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주례사
좋은 결혼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을 가지는 게 좋을지 3가지 핵심을 말씀드릴게요.
사람과 사람으로서, 독립적 인격체로 서로를 바라보세요. 아무리 힘들고 지쳐 있을 때가 되어도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은 친절입니다. 친절은 대가를 치르면서도 타인을 도우려는 성향입니다. 친절한 행위의 밑바탕은 공감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지치고 힘들면 그러기 힘들 수 있습니다. 이제 가장 가까이 지내면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은 배우자입니다. 각자 일을 하면서 지치고 힘들고 짜증이 나는 순간에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때 내 감정을 상대를 향해 퍼부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사랑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은 사치스러울 수 있습니다.너무 힘드니까요. 그저 '친절해야 한다'는 생각 정도면 족합니다. 그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두 사람의 관계에서 불필요한 감정의 소모와 갈등을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주례사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속담이 결혼 전에는 두 눈을 부릅뜨고 서로를 바라보지만 결혼을 하고 난 다음에는 한 눈을 감으라"는 것입니다. 이제 내 아내, 내 남편은 제일 중요한 내 편입니다. 내 편의 작은 허물, 결점, 실 수까지 고치고 지적해서 더 완벽한 사람이 되게 만들려 는 욕심보다, 한 눈을 감고 '지금 이 정도로도 충분히 괜찮다'라는 생각을 하는 게 좋습니다. 제일 끝까지 남을 '내 편'을 지키는 길입니다. 알고도 모른 척, 보이지만 안 보이는 척하면서 지적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 는 것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결혼 관련 심리학자 존 가트맨이 부부 생활을 오랫동안 영위한 커플과 그렇지 않은 커플 총 3천 쌍을 비디오로 분석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본 적이 있습니다. 그 많은 커플이 고민하는 문제의 70퍼센트는 실은 해결 불가능한 문제였습니다. 관계에 어려움이 있는 커플은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매달리고, 오래 지속하는 커플은 해결 불가능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피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즉, 원인을 파헤치기보다는 받아들일 것은 적절히 받아들이고, 그게 아닌 부분은 외면하고 거리를 둔 채 해결할 수 있는 대처 방안을 각자 찾는 것이 현실적 태도입니다.
두 사람이 이 자리에 함께 서 있을 것이라고 3년 전 오늘에도 예측했 을까요? 전혀 아닐 겁니다. 우리는 인생이 계획대로 이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렇지만 그건 어려운 일입니다. 세상에는 운의 영역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숨통이 트이고, 서로와의 만남을 감사하며, 앞으로 일어날 조금 아쉬운 상황도 견디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행복'을 의 미하는 단어 'happy'와 우연히 일어나다'라는 의미의 happen'은 같은 어근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렇듯 행복은 우연을 통해 일어납니다. 우연히 좋은 일이 일어나 행복하기도 하지만 나쁜 일이 생기지 않는 것도 행복입니다. 다행'이란 바로 그것입니다. 불운이 없는 것도 행 운이 있는 것만큼 좋은 일입니다. 그걸 인정할 때 계획 대로 되지 않았을 때의 실망, 불행하게 느껴지는 일이 생겼을 때의 좌절을 견뎌내고 서로를 원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살짝 운이 없었지만 내일은 괜찮아질 것이고, 행복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겸손하고 관대한 마음. 이것을 함께 갖는 것만큼 부부에 게 필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서로에게 친절할 것,
살짝 거리를 두고 외면해 볼 것,
우연과 운을 믿을 것,
이 세 가지 이야기를 두 사람이 갖고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이십여 년이 지나 두 사람이 차 한잔 하면서 오늘을 돌이켜보며 '아, 그날 참 좋았지'라는 말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