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남아 있을까
이차선 도로. 옆 차선의 검은 차는, 앞 차의 뒤에 바싹 붙어 달렸다. 그러나 결국 깜빡이를 켜고 차선을 바꾸었다. 그런데 웬걸, 그렇게 속도를 내지 않던 앞차는 믿기지 않게 갑자기 빠르게 치고 나갔다. 복병은, 그가 차선을 바꾼 그 앞의 차. 내 앞에서 잘 가던 그 차가 옆 차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속도를 내지 못했다. 자신이 달리던 차선으로 다른 차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무슨 이유에선지 이쪽은 잠시 속도가 떨어졌다. 검은 차는 다시 앞차에 바싹 붙어 차선 변경의 기회를 노렸다.
만일 아이가 방 안에 혼자 앉아 있다고 하자. 아이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 그저 창 밖의 하늘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걸 바라보는 부모는 어떻게 할까. 측은한 마음에 장난감이라도 가져다줄까? 아니면 그럴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책이라도 쥐어 줄까? 아무튼 엄마는 아이가 그러고 있는 모습을 참아 내지 못한다. 하다못해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도 한다. 아이가 저만의 시간 (그것이 그저 멍하니 있는 것일지라도) 속에 빠져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아이는 99% 엄마의 노력으로 완성된다> by 장병혜
아들을 키우는 지금의 시점에서 이 책을 서점 매대에서 보았다면, 제목의 무게에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이십 년 전에 출판이 되어 네티즌 선정도서였던 책, 유아교육에 관심이 한참 많았던 처녀 선생님의 선택을 받았던 책은 지금까지 잘 살아남아 있다.
제목이 부담스러 다시 집어 지지 않았는데, 정확히 무슨 내용이 있었는지는 다시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을 내내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이십년만에 다시 펴보았다.
그녀는, 아이에게 창조성과 독창성을 바란다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무엇을 해주고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증을 내려놓고, 아이들이 길을 가다 잠깐 멈추어 서서 하늘을 볼 수 있도록 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시간을 생활의 작은 '틈'이라고 했다.
혼자만의 시간.
이 시간을 부모가 채워주거나 컨트롤하려 하지 말라고 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으니, 그것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이차선 도로에서 앞차의 뒤꽁무니에 바싹 붙어 달리는 마음이,
비단, 그 검은 차의 운전자만은 아닐 것이다.
차선을 바꾸어도 더 빠르게 간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디론가 빠르게 달려가야 할 것 같은 미완의 조급함.
잠시라도 틈이 나면
무언가를 해야 뒤처지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 없이
그저 어디론가 쫓기듯 바쁜 마음이,
아이의 '틈'을 편안히 바라볼 수 있을는지.
마음을 먼저 조용히 추스르고
방학의 시간을 재조명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