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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Oct 25. 2019

엄마가 '엄마 탓'을 하는 게 싫었는데.

아이의 행동이 나 때문인 것 같았다


하교시간이라 놀이터가 북적였다.

아이와 같은 반 친구들도 네 명이나 있었다. 나는 놀이터에서 항상 '자발적 외톨이'멀찍이 혼자 있는 편인데, 오늘은 자연스럽게 같은 반 엄마와 대화를 나누게 됐다. 네 명의 아이들은 같이 축구 교실에 다닌다고 했다. 오늘도 수업이 있는 날이고, 차량을 기다리면서 간식을 먹는다고 한다. 조금 후 닭강정이 배달됐고, 친절한 그 엄마는 네 아이들을 불러 모으면서 정우까지 챙겨 불러주었다.

아이들이 다 뛰어 왔는데 정우는 오지 않았다. 엄마들이 닭강정을 펼치고 아이들이 그걸 먹는 동안 나도 혼자 거기 계속 있기가 왠지 불편해서 '정우가 왜 안 오지' 하며 자연스럽게 자리를 떴다.

가서 같이 먹자 해도 안 간다고 하는 아이.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가 맛있는 걸 먹고 있어도 절대 그리로 가지 않는 아이.

"친구들하고 싸웠어?"
"아니."
"근데 왜 저리로 안 가고 혼자 돌아다니기만 해?"
"그냥."

노파심에 던진 질문에 별 소득 없는 대답을 듣고 혼자 잠깐 고민했다.
'아까 분명 같이 놀던 것 같은데. 친구들하고 사이가 별로 안 좋은가?'



'정우는 안 먹는대요' 하고 다시 그 자리로 가서 엄마들하고 얘기 나누면 좋은데 나는 그러지를 못한다. 못 가겠다. 멋쩍기도 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저들은 이미 친한데 내가 오늘 갑자기 가서 무리에 끼는 건 아무래도 이상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 혼자 앉아 아이를 슬쩍 봤다.
아이는 혼자 어슬렁어슬렁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걸어 다녔고, 집에 갈까 물었더니 가겠단다. 가는 길목에서 아까 얘기 나눴던 엄마가 정우를 한 번 더 챙겨준다.
"정우야, 이리 와서 이거 좀 먹고 갈래?" 건네는 말에, 먹겠다 안 먹겠다 대답도 못 하고 쭈뼛거리고 서 있기만 하는 아이.

그때 정우한테 귤을 주고 싶다며 달려오는 한 친구를 보고서 나는 그제야 안심했고 또 아쉬웠다.
'친구랑 문제가 있는 건 아니구나. 다행이다.'
'그래도 가서 좀 같이 어울렸으면 좋겠는데...'





나 때문인 것 같았다.
내가 엄마들 사이에 무리에 먼저 다가가지 못하니까 이 아이도 알게 모르게 내 영향을 받은 건 아닐까.
이미 형성된 집단에 들어가기 힘들어하고 눈치 보고 벌써 그러는 걸까.
내가 좀 더 외향적이었다면 내 아이도 지금과는 좀 다르지 않았을까.

아이의 사소한 행동까지 다 '엄마 탓'을 하는 거, 스스로가 하든 제삼자가 하든 그거 정말 싫었는데 나도 무의식적으로 자주 그런다는 걸 깨달았다.


아직까지도,
'내가 이유식을 골고루 안 해 먹여서 니가 편식을 하나.'
'내가 때려서라도 너 이 교정을 더 시켰어야 됐는데 강력하게 안 권해서 부정교합이 더 심해졌나.'
'내가 분유를 먹여서 니가 몸이 약한가.'
하는 말을 가끔 하는 우리 엄마.

응, 아니야 엄마.
이유식 듣도 보도 못 한 온갖 거 다 때려 넣고 해 먹였어도 나는 여전히 편식을 했을 거야.
응, 그것도 아니야 엄마.
다시 어릴 때로 돌아가서 나 매타작을 한다고 해도 난 교정을 하지 않았을 거야.
응, 아니야.
몸이 약한 사람이 무슨 애를 셋 씩이나 낳아??

쓸 데 없이 자기 탓을 자꾸 하는 엄마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결국 나도 엄마처럼 되려나. 그게 엄마마음 인가?


내 아이도 닭강정이 먹기 싫었을 뿐이고, 그저 다른 형들 딱지 치는 게 더 보고 싶을 뿐이었을 텐데. 엄마가 내향적이어도 아이는 외향적일 수 있고, 엄마가 외향적이어도 아이는 얼마든지 내향적일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 엄마처럼 쓸 데 없이 내 탓을 해본다.




뒷이야기)
"친구들 봐봐. 학교 끝나고 저렇게 닭강정이며 뭐며 간식 엄청 먹는 거야. 집에 탕수육 있거든? 너도 오늘은 집에 가서 탕수육 좀 먹고 나가 놀아. 맨날 젤리만 찾지 말고."
"싫어."
"왜 싫어? 탕수육 엄청 맛있어. 안 먹으면 후회한다?"
"후회 안 해."
"그래, 먹지 마라 먹지 마!!"

이 와중에도 먹는 거에 집착하는 키 번호 1번 아들의 애미... 기승전탕수육.

나중에 '내가 너 어릴 때 아주 혼구녕을 내서라도 끝까지 먹였어야 했는데, 다 내 탓이지.' 이런 말은 절대 안 할 거라고 다짐해본다



울고 있는 탕수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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