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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Nov 07. 2019

내 아이에게 무례한 사람들

악의가 없다는 말로 변호해주긴 싫다



한 할머니가, 본인의 일곱 살 난 손녀가 우리 첫째한테 '오빠'라고 부르는 걸 봤단다. 근데 자기가 보니까 우리 아이 키가 손녀딸 키보다 훨씬 작은 거지. 아이와 같이 있는 나한테 묻는다.


"얘가 몇 살이여?"

"여덟 살이요."

"여덟 살? 오빠 맞. 우리 솔이보다 한참 작아서 친동생인가 했지."



일면식도 없는 한 아저씨는, 세 아이들을 빤히 다보더니 다짜고짜 삿대질을 하 말한다.


"얘 여섯 . 얘 네 살. 얘는 세 살?"


"아뇨. 여덟 , 다섯 , 세 살이요."


친절하게 정정해 줄 필요는 없었지만, 아이들이 보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그의 틀린 추측을 바로 잡았다. 내 말을 들은 그는 둘째를 향해 마디 덧붙다.


"야, 너 많이 먹고 빨리 야겠다. 동생이 너보다 더 크겠다야."



내 아이에게 무례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을 나쁜 할머니, 나쁜 아저씨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저 말들에 악의 없다는 것도 안다. 그저 자기 눈에 보인대로 말했을 . 그런데 아니다. 그게 악의 아닌가. 다른 사람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는 그 자체.

무례한 태도를  악의 없다는 말로 변호해주고 싶지는 않다.



아이들이 없을 때 나한테 말하는 거야 뭐, 기분 나쁠 일이 아니다. 오히려 '맞아요 저도 애들이 제 나이로 안 보여 걱정이에요' 하며 수다를 떨어도 떨 수 있다. 아이들이 뻔히 눈 앞에 있는 곳에서 그런 말을 듣는 건 얘기가 다르다. 안 그래도 1학년이 된 후 부쩍  덩치와 키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자긴 왜 이렇게 작냐고 묻는 첫째. 막내동생 보다 무엇이든 앞서고 잘하고 싶어 하는 둘째. 이런 아이들을 향한 배려 없는 말에 내가 불쾌해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언젠가 우리 세 아들을 내려다보면서 첫째 아이한테 '니가 딸로 태어났어야 했는데...'라고 말한 아저씨가 있었다. 눈 앞에서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 내 아이.  그걸 생각하니 키와 나이 이야기쯤이야 양반에 그쳐버리는구나.



배려 없는 사람들

무례사람들

아이는 모를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



저들을 틀렸다고 말하고 있지만 나라고 다를까. 나도 누군가에게 런 사람이었던 적이 분명 알게 모르게 있었을 텐데. 혹여 마음에 걸릴 땐 악의로 한 말은 아니었다며 스스로를 변호하진 않았을까.


누군가에게 무례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짧은 순간에도 타인의 마음을 살필 수 있는 내공을 쌓고 싶다.



네, 하위 5프로 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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