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를 위한 문어의 반전
며칠 전에 올린 글, <톱밥 속의 꽃게>를 쓰다가, '게가 죽으면(죽으면서) 게 간의 소화효소는 살로 흘러들어 가서 게의 살을 녹인다.'는 사실이 흥미로워 가설을 하나 세워 보았다.
자연의 모든 생물은 생존을 위해 정교하고 치밀하게 디자인되어 있다. ----> 게가 제 살을 녹이는 데도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포식자가, 게는 먹을 것이 없다는 기억을 남기기 위함이다-----> 단단하고 힘센 게를 잡느라 찔리고 물리고 아팠는데, 정작 한 입 무니 빈 껍질뿐이었다. ------> 게 무시를 유도한다. -----> 앞으로 게를 먹으려 들지 않아 게 후손들의 생존율이 높아진다.
숭고하기까지 한 가설이 그럴듯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인간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잡자마자 급냉동을 시켜 먹으니 게 맛에 반한 이들이 여전히 엄청난 수의 포식자로 존재하고 있다. 바닷속에서 게를 잡아먹는 문어 역시, 게 껍질이 문제가 아니었다. 게 사냥하는 문어를 보니, 전혀 아파하는 기색이 없다. 게다가 문어는, 침에 들어 있는 염산을 이용해 게의 껍질을 녹여 게살만 순삭하고 껍질은 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대체, 게는 왜 제 살을 녹이는지 조금 더 들어가니 이런 현상을 autolysis(자기 융해, 자기 분해)라고 하며, 게만 그러는 건 아니고 다른 동물이나 식물에서도 일어난다고 한다. 결국, 생물이 죽은 후에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분해 과정이라는 것이다.
나의 의문은, 살아있는 게가 스스로 분해하기 시작하는 이유였으나, 짧은 리서치 결과... 게는 스스로의 흔적을 지우고 가려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게,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게 도리인 게들로 주관적 정리를 해보았다.
이제 또 다른 질문이 떠오른다.
이 바쁜 시절에, 무슨 의도로 생뚱맞은 가설을 세우고 이렇게 살 다 빠져나간 빈 게껍질 얘기를 쓰고 있는가.
그냥 궁금했고, 더 알고 싶었고, 정보를 찾다 보니 재미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흥미를 가지고 스스로 '왜'라는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파고들 수 있다면,
나는 빗 속으로 달려 나가 춤이라도 출 것이다.
단순한 과정이지만, 이것저것 찾아보고 알게 된 정보와 혼자 마음대로 내린 결론으로 오늘의 글 한 편 완성한 것에 만족한다. 게 살과 브런치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과정 그 자체에서 홀로 즐거움을 찾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Efa7uQxOL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