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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그램 Jan 04. 2019

조선시대에도 삼겹살을 먹었을까?

돼지와 돼지고기의 역사 - 제4화, 조선 시대의 돼지 2편



 돼지는 물을 많이 소비하는 동물이다. 피부에 물기가 있어야 하고 습한 곳을 즐긴다. 한반도 역시 건조한 기후 때문에 돼지 사육이 자유롭지 않았다. 더하여 돼지는 개, 소와는 달리 별도의 효용가치가 없다. 개는 집을 지키고 소는 논밭에서 일을 한다. 그러나 돼지는 오직 먹는 일만 한다. 굳이 돼지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돼지고기는 ‘낮춰 보는’ 식재료였다. 조선시대 내내 자기 자식을 부르는 호칭은 ‘돈아(豚兒)’였다. ‘돼지같이 미욱한 내 자식’이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도 “돼지 같다”라고 했다. 좋은 뜻이 널리 퍼졌다고 표현할 때 “돈어(豚魚)도 알아들었다”라고 했다. 돼지와 물고기를 가장 미욱한 생물로 여겼다. 제사에서도 돼지고기는 천시했다. 중국에서도 돼지고기는 천대받는 제사 음식이었다. “흉년이 들면 제사 음식에 하생(下牲)을 쓴다”라고 했다. ‘하생’은 제사 음식의 등급을 낮추는 것이다. “소, 양, 돼지 대신 양과 돼지를, 양, 돼지 대신 송아지를 쓴다. 평소 송아지를 쓰던 이는 새끼돼지를 쓴다”라고 했다. 숙종 12년(1686년) 11월 궁중에 올라온 상소문이다. 흉년으로 기근이 들었다. 하생’이다. 돼지는 늘 제일 뒤차지다.



조선시대 돼지 그림. 상당히 사납게 묘사되어 있다.




 세종 7년(1425년) 4월, 호조의 상소에는. “전구서에 암퇘지 508마리가 있는데 그 숫자가 너무 많으니 300마리만 남기고 나머지 200마리는 시세대로 팔아서 민가에서 두루 번식하게 하자”는 내용이 있다. 단종 1년(1453년) 4월에는 ‘돼지 사육을 잘하는 탐관오리’의 처벌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별좌 이흥덕이 부패 혐의로 체포되었다. 사헌부에서 정한 벌은 곤장 100대에 3000리 밖 유배, 벼슬길 금지다. 의정부는 ‘곤장 80대, 벌금, 파직하되 벼슬길은 열어준다’는 걸로 강도가 무르다. 이유가 재미있다. “이흥덕은 중국을 드나들면서 양돈을 배웠고 세종대왕이 예빈시에서 일하도록 했다. 돼지 기르는 일에 힘썼고 공적도 있다”는 것이다. 세조 8년(1462년) 6월에도 돼지 사육을 권장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는 닭, 돼지, 개 기르는 일을 잘하지 못한다. 하여 손님 접대와 제사가 늘 넉넉하지 못하다. 한양 도성은 한성부, 지방은 관찰사, 수령이 직접 관리하라. 매년 그 숫자를 보고하고 양돈 성적에 따라 상벌을 적용하라”는 내용이다.



 19세기부터 돼지고기는 비교적 흔해진다. 순조가 궁궐에서 냉면을 ‘테이크아웃’할 때도 돼지고기는 등장한다. 조선 후기 실학자 영재 유득공의 ‘서경잡절’에도 “냉면과 돼지수육 값이 올라간다”는 표현이 나타난다. 돼지고기가 흔해지고 저잣거리로 나온 것이다. “서울에 살 때도 일찍이 맛있는 음식(美品)을 찾아 먹었는데 침교(沈橋·현 서울 종로구 재동)에서 파는 돼지고기가 가장 맛이 좋아 서경(평양)의 오수집 돼지국과 같았다. 서경에서는 기름진 비계가 손바닥처럼 두꺼운데 설편(雪片)처럼 얇게 잘라 입에 넣으면 얼음이 녹듯 했고, 불에 구워도 천하일미라고 할 만했다. 궁지에 있는 사람이라 음식 생각이 가장 많아서 이렇게 두루 말하거니와 우스운 일이다….”조선 후기 문인이자 관리였던 효전 심노숭(1762~1837)이 자신의 문집 ‘효전산고(孝田散稿)’에 쓴 음식 품평이다. 유배지에서 고을의 제사음식인 돼지고기를 먹고 서울과 평양의 유명한 돼지국밥 맛을 떠올리며 찬탄하고 있다. 조리 방식을 설편(눈송이)에 빗대 묘사한 대목은 미식가답게 섬세하기 그지없다. 효전은 조선의 대표적인 미식가였다.



김홍도의 설후야연. 기생들과 함께 야외에서 육적을 구워먹는 선비들의 모습을 그렸다. 그만큼 돼지고기가 흔해진 것이다.




 탐식의 시대 조선에는 유명한 식당, 이른바 ‘맛집’도 즐비했다. 그중에서도 서울 사대문 안에 있는 개장국 전문점 ‘군칠(君七)이집’이 가장 유명했다. 군칠이집의 인기가 얼마나 좋았던지 ‘여군칠이집’ ‘남군칠이집’으로 분점을 냈다는 기록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춘향전에도 군칠이집에 술을 받으러 간다는 내용이 나온다. 조선 시대 맛집은 18세기 후반에 우후죽순 생겨났다. 여기에는 정조의 정책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정조는 오랫동안 독점 영업을 이어오던 육의전 상인들에 대항해 난전을 허용하면서, 난전 상인들이 작은 음식점을 낼 수 있도록(술을 팔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러자 서울 종로 피맛골 주변에는 선술집, 국밥집, 색주가 같은 음식점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음식점이 얼마나 많았던지 ‘서울 시내 상점 절반이 술집이고, 서울에서 잡는 가축의 고기 대부분이 술안주로 쓰인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였다.




김홍도의 주막. 저 솥에 있는 국밥이 돼지국밥일 수도 있다!

 



 단종 1년(1453년) 4월(음력), 5품 별좌 이흥덕이 부패 혐의로 체포되었다. 사헌부에서 처음 내린 판결은 ‘곤장 100대, 3천 리 밖 유배, 벼슬길 금지’다. 의정부에서는 이 벌을 가볍게 한다. 벌을 낮춘 이유가 있다. “이흥덕이 중국을 드나들며 양돈(養豚)을 배웠고, 돼지 기르는 일에 힘썼고, 공적이 있다”고 했다.

조선의 이념적 통치기반은 유교다. 유교는 인간이 6가지 가축을 먹도록 했다. 육축(六畜), 소, 말, 돼지, 개, 양, 닭이다. 우리는 가축 기르는 솜씨가 부족했다. 건조하고 추운 한반도에서 돼지는 잘 자라지 않았다. 세조 8년(1462년) 6월의 기록에는 “(양돈은) 한양 도성은 한성부, 지방은 관찰사, 수령이 직접 관리하라. 매년 그 숫자를 보고하고 양돈 성적에 따라 상벌을 적용하라”고 했다. 돼지 관리책임자를 정하고 일일이 보고하라는 것이다. 양돈 성적에 따라 관리들의 상벌을 정하겠다고 했다.




 이토록 귀한 돼지고기의 특정 부위를 안 먹었을 리는 없다. 뼈와 내장도 먹는 판이다. 삼겹살로 특정한 이름이 없었고 먹는 방법이 달랐을 뿐이다. 냉장, 냉동이 불가능하던 시절이다. 날고기로 짧게 보관하다가 수육(熟肉)으로 만들어 보관하고 먹었다. 1828년(순조 28년)에 진하겸사은사(進賀兼謝恩使) 정사 이구(李球)의 의관겸비장(醫官兼裨將)으로 청나라 북경에 갔던 의관 김노상(金老商)의 연행기록 부연일기에 “서융(西戎)에서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라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 후기 몽골의 영향을 받아 육식의 중심은 소고기였고, 돼지고기가 아니었다.  물론 조선시대에도 돼지는 소, 양과 함께 3대 희생(犧牲) 제물이었기에, 전국에서 길러졌다. 돼지고기는 종묘(宗廟)와 사직(社稷) 등 여러 제사에 사용됐을 뿐만 아니라, 사신 접대를 위해서도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조선왕조실록과 학자들의 문집의 기록을 보면, 돼지고기에 관련된 기록들이 참으로 많다. 조선시대에 돼지고기는 제사 등에 두루 쓰였으며 또 산림경제, 동의보감에서는 돼지고기가 약용(藥用)으로 두루 쓰였다.‘조선왕조실록’ 태종(太宗) 17년(1417년) 윤 5월 8일 조선 사신단이 명나라에 도착했는데, 황제가 내시를 불러 “조선인들은 원래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니 소고기와 양고기를 공급하도록 하라”고 명령했다. 조선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즐기지 않는다는 것을 명나라 황제도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세종 25년 계해(1443, 정통 8년) 3월 4일(기미)의 기록에서 “도승지 조서강(趙瑞康)이 호가(扈駕)한 대신들과 함께 의논해 아뢰기를, 우리나라 사람이 돼지고기를 즐기지 않사오니, 보통 사람도 그러하온데 어찌 궐내에서 쓸 수가 있겠습니까. 먼 도는 진상하는 것을 우선 정지시키되 가까운 도는 정지시킬 수 없사옵니다”고 한 기록을 통해 조선인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단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아마도 실록에서 조선인이 돼지고기를 즐기지 않는다고 말한 도승지 조서강(趙瑞康)은 조선의 서역(西域) 출신 관료로 볼 수 있다. 자기가 사는 지역을 중심으로 말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는 이유는 실록에 돼지고기와 관련된 기록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by 고기박사 김태경




출처 : 한국과학사 김일성대학 역사학부 

신라 왕조실록 한국인물사 연구원 지음 

식생활과 문화 이성우

한국의 생활사 : 우리 역사 속 돼지 김용만 | 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

http://www.bettertomorrow.or.kr/official.php/home/info/1938

이야기가 있는 맛집 황광해 2015.4.4. 데일리 한국

http://daily.hankooki.com/lpage/life/201504/dh20150404070152138910.htm

돼지의 맛 뉴스Q2017.7.13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03/2017070302172.html

한국사콘텐츠 고려도경 http://contents.koreanhistory.or.kr/id/R0006    

한우마당(http://www.ihanwoo.kr)

[네이버 지식백과]방자구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돼지고기  황광해 donga.com 

http://news.donga.com/more22/3/all/20151222/75508108/1




배경사진: 1970~1980년대 이발소의 번성을 위해 걸어 놓은 돼지 그림.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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