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그 이상.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나 어슐러 K 르 권의 <<Earthsea>> 시리즈에서, 이름은 누군가에게 불리는 그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름을 되찾기 위해 혹은 진정한 이름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 나가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어린아이가, 자신의 이름으로 '나'를 대신 부르는 때가 있다. 마치 3인칭 시점으로 말을 하듯, '00 이가 할 거야. 00 이가 먹을래'라고 한다.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자신의 이름은 남들이 불러줄 때나 듣게 된다. 누가 어떻게 얼마나 불러주는가. 그것에 점점 의미를 부여하며 살게 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
이스라엘에 있을 때다. 누군가 히브리어로 이름을 써주면 읽을 줄도 모르고 어디가 위인지 아래인지 구분이 되지 않더라도 신기하고 소중한 느낌이 들었다. 외국 친구들에게 한글로 이름을 적어주면 반응이 비슷하다. 이리저리 돌려보며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좋아한다. 적힌 한글을 따라 자신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이름... 아들이 두 돌이 되기 전이었을까. 아빠가 짚어주는 자신의 이름을 한 글자씩 눈으로 따라가며 듣고 있던 모습이 떠오른다.
이름... 바닥을 치고 있을 때, 어린아이처럼 제 이름을 부르며 '괜찮다'라고 토닥여주면, 정말 이젠 괜찮을 것 같이 위로가 된다.
이름... 복잡한 곳에서도 본인의 이름이 불리면, 다른 소리보다 참 잘 들린다. 이름 속에, 이름 그 이상이 들어 있는가.
그래서일까. 아이들은 자신의 이름 이니셜 꾸미는 활동을 할 때 그 어느 때보다도 집중한다. 나와 깊게 연관이 있어 제대로 알고 싶은 글자인가 보다.
알파벳을 꼭 Aa-Zz 순서로 익히지 않아도 좋다. (글자 K 이름을 기억해 내기 위해, abc 송을 처음부터 불러 순서로 찾는 아이를 본 적이 있다. 후반부? 알파벳 글자 이름을 소환할 때마다 아이는 노래를 불러 매칭을 시켰다.)
아이 이름. 아이에게 의미가 있는 글자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엄마 아빠의 이름도 알려주자. 글자 이름 기억하느라 매번 노래 부를 일은 없을 것 같다.
내 이름이 담긴 알파벳 이니셜.
이제 그냥 알파벳이 아니다.
그 속에 내가 있고 엄마 아빠가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83v3M_5X3c
<<A Name for Baby>> by Lizi Boyd - 카메라가 좀 흔들리긴 하지만, 아이의 읽는 소리가 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