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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씩스미미 Sep 17. 2023

육개장의 환골탈태

육씨집안 다시 태어나다.

처음 만난 사람과 인사를 나누면 열 명 중 여덟 명은 꼭 이렇게 말한다.


“우와 육씨 처음 봐요! 연예인 중에 누구 있어요?”

“육성재 육중완 있고요. 조금 더 올라가면 육영수 여사...”

“아...!”


 희귀성씨를 가지고 있는 덕에 어린 시절부터 별명 부자였다. 육씨 성을 가진 모든 사람의 별명이었을 ‘육개장’부터 시작해서 ‘고기 육’, ‘육칠팔’ 등등 성과 관련된 별명이 참 많았다. 하지만 ‘육’이 붙은 단어 중 예쁜 단어는 없어서 어린 마음에 늘 속상했었다.


 학창시절, 작은 키 탓에 교탁 바로 앞은 내 지정석이었고 선생님의 표정과 혼잣말을 모두 캐치해서 친구들에게 전달하는 소식통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곤 했다. 중학교 2학년에 진학하고 첫 수학시간. 선생님은 출석부를 한 번 쭉 훑어보시더니 어느 순간 멈칫했다.


“육00...? (피식)”


본인 바로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육00인 줄도 모르고 선생님은 웃었다. 그러더니


“육쪽마늘이네. 육쪽마늘이야” 라는 들릴 듯 말 듯 한 혼잣말을 했다.


 ‘뭐??? 육쪽마늘...?????’ 육개장 육칠팔 육고기 육회 등등 오만가지 다 들어봤어도 육쪽마늘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단어였다. 아니 육쪽마늘이라니... 한창 예민한 중학생 여자아이에게 육쪽마늘이라는 별명은 너무 가혹했다.


 학창시절 뿐일까. 육이라는 성씨는 내 인생에서 늘 콤플렉스였다. 이름을 말할 일이 있을 때마다 로봇처럼 줄줄 읊는 레퍼토리가 생겼다.


상대방 :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육로봇 : “육00요.”

상대방 : “네. 윤00. 알겠습니다.”

육로봇 : “아니 육이요. 숫자 육 할 때 육입니다.”


 김이박최 들은 절대 공감할 수 없는 포인트일거다. 두 번 세 번 설명 해야 알아들을 수 있는 나의 이름 나의 성씨. 대체 나는 왜 육 씨인 걸까 아무리 원망해봐도 호적을 팔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2013년 어느 날, 평생의 육씨 동반자인 친언니와 함께 어느 공연에 갔다. <2013 GRAND MINT FESTIVAL> 이라는 이름의 이 공연은 이틀 동안 올림픽공원 안에 있는 여러 공연장에서 수십 개의 팀이 동시다발적으로 출연하는 페스티벌이었다. 라인업에 선우정아가 있었고 언니와 나는 신명 나게 선우정아의 공연을 즐겼다.


 당시 출연진 중 5개 팀 정도가 사인회를 진행했는데 그 명단에 선우정아의 이름도 올라와 있었다. “언니! 무조건 가야 돼!!! 미리 가서 줄 서있어야해!!!!!” 라며 언니를 미친 듯이 재촉했다. 사인회 시간보다 무려 30분 전쯤 도착해 10번의 대기표를 받을 수 있었다.


 ‘선우정아와 마주하다니, 선우정아와 대화를 하게 된다니. 말도 안돼...’ 손은 벌벌 떨리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드디어 나와 언니의 차례가 되었고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2집 앨범을 내밀었다. 사인을 받아야 하니, 이름을 말해야만 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저 육00라고.. 하는데...”


그녀가 고개를 들더니

“네! 알죠!”


두눈이 동그래졌다.

“...?????”

“당연히 알죠! 성이 특이해서 한 번에 기억했어요!”


 트위터 아이디가 내 이름을 유추할 수 있는 아이디였지만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말문이 막혀버렸다. 선우정아는 사인과 함께 이런 메모를 함께 남겨줬다.


'특이성 짱짱걸!'


 이것이야말로 육개장의 환골탈태인가. 육개장 고기육 육쪽마늘을 지나 특이성 짱짱걸로 거듭난 순간이었다. 예수님 부처님께서 이 극적인 순간을 위해 그동안의 시련을 주셨던 것인가. 누구보다 쎈 줄 알았던 이 언니가 나의 이름을 기억해주고 웃어주다니. 섬세하고 심지어 위트까지 있어.... 단짠단짠의 매력이 바로 이런 것인가. 평생의 컴플렉스가 한 방에 날아간 순간이었다.


 집 방향을 바라보며 두손 모아 절했다. '아빠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 육씨성으로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엉엉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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