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단어 쓰기까지...
바나나는 어려서부터 들어 온 많은 외래어 중 하나다.
그렇다면.
알파벳 글자가 내는 소리를 다 알고,
banana를 읽을 수 있으며
한글 자음 모음의 원리를 아는 초등학교 3-4학년 여자 아이가
banana를 안 보고 써낼 확률은?
개인적 경험으로는 상당히 낮았다.
banana를 철자로 이미 알고 아이가 아니라면,
열에 아홉은
bbn 정도 쓰다 모르겠다고 몸을 뒤틀곤 했다.
철자에 감이 좀 있는 아이들조차도,
ba의 원리를 알려주면, na 까지는 하다가도... 끝부분에서는 살짝 망설인다.
바........... 나나
한글에서도 똑같은 글자가 반복되고 있는데,
na를 쓰고도 마지막에 na 가 한 번 더 와야 한다는 것이
직관적으로 보이지 않을 줄.
써보기 전엔 몰랐다.
banana 그림과 글자가 적힌 카드를 보여주고,
쓰기를 반복해서 외운 뒤, 시험 보고 채점하는 것과
각 글자가 내는 소리를 아이 머리에서 '꺼내' 와서
조합하게 한 뒤 '써 내게' 하는 것.
어느 것이 쉬울까.
어리석은 걸까.
후자를 택한 뒤,
목이 쉬어라 사운드를 반복하며
아이들이 '뇌 쓰기 괴로워' 하는 시간을 함께 견뎠다.
신기하지.
banana 가 그렇게 힘들었던 현아,
이제 elephant를 써보겠다고 당차게 '도전' 해본다.
banana를 거쳐, bibigo를 넘어 pasta를 이해하더니
갑자기 득음이라도 한 듯, 읽기에도 돛을 달았다.
b 음가를 머리에서 끌어오는 거조차 힘들어서
몸을 꼬던 윤이.
겨우겨우 b를 쓰더니
'a' 대신, 수없이 다른 음가를 '휘갈기며' 모르겠다 했다.
그러다
banana를 어렵사리 써내더니
점점
앉은 자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못하겠다 한숨 쉬던 찬희,
수많은 조합으로 bibigo를 찾아내더니,
이 노트 가져가 엄마 보여줘도 되느냐고 했다.
스스로가 꺼내 온 사운드로
글자가 써지는 것을 본 아이들,
머릿속 '암흑' 같은 터널에서 빛이라도 본 것일까.
'모른다'는 두려움.
'잘 못한다'는 떨림.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의심.
'실패'와 마주하기 싫어
재미없고
어렵다 투정하고
난 모른다 밀어냈었는데
그럼에도,
네 머릿속에선
계속
길을 찾고 있었음을.
원에 와서
신발을 벗기도 전
던진 너의 첫마디.
'선생님, 나 이제 bibigo 쓸 수 있어요!'
너 스스로를 믿어준 너를
응원한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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