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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Aug 02. 2023

면담이 필요한 오리발들

새하얗고 뽀얀 털, 주홍빛의 납작한 주둥이, 까만 눈동자.

얌전히 앉아 털을 고르는 모습을 보며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흐뭇하게 바라본다.


"얘네들 봐, 와... 예쁘다."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는 아이들을 기다리며, 오리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이상한 기운이 돈다.


한 녀석이 다른 녀석의 깃털을 뽑는다. 또 다른 녀석이 달려들어 목을 쪼고 깃털을 뽑아 간다. 가까이 다가가니, 꾸준히 공격을 당해온 듯 털은 남아 있지도 않고 선홍빛 피부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무슨 이유일까.

동물세계에서 당연히 서열이 있고 자신들만의 영역 싸움을 할 수는 있겠으나, 유리로 둘러쳐진 작은 우리에서 돌아가며 한 마리를 공격하는 것은 왜일까 궁금해졌다. 체급이 눈에 띄게 차이 나는 것도 아닌데, 공격당하는 오리는 왜 반격하지 못하는 걸까.


찾아보니, 야생에서도 오리들은 단체로 한 마리를 공격하기도 하고 목을 물어 뜯기도 하는 과격함을 보인다고 한다. 오리세계의 왕따는 희귀한 일은 아니었나 보다.


공격하는 오리를 떼어내려고 유리 가까이에서 팸플릿 종이를 흔들었다. 오리는 사람을 보고 갸우뚱 고개를 꺾으며 가만히 마주 섰다. 공격하는 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귀여웠을 자태가, 고약한 가해자의 오리발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 오리들의 엄마 아빠가 권위적이었을까.

오리를 키우면서 양육 방법이 일관적이지 않았을까.

오리가 늘 강압적으로 지시를 받거나 위협을 느꼈을까.

사랑이 지나쳐 과잉보호를 하면서, 자기 효능감을 떨어뜨렸을까.


왕따에 돌림빵까지 당하는 오리를 사육사에게 알려주고 온다 하고 두 아이 쫓아다니다 깜박하고 말았다. 내일은 전화를 걸어, 오리의 안부를 물어야겠다. 미안하다 오리야. 밤새 우리에서 공격당할 녀석을 생각하니, 마음이 상당히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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