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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Apr 23. 2019

#8. 자율과 통제. 중간을 찾아 헤매는 초1엄마

안다. 아이는 잘 자라고 있다는 것을.


요즘 여덟 살 첫째가 계속 '돈'을 달라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혼자 다닐 때 돈을 '들고 다니고' 싶어한다. 물론 큰돈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목적이 있어서도 아니다. 그저 편의점에 가서 혼자 또는 누구랑 '사먹는' 재미다. 엄마 눈이 없는 곳에서 쫀쪼니 같은 걸 마음대로 사고 싶은 거다. 대화를 나눠보면 뭐 누구랑 무슨 요일에 학교 앞에서 한 번 씩 사주기로 했다고도 한다. 그때마다 내 나름의 설명을 해주긴 했지만 조르는 횟수가 많아지고 편의점에 갖다 바치는 돈이 늘어가니 나도 슬슬 기분이 안 좋아지는 거다.

혼자 학교나 교회를 종종 다니기 시작하면서는 시간에 있어서도 자기 멋대로 하려 한다. 적당하면 좋은데 30분 40분씩 일찍 가려고 한다.(지난 주 일요일도 그 문제로 잔소리 하다가 2차로 돈 들고 가겠다 해서 결국 오리입이 됨) 엄마 아빠랑 같이 나가는 시간에는 가족의 스케줄에도 좀 맞춰달라고, 함께 움직이는 시간도 있어야 한다고 말해도, 혼자 안 보내준다고 혼잣말을 궁시렁궁시렁. 그때부턴 아빠도 화가 난다.




괜히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너무 일찍 등하교를 혼자 시켰나? 내가 태권도를 쓸 데 없이 보냈나?(태권도의 양가감정에 대해서는 따로 글 하나를 쓸 수 있을 만큼 생각이 많다.)
자기가 먹고 싶다고 하는 껌이나 초콜렛 이런 걸 고르거나 먹을 때마다 너무 핀잔을 줬나? 내가 혹시 넌 엄마 껌딱지라고 혼자 좀 해보라고 속마음을 자주 말했던가?
집에 오면 엄마아빠는 동생들만 예뻐하는 것 같고 자기만 혼나고 그래서 집이 싫은가? 그래서 자꾸 밖에서 놀고 싶고 빨리 나가려 하는 건가?
(안다. 과하다. 누가 보면 아들이 이미 비행청소년이라도 된 줄 알겠다.)


사실 알고는 있다. 아이는 잘 크고 있고 정상적으로 자라고 있다는 걸. 위에 말한 행동들이 문제 행동이 아니란 것도 안다. 기준과 갈피를 못 잡고 자율과 통제 사이에서 흔들흔들하는 건 나다.

자율을 방해하자니 아이의 성취감을 빼앗고 간섭하는 것 같고, 그렇다고 자율을 좀 누리게 해 주자니 아직 햇병아리 1학년에게 좀 이른 것 같단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엄마가 옆에서 관여를 많이 하는 게 아직은 맞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매사 갈팡질팡. 내가 이러고 있으니 서로 입 대빨 나오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거다.



중간이 참 어렵다. 핸드폰 같은 좀 큰 문제면 차라리 대차게 '안 돼!' 선을 딱 긋는데, 생활 속 자잘한 문제들이 어렵다. 이 친구 저 친구 이 형 저 형 얘는 어떠니 쟤는 어떠니 친구 가려 사귀게 애미가 주동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저렇게 놀면 안 될 것...같은데 계속 옆에서 잔소리를 하는 것도 좀 아닌 것 같고. 어렵다.



결국 육아는 스스로 자기 행동을 정하고 선을 넘지 않는 아이가 되도록 키우는 장기적인 과업인가 보다. 아이가 여섯 살 때 담임이셨던 어린이집 선생님께서도 자신이 아들 둘을 고등학생까지 키워보니, 결국은 그 '선'이 중요하다고 하시더라. 욕도 아무리 부모가 안 쓰고 나무라고 해도 어차피 엄마 안 보는데서 다 쓰게 돼 있다고. 어쨌든 그것도 스스로 판단해서 정도껏, 친구한테 이 말까진 해선 안 되겠구나 내 입에서 이 정도 말까진 나와선 안 되겠구나 스스로 판단을 하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고. (우리 아이가 그렇게 클 거라고 격려해주셨다.) 끝없이 고민해야 할 문제다.




나중에 돌아보면 아무 문제도 아닐 텐데 엄마의 불안감 참 쓸데없다.

많이들 말한다.
'혼자 등하교시키면 안 돼.'
'엄마가 꼭 하교하고 같이 놀이터 가서 반애들 만나게 해줘야 해.'
'남자애들 태권도 보내면 안 돼.'
'형들 만나게 하면 안 돼.'
......
이런 말들이 나를 더욱 걱정 소굴로 몰아넣는다.


엄마 아빠가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면 아이양육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거라고,
아이가 기도할 때 우리가족 건강하게 해주세요, 우리가족 오래 살게 해주세요 하면 그걸로 된 거라는 말을 들었다.
무려 두 개나 만족시키고 있는데도 나는 뭐가 저렇게 흔들흔들 걱정이 많을까?

다가오지 않은 일들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상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안 좋은 쪽으로 결론이 지어져서 아이의 현재 행동을 다 불안한 눈빛으로 보게 되는 것 같다.


'너(엄마)만 가만히 있으면 돼.' 라는 어떤 목사님의 조언이 생각난다.


가린다고 가려지냐


나부터 확실한 기준을 좀 세우려고 항목을 나눠 아이와 회의록을 쓰며 회의(?)를 좀 했다.
돈 쓰기나 돈 지참 문제, 갖고 싶은 물건들을 얻는 법, 군것질거리를 사고 싶을 때 등등. 다행히 아이도 서로 잔소리하고 말대꾸 하고 그럴 때보다 잘 받아들이는 것 같다. 나도 좀 가닥이 잡힌다.


누가 보면 고작 초등학교 1학년 키우면서 뭐 저렇게 고민하고 아무 일도 아닌 거 진지하게 생각하나 하겠지만 나는 당당히 어려워할 거다. 그러다 보면 좋은 방향이 잡힐 거라 믿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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