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길은 아웃풋.
조카가 가져온 일본 여름 방학 숙제 교재를 보았다. 알파벳 대문자와 소문자가 있고, 일일공부에서 보던 점선을 따라 두 번씩 쓰도록 칸이 마련되어 있었다. 참고로, 조카는 초등학교 5학년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지난 21일 ‘세계의 교육정책’이라는 연재 기사에서, 일본의 영어교육이 한국에 뒤처져 있다고 보도했다. 조카의 과제물을 보니, 굳이 세계의 교육정책으로 거창하게 들여다보지 않아도 단번에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권위'를 통해 표면화될 때, 공론화가 보다 쉽게 되는 법이니까.
해외시장 뉴스에 따르면, 추진되는 글로벌 인재양성 정책에 비해 준비가 미비한 공교육 시스템에, 민간 교육 위탁 시장 확대가 예상된다고 한다. 실제, 일본으로 한국의 영어 교육 관련 콘텐츠 수출은 해마다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에서 귀국한다는 친구에게, 중국의 알파벳 책이 보고 싶어 구매를 부탁했다. 중국에서 온 책을 보고, 우리나라 수준이 역시 높다는 생각을 했다.
엎친데 덮친 격? 자국의 영어 수준을 더 끌어내린 계기가 있으니, 이름하여 ‘솽젠’(雙減·쌍감) 정책. 지난 2021년 7월부터, 숙제와 사교육 등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내용이다. 초, 중학교 학생들은 주말을 비롯 공휴일과 방학 동안 사교육에 등원할 수 없고 평일에는 학습 시간을 제한했다.
그 결과, 글로벌 교육기관 EF(Education First) 에듀케이션 퍼스트가 전 세계 112개 비영어권 국가를 대상으로 평가한 '2022 영어능력지수'*에서 중국은 62위에 그쳐, 2년 전에 비해 24개국에게 밀려난 셈이다. (2020년, 38위, 2021년 49위, 참고로 2022년 한국은 36위, 일본은 80위) 또 하나의 부작용은, 영어의 필요성을 알고 있는 부유층은, 심하면 다섯 배에서 열 배에 해당하는 교육비를 지출하며 비밀리에 사교육을 진행하고 있어 부와 지식의 갭 차이가 더 크게 날 것이 예상된다.
통계로 보면, 한국의 영어가 한. 일. 중 삼국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된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 잘하고 있는 것인가. 2011년부터 EF EPI (English Proficiency Index : 영어능력지수) 추이를 보면, 우수-양호-보통-미흡-부족 중, 꾸준히 보통으로 평가되었다. 이웃나라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잘하고 있지만, 크게 확대해 보면 십여 년이 넘는 세월 고만고만한 레벨을 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1위를 차지했으나, 여러 가지 여건과 역사적 배경이 달라 직접적으로 비교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래도 일상 언어에서 영어가 차지하는 비율이 큰 나라인만큼, 우리의 '보통' 레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아웃풋이 답이라는 방향성은 잡을 수 있지 않을까. (1965년, 17년간의 영국 식민지 독립 시기부터 영어를 제1국어로 지정했다.) 시험점수로 웬만해서 밀리지 않는 우리이지 않은가. 그러니, 이제 그 지식과 정보를 아웃풋 소통으로 연결시켜 주면 된다.
익숙하지 않은 표현, 문법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구조 앞에서 돌아서지 말자. 많이 쓰다 보면 익숙해지는 것이 언어다. 마땅히 쓸만한 기회가 많지 않은 환경이긴 하다. 그러나 빨간 모자쌤의 말처럼, 군인이 총 쓸 일 없다고 총 쓰는 법을 몰라서야 되겠나. 요즘 AI 목소리도 상당히 자연스러워졌다. 혼자라도 열심히 AI와 연습하다 보면, 기회가 왔을 때 한 방 제대로 쏘고 내 언어로 장착시킬 수 있다. 불발조차도 아웃풋의 시도는 의미가 있다.
아웃풋은 우리의 보통 영어를 양호함에서 우수함으로 갈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아웃풋은 우리 아이들의 영어를 언어로 인식시켜 줄 것이다. 그 많은 재원과 에너지를 쏟아붓고 보통으로 머물기엔 조금 억울한 느낌이 든다. 우리는 과도기였다 쳐도, 아이들에겐 이전과 다른 영어 세상을 열어주자.
언어로 소통하는 아웃풋. 그래 이 맛이야.
*EF EPI - 111개 이상의 국가 및 지역에서 2.1백만 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한 테스트 결과를 기반으로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