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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Apr 12. 2019

#4. 또 멀쩡한 장난감을 버렸다.

고작 장난감 싸움 하나에  드는 육아 자괴감



또 멀쩡한 장난감을 버렸다.

저렴한 걸 사서 얼마나 다행인지.

박스로 주방놀이를 만들어 주겠다고 뻘짓을 안 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저께 이미 1차로 싸웠다.

어제는 하원 하고부터 계속 싸웠다.

오늘은 눈 뜨자마자 싸워댔다.

가끔 우리집에 있는 모든 장난감을 싹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긴 버린 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빈 집에 살 거 아닌 이상 뭐라도 들고 싸울 게 분명한데. 아니 저들은 빈 집에 몸뚱아리만 들어앉아 있어도 싸울 텐데 뭐. 그러면서도 참고 참다가 터지면 '내놔 버려 버리게!' 결국 이거다.

싸움소리, 징징소리, 싸움 끝에 우는 소리에 내가 유난히 취약한가보다. 내가 애들을 잘못 키우는 건가. 고작 장난감 싸움 하나에 맨날 내 육아에 드는 자괴감이라니. 어린 시절 그렇게 안 살아와서 모르는 건가. 그렇다고 외동으로 자라온 모든 엄마들이 다 이렇진 않을 텐데.

저 싸움에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고 어떻게 훈육해야 할지 모르겠다. 갈 길을 잃었다. 책을 읽어도 모르겠고 적용도 안 되는 거 사실 읽고 공부하고 싶지도 않다. 솔로몬이랑 포청천이 살아 돌아온다 한들 어느 한 쪽 서운한 마음 안 생기게 잘 해결할 수 있을까. 손 떼고 싶을 거다. 구질구질하고 너무 매일 매 순간이라. 뭐 어쩌다 한 두 번 이라야지. 아 오은영스앵님은 아닌가...

조용하다. 늘 라디오를 틀어놓는 편인데 아침에 너무 시달린 탓인지 그냥 귀를 쉬게 해 주고 싶어서 아무것도 틀지 않았다. 한 시간 남은 이 고요함이 너무 좋다.

이렇게 될 거 저게 뭐라고 몇 날 며칠을 고민해서 샀을까. 가성비 따지고 뒤집개가 있는지 없는지 크기는 적당한지, 신나 할 둘째 모습 생각하면서 망설임 없이 샀는데. 다시 주워오고 싶지만 벌써 그런 적이 세네 번은 되는 거 같아서 못 가져오겠네. 멀쩡한 장난감 하나가 이렇게 골로 갔다.


남자는 주방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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