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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씩스미미 Sep 20. 2023

생일을 잊은 삶

나는 왜 그녀에게 미쳐있는가.

 식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언니와 나는 늘 다른 의견을 비추어 왔었다. 같은 뱃속에서 나온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언니와 나는 참 많이 달랐다. 어린 시절부터 어마어마한 명예욕을 드러내며 “한 번 사는 거 이왕이면 짧더라도 굵게 살아야지.”라고 늘상 말하는 나와는 달리 “평범한 게 최고지. 가늘고 길게 살 거야.”라는 게 언니의 지론이었다. '화목'이 가훈이었던 우리 집안의 화풍으로 봤을 때 나는 좀 별난 아이였다. 


 꿈을 파는 사람들을 선망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에 위로받으며 온갖 자기계발서를 끼고 살았다. "그렇게 안일하게 살면 안돼!" 라며 친구들을 나무라기 바빴다. ‘내가 잘하는 건 뭘까? 내가 좋아하는 건 뭘까?’ 라는 질문을 수없이 하며 나만의 숨겨진 천재적인 능력이 발현되기를 기다렸다.


 포토그래퍼, 웹디자이너, 한문 선생님 등 몇 가지 장래희망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남들보다 조금은 잘할지 몰라도 특출나게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적당한 선에서 항상 멈추고 말았다. 모든 인간은 남들보다 뛰어난 달란트를 하나씩은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데, 포토그래퍼도 웹디자이너도 그 어떤 것도 나만의 달란트라고 생각이 들진 않았다. 하늘에서 천재적인 능력이 뚝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었다. 명예욕과 성공에 대한 욕망으로 똘똘 뭉쳤던 당찬 아이는 오간 데 없다. 점심시간이 끝나감을 개탄하고, 퇴근시간이 빨리 오지 않음을 짜증내는 직장인이 되었다. 늘상 회사에 대한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살며 상사 뒷담화하기 바쁘다. 하루하루 음주가무와 더불어, 인스타며 유튜브며 여기저기 남의 이야기를 기웃거리며 삶을 소진하고 있다.


 그러다가 이따금씩 ‘이렇게 평생 월급쟁이로 살다 죽으려나.’ 라는 생각이 드는가 싶다가도 ‘에이 뭐 다들 이렇게 살잖아.’ 싶고. 이런 태세라면 짧고 굵게 살기는 커녕 짧고 가늘게 살 모양새다.


 5월의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퇴근 후 졸린 눈을 비비며 인스타를 기웃거리던 중 선우정아의 인스타 스토리 알람이 울렸다. 그날 마침 그녀의 생일이었고, '생일 축하해줘서 고맙다'라는 투의 스토리이지 않을까 라는 추측으로 스토리를 열었다. 역시나 예상한 대로였다.

"팬님들 생일 축하해줘서 다들 고마워요."

감사의 인사와 더불어 그 뒤에 덧붙인 한 마디가 나의 뒷통수를 세게 때렸다.

"생일인 것도 모르고 밤새 작업하고 있었는데 동생이 카톡해서 알게 됐어요..."


선우정아의 노래 중 「My Birthday Song」이라는 노래의 커버 사진


 어떻게 본인 생일을 모를 정도로 일을 할까, 라는 안타까운 마음은 아주 찰나였다. 부러움과 질투심이 내 온몸을 휘감았다. 생일도 잊을 정도로 일에 깊이 빠져있다는 건 대체 어떤 경지일까. 그렇게 온전히 나를 쏟아 넣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것인가.


 그녀는 늘 인터뷰에서 “음악은 내 삶의 이유다” 라고 말한다. “음악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동기는 없다. 그냥 내가 살아있는 이유와 삶 그 자체다” 라고 한다. 음악을 하지 않으면 아무 가치도 없는 삶이라는 그 진심을 듣고 있노라면 내 삶에 물음표를 던지게 된다. ‘선우정아에게 음악과 같은 것이 나에게는 과연 무엇일까?’ 또는 '천재적인 능력이 뚝 떨어지기만을 바라는 요행의 삶을 살았던 건 아닐까?'


 본업을 잘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늘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 카리스마 있던 한문 선생님이, 교수직을 겸하던 전 직장의 선배가, 그리고 지금 나에게는 선우정아가 있다. 30대 중반 들어 내가 정말 잘하고 하고 싶은 일을 찾겠다고 하면 누군가는 철없는 소리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린 시절 무심코 지나쳐 버린 또는 외면해버린 포토그래퍼, 웹디자이너, 그리고 그 어떤 무언가를 다시 잃지 않기 위해 다시금 스스로 담금질을 해야 할 시기인가 싶다. 그런데 아직 잘 모르겠다. 생각이 깊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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