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사 박물관
<책 먹는 여우> 뮤지컬을 보러 서대문 문화 체육회관을 찾았다.
공연은 2시에 시작해서 55분 공연이라, 공연 후 다른 활동을 하고 싶었으나, 딱히 정하지는 못한 채 극장으로 들어섰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보니, 창문 너머 저 멀리 산 위에 서대문구 자연사 박물관 건물이 마주 보였다. (시간에 늦어 허둥대었다면, 복도 끝 창가를 서성일 여유도 없었을 것이라, 다시 생각해도 감사한 일이다.)
2003년 7월에 개관하여 올해 20년 차인 박물관인데, 이제야 그 존재를 알다니...
매년, 일본에서 조카가 올 때마다 아이들이 갈 만한 장소들을 무수히 검색했었다. 알고리즘으로라도 한 번쯤 물망에 올랐을 법 한데, 신기한 노릇이다.
그런데, 서대문에서 볼거리로 다시 한번 검색을 하니 자연사 박물관이 당장에 눈에 들어온다.
어떤 정보를 걸러내는가는 망상활성계(Recticular Activating System, RAS에서 결정한다. RAS는 습관화 habituation 과정을 통해 뇌가 무의미하고 반복적인 자극을 무시하고 다른 입력 자극은 민감하게 수용하는 정보의 문지기 역할도 한다.
RAS를 통과하는 방법 중 하나는 스스로 질문하는 것이다. 질문은 각자 담당하는 뇌 영역에 무엇이 중요한 정보인지 알려준다.
<마지막 몰입> by 짐 퀵:나를 넘어서는 힘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새로 배운 단어가 그날 따라 유난히 여기저기서 쓰이고 있는 것을 발견해 본 경험이 있을까. 알지 못해서 혹은 주의를 기울이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의식으로 들어오면서부터 여기저기 사방에서 보이기 시작하는 경험은? 답이 긍정이라면, 이 말이 바로 그 말이다.
RAS는
당신이 관심을 표현한 것을 더 보여주고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은 감춘다.
자연사 박물관까지는 대단히 가파른 오르막 길이 있다. 뜨거운 여름, 땡볕의 오르막을 반기지 않을 조카를 알기에 RAS가 슬쩍 감추어 둔 장소를, 공연 후 주변에서 더 둘러볼 곳을 의식적으로 찾기 시작하니 비로소 모습을 보여준 느낌이다.
<마지막 몰입>의 저자는, 우리가 원하는 답이 있음에도 적절한 질문을 하지 않아 주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고 한다.
우리는 하루에 수만 가지의 생각을 하지만 다른 질문들보다 더 자주 하는 한두 가지 지배적인 질문이 있다. 이 질문들은 주의력을 특정 방향으로 집중시키며 우리의 감정, 나아가 삶의 방식을 정해주기도한다.
<마지막 몰입> by 짐 퀵:나를 넘어서는 힘
박물관은 그저 어쩌다 우연히 발견한 장소라고도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 하루만은... 수많은 장소 중에 걸러진... 주의력을 기울인 에너지의 결과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오늘 하루를 결정해 주었다.
고마운 일이다.
함께 긴 오르막 걸어준 아들에게도 고마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