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사는 게 아닌 게
양파 한 자루와 계란 한 판을 사러 동네 앞 슈퍼에 갔다. 직원 분 덕분에 큰 망에 든 사이즈를 할인가로 살 수 있었다. 순식간에 신뢰를 얻은 그분이, 오늘 서해에서 들어온 꽃게가 맛있다고 했다. 살이 아주 달다고. 테이프로 봉해진 박스 속 게가 어떤 상태인지도 모른 채,
꽃게 철 + 직원분의 신뢰 = 구매로 이어졌다.
박스를 열자, 톱밥 속에 게들이 덮여 있었다. 집게로 건드리자 아직도 힘이 쌩쌩하게 남아 있는 녀석들이 있었다. 크기도 꽤 컸다. 그러나 찜통에서 꺼내 반을 갈라보니, 속이 빈 게 들이 여럿 되었다. 분명 살아있는 녀석들이었는데, 기대했던 만큼 살도 탱글하지 않았다. 다 풀어진 느낌.
살아있는 꽃게를 톱밥 속에 담는 이유는, 꽃게가 톱밥을 모래로 알고 잠을 자기 때문이다. 꽃게들끼리 싸우지도 않고, 스트레스도 덜 받고, 이동 시 완충 작용도 하고.
살이 다 풀어진 것으로 짐작건대, 혹시 스트레스 덜 받는다는 건 우리들 입장이 아닐까 싶었다. 게의 다리가 텅 비어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나무위키에 따르면, 갑각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수율이 떨어지므로, 먼바다에서 잡혀 들어오는 게 들은 크기는 커도 속이 빈 속칭 '물게'인 경우가 있다고 한다. 멀든 가깝든, 그물에 걸려든 순간부터 게들은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상황이었으리라.
'살아 있던 생명을 먹는다'는 것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채식으로 바꿔야 할 지도. 그러나 그럴 수 없다면, 고독한 미식가, 이노가시라 고로 씨가 돼지고기 한 저름과 닭고기에게 그랬듯이, 톱밥 속 상자 속에서도 강한 생명을 유지하다가 귀한 식량이 되어 주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꽃게야 진심으로 고마워.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는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 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이제, 보다 감사한 마음으로 음식을 대할 듯 하다.
참고: 게가 죽으면(죽으면서) 게 간의 소화효소는 살로 흘러들어가서 게의 살을 녹인다. 그 소화효소 활동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효소의 온도가 중요하다.
효소활동이 멈추면 게살이 녹지 않으므로 수율이 그대로 유지된다. 여러 요리를 할 때 선상에서 급냉한 꽃게를 사용하는 것이 좋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윤정 (https://homecuisi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