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사람들은 열심히 움직이고 오직 나와 저 아이의 시간만 멈춘 것 같은 느낌. 아이와 함께 울어버리기 직전, 오랜만에 보는 미혼의 친구가 예쁘게 차려입고 출근을 하다 아는 체를 했다. '나 이 길바닥에서 40분을 뭐하고 있는 거지?'
순간 쪽팔린 걸 넘어서 초라한 기분이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돌아오니 거실은 엉망이고 빨래도 산더미에 설거지도 안 돼있다. 몸도 정신도 이미 진을 다 빼서인지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내가 아이를 잘 못 키우고 있나. 저 아이의 행동에 대체 무슨 좋은 의도가 있을까. 스스로 묻고는 있지만, 어쩌면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먼저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어.'
'나는 지금 아무 대답도 고갯짓도 하기 싫지만, 엄마는 나한테 와서 꼬옥 안아주고 이러이러해서 우는구나- 라고 말해줬으면 좋겠어.' 문제는, 아는데 하기가 싫다는 거다. 입 밖으로 그 말이 도무지 나오지 않는다. 이건 '화'가 난다기 보다는 '억울한 감정' 같다. 니가 뭘 잘 했다고. 나도 힘들었어.
나도 추웠어. 너 때문에 니 형도 따뜻하게 못 보내줬고, 동생도 유모차 속에서 추위에 떨었어.
그런데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고?
이런 생각. 고작 만 3세 아이랑 이런 기싸움이라니. 아이는 다섯 살이고 나는 서른 넷 씩이나 먹었으니까, 혹는
걔는 자식이고 나는 애미니까 내가 먼저 다가가서 안아주어야 하는 건가.
결국은 결국은 결국에는, '이래서 울었니.' '이래서 그러고 있는거니.' 내가 먼저 말을 꺼낸 덕에 겨우 달래졌지만
그 말을 하면서도 나는 차가웠던 것 같다.
육아, 어렵다. 내 바닥을 내 치졸함을 매일 마주 하는 극한의 작업.
다른 사람들의 육아가 다 즐거워 보일수록 나는 더 작아진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구나 시궁창일 거고 항상 기쁠수만도 없고 항상 화나기만 하는 것도 아니란 건 알지만. 스트레스를 견뎌내는 힘이 체급이, 사람마다 매우 다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