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 루저가 방송국 PD가 되기까지...
그 쓸데없는 일들이 나를 PD로 만들었다!?
내 경우엔 확실히 그런 것 같다.
때론 효율성과는 한 참 동떨어진 것처럼 보였던 일들도 지나고 보면 지금의 내 존재를 살 찌운 자양분이었음을 확인할 때가 있다.
동기들이 법대 고시실에서 안정된 미래를!? 꿈꾸며 사법시험에 매달릴 때...
가정 형편도 별로면서... 난 문과대, 철학 동아리를 기웃거리며 법전 대신 인문사회과학 도서를 옆에 끼고 인문학 강의를 찾아다니며 정신적 유희를 만끽했다. 대학 입학이 내게 준 첫 특권이었고 지금도 내 인생에 제일 잘한 일들 중 하나였다.
자신이 가는 길에. 원하는 것에 당장 도움되는 쓸모 있는 것들만 쫓고 ~인간관계까지 눈 앞에 계산기에 매몰돼 있는 후배들을 종종 마주하게 되면 그 끝이 보일 때가 있다. 방송일을 하다 보면 더 그렇다.
카메라 앞에서만 근사하게 보이려 하고~보이는 이미지에만 몰두한다.
좋은 방송인이 되려 하기보다 좋은 방송인처럼 보이려고만 한다.
단기적인 성과와 평가. 보상에 익숙해진 탓이다.
근데 역설적이게도 카메라 앞에서 드러나는 모습 또한 카메라 앞에선 결코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대 위에서만 잘 보이려는 광대는 결코 관객에게 깊은 감동을 줄 수 없듯... 무대 밑 노력이 무대 위 욕심을 따라가지 못할 때 불행은 깊어진다. 그럼에도 카메라에 비치는 모습에만 안달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을 넘어 애처롭기까지 하다.
물아래 잠긴 빙산이 물 위에 드러난 빙산을 떠받치는 힘이듯 카메라 뒤의 모습이 카메라 앞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우린 그것을 내공이라 부른다.
단기적인 효율성이 만든 틀에 갇혀. 당장 눈 앞에 쓸모 있는 것만 쫓다간 결국 쓸모없어지기 십상이다. 쓸모없어 보이는 것도 자신이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면 쓸모 그 이상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결국엔 서로 맞닿아 있다.
"쓸모없는 것이 쓸모 있게 된다."- 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