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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씩스미미 Sep 15. 2023

2013년 여름 어느 날, 그녀가 나타났다.

난데없는 덕통사고

 여름방학을 맞은 대학생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거실에 배 깔고 누워 뒹굴뒹굴 거리고 있었다. 마침 티비에서는 평소 애청하던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방송되고 있었다. 당시 방송은 “the fan”이라는 타이틀의 200회 특집이었는데, 유명 뮤지션들이 “나 팬이에요!”라며 자신의 이름을 걸고 신인 뮤지션을 소개하는 컨셉이었다. ‘오? 좀 재밌겠는데?’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티비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효리는 김태춘을, 윤도현은 로맨틱펀치를, 박정현은 이이언을 소개했다. 선후배가 함께 콜라보 무대를 꾸미기도, 신인뮤지션이 본인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저 뮤지션들은 계 탔네. 저게 무슨 복이야’ 라며 심드렁하게 보고 있었다. 그러나 노래들이 내 취향과는 맞지 않았는지 리모콘에 자꾸만 손이 갔다.  드디어 이 프로그램의 호스트인 유희열의 순서였다. ‘그래, 이거 까지만 보자’ 유희열의 소개와 함께, 그녀가 등장했다.

 해그리드 머리를 한 키 큰 여성이 무대 한 가운데 서있다. 스모키 화장, 징 박힌 팔찌, 시꺼먼 원피스를 장착한 채 복장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토이 ‘뜨거운 안녕’을 부른다. 그렇게 신나던 뜨거운 안녕이 그녀의 목소리를 거치자 매우 처절해진다. ‘이 노래가 이렇게 슬픈 노래였어?’ 관객이 있든 없든 상관없다는 듯 노래에 취해 무대를 방방곡곡 뛰어다닌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덕통사고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무대를 휘어잡던 그 사람은 바로 ‘선우정아’다. 당시 유희열은 선우정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0년 동안 들은 가요 음반 중 가장 큰 충격을 받았을 뿐 아니라 자신의 음악적 한계를 봤을 정도였다” 라며. 심지어 지금까지도 “가장 존경하는 가수”로 선우정아를 꼽는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방송을 보고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눈이 돌았다. 서둘러 그녀의 이름을 네이버에 검색했다.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말겠어!’ 아니 그런데 이게 무슨 우연의 일치란 말인가. 아니면 이렇게 될 운명이었을까. 그녀의 단독공연이 글쎄,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예매를 종용하는 배너를 즉시 눌렀고, 운 좋게도 바로 티켓을 구할 수 있었다. 콘서트 날이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그러나 덕통사고의 충격도 잠시, 공연날을 기다리던 3주간의 시간 동안 기대감은 점점 무뎌지고 있었다. 공연을 보는 것이 워낙 흔한 일상이었기에 선우정아의 공연을 기다리는 시간들도 나에게는 별 다를 것 없었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가 날짜가 당도해 공연장에 향했고, 심드렁한 채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그녀의 등장을 기다렸다.


 그 이후의 기억은 남아 있지 않다. 나의 뇌는 완전히 블랙아웃 되었다. 러닝타임 동안 그녀가 뿜어내는 아우라에 관객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치 타노스를 본 듯 관객들은 그저 얼어버렸고 박수마저 사치였다. 나는 그저 눈만 껌뻑이며 가쁜 숨을 몰아쉴 뿐이었다.


 ‘선우정아X선우정아’라는 타이틀의 공연이 열렸던 2013년 9월의 어느 날. 눈과 귀와 뇌에 지진이 일었던 그 어느 날. 음악을 통해  ‘나’라는 인간 그 자체를 무한히 발산해내는 어떤 한 사람이 내 뇌리에 박혀버렸다. 기억은 지워졌고 당시 느꼈던 전율과 소름만이 생생히 존재한다. ‘아... 대체 내가 무엇을 본거지? 이게 뭐지?’ 정신이 아득했다.


공연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이거 단단히 미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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