 않을까. 울고 있는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기에게 웃긴 표정을 지어 보여주면... 더 우는 아이도 물론 있겠지만 잠시 울음을 멈추고 우리의 미소를 바라볼, 그리고 그 표정을 기억할 아기도 있다는 것을 알아 주었으면 한다.


아이들이 자라, 이 사회에 대해 무엇을 기억할까.

노키즈존의 정책을 선택하신 사장님의 마음도 이해가 가지만, 앞으로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를 고려해 본다면... 물불도 안 가리고 사랑에 빠지는 추세를 한 번 따라가 보면 어떨까 싶다.


누군가 유리를 깼을 때, 유리니까 깨지지. 라며 괜찮다고 해 주었다는 문구를 읽은 기억이 있다.

아이들이 울 때, 아이니까 울지요... 저기 조용히 쉴 수 있는 방이 있어요... 조금 쉬다 오세요 할 수 있다면

엘리멘탈의 기적은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자리 잡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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