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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씩스미미 Mar 07. 2024

여성 솔로가수는 별로다.

그녀를 알기 전까지는.

 학창 시절, 우리 집 거실에는 커다란 전축이 있었다. 초등학생 키 정도 되는 스피커가 두개나 붙어있었던, 지금 생각해보면 꽤 고가의 제품이었을 거라고 추측된다. 라디오 청취가 평생의 유일한 취미였던 아버지 덕에 아침에 눈뜰 때부터 밤에 잠들기 전까지 종일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대략 이런느낌.. 무지 컸었다. (출처:호철레코드)


 그 때문이었을까. 초등학생이었던 난, 태어나기도 한참 전에 발매된 유익종의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1986)’를 가사의 뜻도 제대로 모른 채 마냥 따라 불렀고, 빛과 소금의 ‘샴푸의 요정(1990)’은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나의 최애곡 중 하나로 함께하고 있다. 물론, 감성 충만한 여중생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던 신화부터 최근의 방탄소년단까지, 아이돌 덕질의 역사는 기본 중 기본이다. 방탄소년단 무대를 코 박고 보고 있다 보니 “나이 먹어서 결혼은 안 하고 잘~~한다~” 라는 어머니의 타박이 이제는 무뎌질 만큼 무뎌졌다.


 음악 청취력(?)으로 말하자면 일반인 중에서는 비교적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것이 나름의 자부심이다. 케이윌 노래 중에 이런 가사도 있지 않은가. “못생긴 애들 중에 내가 제일 잘 생긴 것 같대”. 내가 딱 그 모양새다. 오죽하면 학창시절 별명이 육크박스 였겠는가. 수 십년 동안 깨나 고급스러워진 나의 귀를 만족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흔하디 흔한 멜로디, 뻔한 사랑 노래, AR로 점철된 라이브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 이건 아니지~’ 하며 어느 순간 임진모로 변신한 내 모습을 볼 수 있다.


 20대는 이제 성인도 되었겠다, 홍대 인디 밴드의 음악에 흠뻑 취한 채 오만 공연을 다녔다. 노리플라이와 브로콜리너마저 노래의 가사들은 나의 말랑말랑한 감성을 자극했고 페퍼톤스의 음악은 청춘을 반짝반짝 빛나게 했다. 감성 충만 모던록으로 가득했던 20대 초반을 보냈지만 나이가 드니 점점 새로운 음악에 대한 갈증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2013년 어느 여름날, 나의 음악 취향을 깡그리 뒤집어엎은 한 아티스트를 만났다. 브라운관에서 우연히 본, 10여 년째 외길만 파게 한 한 아티스트가 있다.


‘나는 밴드 음악을 좋아한다.’

‘나는 여성 솔로 가수는 별로다’


선우정아라는 가수를 알기 전까지는.

그래. 그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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