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씩스미미 Sep 19. 2023

혼공 퀘스트 깨기

덕질이 끝나지 않는 이유

 선우정아의 공연 소식이 들릴 때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있다. ‘이번엔 누구랑 가지...’ 그녀의 공연을 열렬히 쫓아다닐 때인 2010년대 초반쯤에는 ‘우리 대단한 언니’를 소개하는 차원에서 지인들을 두루두루 모시고 다녔다. 어느 공연은 대학 동기와, 어느 공연은 고등학교 친구와, 심지어 어느 공연은 직장 동료와 함께. ‘너, 우리 언니 공연 한 번 볼래? 보면 기절할걸?’ 이라며 내심 자신만만한 속내로 가득했다. 돌이켜보면 그들의 격앙된 리액션을 기대하며 동행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야 선우정아 진짜 대단하다. 겁나 잘해!!!”


 물론, 수많은 동행인 중에는 친구뿐만 아니라 그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도 포함되어 있었다. 좋아하는 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함께했지만, 연인과 동행하는 것에는 아주 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선우정아의 팬들은 그대로인 반면에 동행하는 사람이 자꾸만 바뀐다는 사실. (슬프게도) 누구 한 명을 진득하게 만난 것이 아닌 터라, 이따금씩 있는 공연에 옆자리가 바뀔 때면 “어... 그 때 그분이 아.. 아닌...?(하하 흠흠)” 이라며 친한 팬들의 DM이 몰려오곤 한다.


 선우정아가 공연을 한 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공연을 한 두 번 가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매번 누군가와 함께할 순 없었다. 진정한 팬이라면 올콘은 기본 소양인데 그 모든 공연에 지인과 함께 가는 것이란 거의 불가능 했다. 남자친구를 설득해 올콘을 함께하는 것은 더더욱. 결국 난 ‘혼공’을 가야만 했다.


 홍대 클럽공연이나 소극장 공연은 혼자 스을쩍 들어갔다가 스을쩍 나오면 되기 때문에 혼공 난이도로는 최하였다. 망설이게 하는 것은 바로 대형 콘서트장이나 잔디밭에서 하는 페스티벌 이었다. 이는 혼밥 난이도로 치면 나홀로 고깃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정도의 수준이랄까. 혼자서 여행도 많이 갔던 터라 혼자 달랑달랑 다니는 것이 굉장히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대형 공연은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방팔방 알아보다가 결국 동행인이 없어 공연을 못가게 될 때면 ‘일정이 있어서...’ 라는 핑계를 대곤 했다. 하지만 ‘저 사람은 친구도 없나봐. 혼자왔어’ 라는 말을 들을까 눈치가 보여 가지 못한 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공연장에 온 관객들을 언뜻 살펴보니, 대부분 혼자 온 관객들이 아니던가. 공연장에 들어갈 땐 혼자지만 나올 땐 함께였다. 공연이 끝나고 모여 감상을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아티스트의 퇴근길을 배웅하기도 했다. 새로운 광야의 빛이 열리는 듯했다. 온전히 선우정아의 이야기로 찐 감상을 나누는 저 바람직한 관계들! 지인들과 함께일 때는 차마 할 수 없었던 언니를 향한 이 주접과 구애! 나도 왜인지 저 무리에 함께이고 싶어졌다.


 드디어 대망의 날이 밝았다. 3집 발매기념 단독 콘서트에 당당히 1인 예매를 했다. 당황하지 않은 척 태연한 척 고고하게 입장했지만 쉼 호흡을 하기에 바빴다. 굿즈를 둘러보는 척 했지만 물건들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익히 알고 지내는 얼굴들이 벤치 한켠에 모여 있었고 “ㅇㅇ님 오셨네요!” 라는 인사가 이어졌다. “혼자 오셨어요?” 라는 질문을 할까싶어 노심초사 하고 있는데 돌아오는 질문은 예상 밖이었다. “굿즈 보셨어요? 커피 잔 완전 예쁘죠?”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이번 공연은 몇 번 오세요? 설마 올콘 아니에요?????” 그들은 내가 혼자 왔는지 뭐 하다 왔는지 어쨌는지 전혀 관심 없었다. 이들은 원앤온리 선우정아였다. 그냥 ‘울언니’ 공연을 왔을 뿐이었다. ‘어라. 이거 별거 아니네?’


 용기가 생겼다. 페스티벌에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대형 공연이 고깃집에서 혼자 고기를 굽는 난이도라면 페스티벌은 패밀리 레스토랑에 혼자 가는 정도의 최상급 난이도였다. 물론 마음은 먹었다지만 페스티벌은 걱정이 가득했다.


 이 와중에 나를 구원해준 이들이 있었다. 지난 공연 당시 나에게 질문 폭격을 쏟아내던 분들이었다. “동행 없으면 연락주세요!” 라는 한 마디는 아직 최상급 퀘스트를 깰 자신이 없던 나에게 한 줄기 빛이었다. 페스티벌 당일, 이들은 하나둘씩 모여 한 군락을 이루었고 언니가 등장할 때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으로 뛰쳐나가 목이 터져라 선우정아의 이름을 외쳐댔다. ‘아 이게 덕질이지!’


 세상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큰 관심이 없다. 내가 혼자 밥을 먹든, 공연을 보든, 잔디밭에서 뒹굴든 안중에 없다. 돗자리에 드러누워 맥주를 짝으로 마셔도 모른다. 심지어 언니 공연 중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아 선우정아 팬인가 보네’ 하고 넘어간다. 나를 신경 쓸 것 같은 그 시선을 신경 쓸 뿐이다. 선우정아의 팬들이 알려준 새로운 교훈이다. 생각보다 많은걸 가르쳐주는 덕질. 이래서 덕질이 안 끝나는가 보다.


이전 04화 육개장의 환골탈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