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놀했네요.
"자전거 타러 나가자."
페달 밟는 재미를 알아버린 아이는 저녁을 먹고 나면, 엘리베이터 앞에 자전거를 세워 두고 먼저 기다렸다.
저녁시간이라 한산해진 단지에, 아빠와 딸이 자전거로 트랙을 돌듯 담담히 돌고 있었다. 아이는 앞에 가고 아빠가 뒤에서 말없이 따라갔다.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아들의 네 발 자전거를 보고 두발 타는 자신이 스스로 대견하게 느껴진 걸까. 바른 자세로 타던 아이가 갑자기 핸들을 지그재그로 흔들어 아들의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순간 뒤에서 들려온 한 마디.
"까불지 마라!."
"..."
한시도 무릎 성할 날 없고, 어딘가 멍들고 긁히고 생채기에 피딱지가 앉아 있는 아들을 보면서, 왜 그 말이 나왔는지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귀한 딸내미 까칠한 바닥에서 넘어질세라 던진 사랑의 경고문구였겠지. 그래도 그렇죠 아버님, 그렇게 낮은 목소리에 표정도 없이 말씀하시기는.
내 아이가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말일터인데. 제삼자는 그 말을 듣고, 혹여나 섬세한 아이 내면에 이상기후 생기지 않을까 아이 표정부터 보게 되었다.
물론, 부녀의 끈끈한 관계 + 아이의 성격 + 톤과 상황 등이 모두 어우러져, 정작 아이가 쿨하게 넘기거나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까불지 마라 보다 조금 포실포실한 표현이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까불다'를 국립 국어원은 잘난 체하고 분수에 맞지 앉게 행동할 때 쓰는 말로 정의한다. 까불다의 어원으로 보면, 절구에 찧은 쌀을 키로 까부르며 빠르고 민첩한 행동을 의미한다고 했다. 어느 의미로든, 까불지 말라고 하면 긍정적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우리 딸, 그런 신기술이 있었어. 균형 감각이 좋은데. 자전거 타고도 춤을 춘다. 역시 대단해. 그래도 앞에 보고 조심하자. 옆에 동생이 자전거 타고 있으니 주의하자. 등등.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의 출발선은 같은데, 우리의 표현은 어찌하여 분수에 맞게 행동하라고 하는 것일까.
소아정신과 지나영 의사쌤이 한국에만 오면, 자신이 미국에 살면서 잊고 있었던 단점들을 (애정 어린 사랑이라는 명분하에) 시시콜콜 잘 알려준다고 했다. 얼굴이 왜 이렇게 부었냐. 피부는 왜 이러냐. 옷이며 머리는 왜 이 모양이냐. 영국에 있다가 들어왔을 때, 비슷한 소리를 들었던 터라 이 영상을 보고 격하게 공감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듣기 싫은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영국, 특히 런던이 편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사소한 개인 생활이나 외모에 코멘트를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좋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적당한 선에서 기분 좋게 표현해 주는 문화 속에서, 한국에선 이미 한 마디 들었을 패션도 센스나 개성으로 존중되었다. 살다 보니, 이쁘다며 쫓아온 사람도 있었다는 말에, 원래 서양인들이 동양의 토속적인 미를 좋아하잖아.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어머나, 이 분, 대놓고 뭐래니. 속으로만 움찔했었다.
김창옥 강사께서도 우스갯 말로 자기 친엄마가 미국인이어서 언젠가 자기를 데리러 올 줄 알았다는 말. 섬세한 감성에 강한 표현이 녹아들지 못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농담 반 진담 반 말했을 감정이 이해된다. 살아남기 위해 강해진, 파란만장한 역사를 견디며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 꾹 눌러 금세 터질 것 같은 감정이 우리 속에 남아 있다는 증거이겠지만, 그게 편치 않은 DNA도 있다.
대부분의 우리 부모님 세대가, 컵에 담긴 뜨거운 물을 쏟으면 그들의 고단한 삶과 아이에 대한 걱정과 서툰 감정이 뒤섞여 '화'처럼 반응했으리라. 차분하게 '괜찮니, 다친 데 없니'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아이에게 '괜찮니, 다친 데 없니'라고 조용히 묻기 어려울 수 있다.
'까불지 말라는' 그 본마음은 안다. 한 시간여를 그렇게 자전거 타는 딸아이 뒤를 묵묵히 함께 돌아주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각도를 바꿔보고 생각의 전환이 오면, 마음을 전하는 말도 달라질 수 있다. 감정이 올바르게 전달된 언어를 통해 아이의 미래도 변한다.
별생각 없이 핸들 한 번 지그재그로 흔들어 봤다가, 까불지 말라는 반응을 받은 아이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아이 표정만으로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아빠의 속뜻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명랑 상쾌하게 트위스트 추는 성향이기를 바래본다. 그래서 정작, 아이는 괜찮은데 에세이는 다른 집 엄마가 쓰고 있는 걸로. 그렇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kqMRo8XgWVQ
すてき 스테키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