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만 써도 못 알아봄
요즘 다섯 살 아들은 무당벌레와 고양이가 슈퍼 히어로가 되는 애니메이션에 빠져있다.
원제는 '미라큘러스: 레이디버그와 블랙캣 이야기
(Miraculous: Tales of Ladybug & Cat Noir).
파리에 거주하는 마리네뜨와 아드리앙이 레이디버그와 블랙캣으로 변신해 악당 호크모스를 물리치고 도시를 구한다는 내용이다. 보다 보면, 단순히 도시를 구하는 게 아니라 거의 신의 수준으로 파괴된 도시를 완전하게 복구해 놓는다. 그것도 두 팔만 살짝살짝 흔들어서... 말도 안 되는 애니메이션의 정수지만, 알고 보니 2015년부터 방영을 하고 있는 장수 애니메이션이다.
호크모스는 절망하거나, 화가 나거나, 분노하는 등, 부정적 감정이 가득 찬 영혼에게 자신의 검은 힘이 담긴 하얀 나비를 보내 빌런으로 변신시킨다. 창조의 힘을 가진 무당벌레와 파괴의 힘을 가진 검은 고양이가 힘을 합쳐 조종당하는 이의 물건에서 '아쿠마'(일본어로 악마를 지칭)를 빼내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는다. 호크모스는 역사 속 모든 악당들처럼 다음엔 꼭 이기겠노라 다짐하며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매 회, 백전백승 같은 패턴으로 흘러가는 스토리임에도 보고 있으면 나름 재미있다. 아들의 관전 포인트는, 검은 나비로 인해 누가 어떤 악당으로 변하는가였다.
넷플릭스에서 영어판이 없는 것인지, 프랑스어에 한국어 자막으로 보는데, 악당을 물리치고 검은 나비를 하얀 나비로 '정화' 하는 과정에서 '바이바이 뽀띠빠띠용'처럼 들리는 주문이 나온다. 아들이 심통을 부리거나 말썽을 부리면 아쿠마를 쫓아낸다고 어설픈 불어를 외쳐주면 녀석도 따라 웃는다. 역시, 같이 앉아 TV를 보고 눈높이로 놀아줘야 기분 맞춰주는 게 용이하다.
액션이 꽤 많은 애니메이션이라 생각했는데, 투자 규모가 천만 불 이상이라고 한다. 제작비가 한 편당 4억 원 수준이라 해서 조금 놀랐다. 세 편을 보면, 12억 상당의 제작비가 들어간 작품을 보고 있는 것인가. 새삼, 무당벌레가 있어 보인다. 무당벌레가 행운의 상징인 줄도 오늘에야 안 사실이다.
아들과 느긋하게 감상하고 이어서 빌런 놀이를 하다가 하루를 마무리한다.
개어 놓은 빨래를 모두 무너뜨려 쓰나미에 털어 넣은 작은 빌런 같으니.
바이바이 뽀띠빠띠용.
한글 버전으로 '잘 가 착한 나비야'라고 하는데... 혹시 불어 발음 아시는 분... 계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