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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씩스미미 Nov 24. 2023

모두 비뚤어졌어. 아니 나만.

쓸데없는 자존심

 어느덧 11년 차 직장인이 되었다. 바닥에 있는 자존감을 어떻게든 끌어올리기 위해 선우정아의 CLASSIC을 들으며 콩나물이 가득한 지하철에 매일 매일을 올라탄다.


  I’m classic 네가 감히 오르지 못할 곳
  I’m classic 누가 감히 건들지 못할 Soul
  I’m classic 난 꺾여도 향길 남기는 꽃
  I’m classic yes, I’m classic     


 클래식을 듣고 있노라니, 속에서 폭포수처럼 끓어오르던 2013년 여름 언저리가 생각났다. 당시 4학년 1학기 대학생의 신분과 동시에 인턴 생활을 겸하며 지냈었다. 첫 직장생활임에도 불구하고 어려움보다는 즐거움이 많았다. 막내를 마냥 예뻐해 주시는 선배들, 그리고 마음이 잘 통하는 동갑내기 직원들과 삼삼오오 어울리며 약 6개월 동안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공허함과 무료함은 지워지지 않았다.


 인턴 생활 후 정규직 전환 제의를 받았지만 심장? 어딘가에서 꿈틀거리는 그 어떤 무언가를 무시할 수 없었다. 김미경과 김난도에 심취 해 있던 스물넷 대학생은 강연 기획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었고 당시 강연 분야에서 급부상하는 회사에 지원서를 넣고야 말았다. 서류평가 이후 두 차례에 거쳐 면접을 봤다. 스스로 생각해도 면접을 너무너무 잘 봐서 합격을 완전히 확신했다. 회사로부터 최종 합격 통보를 채 받기도 전, 기존 회사의 정규직 제안을 거절하고 당당하게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아 몰라! 나 그만둘거야!”


 새로운 곳으로의 이직을 앞둔 백수와 마지막 학기를 남긴 대학생의 그 어정쩡한 신분으로 친구들이 공부하고 있는 학교 도서관을 오며 가며 입사 통보를 기다렸다.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아 약간은 불안했지만 ‘뭐- 난 당연히 합격한 사람이니까.’ 라는 자신감을 장착한 채 공부하고 있는 친구들을 꼬셔 호프집을 드나들기 바빴다.


 그날도 어김없이 시간 때울 겸 도서관에 가는 지하철 안이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000 인사팀 입니다. 000씨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 네...죄송하지만  아쉽게도 이번 저희 회사 채용에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건승을 바ㄹ...” 


 멍- 해졌다. ‘이거 현실 맞아? 거짓말 아니야?’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 자리에서 송장처럼 굳어버리고야 말았다. “제정신이냐, 대체 어쩌자고 그러냐.” 등등 부모님으로부터의 온갖 핍박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합격 통보도 안 왔는데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나를 부모님이 좋게 보실 리가 없었다. 불합격보다 나를 더 괴롭힌 건 ‘쪽팔림’이었다. “그런다고 네가 뭐 대단한 사람이 될 거 같아? 김미경은 아무나 되니?”라는, 실제로는 하지도 않은 주변 사람들의 말들을 스스로 상상해가며 점점 굴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선택에 대해 후회하고 자책하는데 시간을 소비했다. 


 하고 싶은 것도 하고자 하는 것도 딱히 없는데 취업은 해야겠고. 그 흔한 어학 점수고 자격증이고 무엇 하나 준비된 게 없는데 뭘 해야 하나 싶고. 막막하고 앞이 깜깜했다. 정신 차리고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도 모자를 상황에 무너진 자존심이 나를 바닥으로 꺼뜨리기에 바빴다.


 친구들은 어학이다 컴활이다 취업 준비를 하는 와중에 나는 졸업 전에 이미 인턴으로 취업도 했고 심지어 이직도 성공했다며 어깨에 힘주고 다녔는데. 가족들 친구들 전 직장 동료와 상사들이 다 나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 내가 자초한 결과이기에 그 누구에게도 힘들다고 털어놓지 못했었다. 쓸데없는 자존심 부리며 주변에 도움의 손길을 청하지도 못했다.


 그 당시 유일하게 한 줄기 빛이 되었던 것은 선우정아의 ‘삐뚤어졌어’라는 노래였다. 노래 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난 거꾸로 서서 세상을 봐. 그리고 말을 해 모든 건 잘못됐어. 세상도 날 둘러싼 사람들도 모두 삐뚤어졌어. 아니 나만. 그래서 미안해’ 

 동질감을 느꼈다. 세상이 비뚤어졌다고 하지만 내 스스로가 비뚤어져 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마음속의 바닥을 칠 즘에야 대단한 자존심을 내려놓으며 주변에 도움의 손길을 뻗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비뚤어진 나를 데리고 사는 일을 꾸역꾸역하고 있다. 맘껏 비뚤어지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서 나는 오늘도 선우정아의 음악과 함께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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