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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Nov 20. 2019

이번 생은 곽덕순 같은 엄마는 못 되겠지만

자식 위해 이 한 몸 못 바쳐도 괜찮을까?


'동백꽃 필 무렵'이 딱 2회 남았다.

드라마 작가들이 천재가 아니면 대체 누가 천재란 말이냐.. 이게 멜로드라마인지, 가족 드라마인지, 스릴러 드라마인지, 복합인지 장르를 나누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연애 이야기, 부모 자식 이야기, 까불이의 스릴러는 거들 뿐이지만 그마저도 공들여 풀어내는 이 작가도 천재 중 한 명인 것 같다.






정주행을 하면서 서른네 살의 동백이 마음에 감정이 이입될 때보다 용식이 엄마 곽덕순의 마음에 이입될 때가 많았다.
(아니 고두심은 '나의 아저씨'에서도 아들 셋 엄마 하더니 왜 또 여기서도 아들 셋 엄마고 그래?!)

애지중지 하며 세상 더러운 꼴 안 보여주고 키워온 유복자 막내아들. 다 큰 아들이 양손에 커피 들고 있다고 엄마가 직접 바지춤에 셔츠를 넣어주는 장면은 디테일 장인이라고 밖에 설명이 안 된다. 막내는 커서도 아기 취급을 받는다는데, 이걸 이 한 장면으로 끝내 버리는 섬세함..(은, 드라마를 나노로 훑는 사람+막내에 대해 보고 들은 게 많은 사람만 알 수 있는 건가!!)

그런 아들이! 애 있는 여자한테 목숨까지 걸고 불구덩이 뛰어들며 돌아다니는데 세상에 어떤 엄마가 두 팔 벌려 환영할까. 어떤 사람들은 '동백이 딱하게 여기면서 베프 베프 할 때는 언제고 자기 아들이랑 만나니 저렇게 돌변을 하냐'며 뭐라고 하던데.

태평한 내 새끼에 심란한 니 팔자.
좋아할 애미가 어디 있니.​

자기의 과부 팔자를 탓하는 무당의 머리채를 잡은 전적이 있던 곽덕순이라 이 말은 너무하지 않나 싶지만, 자식이 그런 건가 보다. 곽덕순을 못 된 이기주의자라고 비난하고 싶지 않다.

자식은 부모에게서 분리된 고유한 존재고, 자식 인생은 부모와 상관없는 별개의 인생이라고 이론은 말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면 세상에는 결혼 반대도 없고 부모 자식 간 갈등도 아무것도 없게?


아니요. 엄마는.. 못 먹을 거예요.
내리사랑이라는 게 얼마나 얍쌉하고 막강한 건지.
자식은 부모를 말려 죽여도 부모님 장례식장에서 어영부영 육개장 한 술은 뜨잖아요.​

엄마를 버리고 온 동백이의 말을 들으면서 '고백부부'의 대사가 오버랩되기도 했다.

이제 그만 니 새끼한테 돌아가.
부모 없이는 살아져도, 자식 없이는 못 살아.​
(이 말을 장례식장 육개장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무릎을 쳤다.)

부모를 잃은 상실감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참 미안한 말인데도, 고작 몇 년 자식을 낳고 키웠다고 저 대사들이 의미하는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자식은 정말 그런 건가 보다.


친구로는 콜이고 며느리로는 뺀지냐고​
따져 묻는 용식이가 정확히 포인트를 짚어낸 걸지도 모르겠다.


근데 또 신기한 건, 나도 내 자식 사랑하고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거 좋고, 자식은 그런 존재라 곽덕순 마음을 알겠다고 하지만, 덕순이나 동백이 그리고 아프면서도 딸의 곰국을 걱정하는 동백이엄마 같은 엄마는 평생 못 될 거 같다는 거다.

오래된 자기 티셔츠를 입고 낡은 신발을 신은 엄마를 보면서 용식이는 말했다. 그렇게 아껴서 뭐 하게, 엄마가 그렇게 살면 내 마음에 못이 박힌다고.

내 속에는 온갖 못을 30년을 때려 박고는
지 속에 못 하나 박히는 게 뒤지게 싫다는데 어째. 그거 하나가 더 따가운 걸.​

이렇게 말하며 티셔츠를 벗어 바로 걸레로 써버리는 곽덕순.



군대 있을 때 용식이를 팬 선임에게 닭 300마리를 튀겨 보내고, 아들 새벽 출근 전 밥상을 거하게 차리는 엄마. 다친 아들을 위해 오리인지 타조인지 분간이 안 가는 큰 고기를 몇 시간 동안 푹 고아내는 엄마. 니 뒤에는 언제나 내가 있다고 세상 무서울 것 없이 외치는 헌신적인 엄마. 게으르고 이기적인 나는 그렇게는 못 살 거 같다!(내가 이렇게 나를 못 내어주는 사람인지 아이들을 키우면서 처음 알았다.)


엄마는 내가 수족구만 걸려도
나한테 맨날맨날 미안하다고 하는데.​

필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집 현실은 애들이 감기나 뭔 병 딱 걸리면,
거 봐라 손 바로바로 안 씻더니!!
거 봐라 잠바 안 입고 돌아다니더니!!
거 봐라 양치 안 하더니!!

저녁 반찬이 학교에서 먹은 점심이랑 똑같다고 애가 투정을 딱 부리면,
에고고 그랬구나 엄마가 식단표 확인을 못 해서 미안해...는 멍멍이나 줬고,
야 야 똑같은 반찬 두 끼 먹는다고 어떻게 안 되거든? 따져버림ㅋㅋ
동백꽃을 보다 보면 내가 좀 자격미달인 엄마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곽덕순을 보면 우리 어머님이 떠오른다. 지난주 시댁에 가서 또 바리바리 김장김치를 비롯한 각종 김치 5종 세트와 채소, 곡식들을 잔뜩 받아왔다. 아들이 오랜만에 가면 점심을 늘 한 상 가득 차려내는 어머님. 그러면서도 차린 게 없다고 하시고, 늘 퍼주면서도 항상 미안해하는 어머님. 곽덕순의 타조고기 오리고기를 보면서 어머님의 밥상이 생각났다. 그 귀한 것들을 빈손으로 받아오기만 하는 주제에 냉장고 정리할 생각에 속으로 깝깝해하는 며느리나, 김치통을 보자마자 이걸 또 왜 다 싸왔냐고 볼멘소리를 하는 형님(딸)까지..!! 드라마에서 보면 그 밥상과 김치통들이 참 애틋하고 마음이 아픈데, 현실의 모습들은 참... 그러하다!(우리집 한정..이라 치고ㅋㅋ)

애쓸 거 다 쓰고 노력할 거 다 하고도 결국은 아쉬운 소리 듣는 게 부모 노릇인 걸 부인할 수가 없네 ㅠㅠ


헌신적 모성애라는 게 단순히 옛날 엄마와 요즘 엄마의 차이는 아닌 것 같다.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옛날 분이라고 무조건 자식에게 헌신적인 것만도 아니고 젊은 엄마라고 꼭 나 같은 것만도 아니더라.
모성애는 이런 거지, 이래야 한다, 나를 다 내어주고 다 포기하고 자식만 바라보는 숭고한 정신만 모성애 취급하는 것 같아서, 아 이거 아예 노선을 이쪽으로 정해버린 드라마인가 하며 답답해하던 차, 동백이의 말이 아주 쐐기를 박았다.

(나는 이 착한 헐크를 KO 시킬 말을 알았다.)
저 그냥 엄마 할래요.
여자 말고 그냥 엄마로 행복하고 싶어요.​


상처 받은 여덟 살 아들 마음을 생각하면 어느 엄마라도 그러했겠지만, 동백이의 선택이 나는 슬펐다. 지난 회 엔딩은 너무 맴찢이라 자꾸 머리에 맴도는데, 이건 꼭 용식이의 눈물 참는 눈이 시뻘게져서만은 아닐 거다.(이런 이별 씬은 처음이었다고 ㅠㅠ)




그렇게 기적 같던 엄마의 봄날이 저물었다.
그리고 그 봄날을 먹고 내가 자랐다.​

부모님 이야기를 다룬 글쓰기수업 동료의 글 한 편과, 재수를 결심한 아들 이야기를 쓴 이웃님의 글을 읽고, 필구와 동백의 봄날을 떠올렸다. 엄마의 봄날을 먹고 자란 사람이 어디 필구뿐일까. 우리는 모두 필구처럼 부모의 봄날을 먹고 자라지 않았을까. 용식이도 그렇고, 나도, 남편도, 수업동료도, 이웃님의 아들도..





사실 어른 필구가 엄마의 봄날이 저물었다고 너무 확언해서 걱정인데, 마지막 회를 위한 극적장치라고 생각하고 싶다...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말을 비난했던 동백이엄마 행동이 괜히 나온 떡밥이 아닐 거라 생각하며!! 동백일 위해 뭐 하나는 해주고 간다는 말이 중요한 떡밥일 거라 기대하며!!

결혼을 하는 것만이 동백이의 주체적인 삶이라는 건 아니지만, 이미 동백이가 용식이 없이 행복할 수 없는 건 분명하니까.

동백이가 여자로도 엄마로도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자식에게 아낌없이 내어주는 희생만이 모성애의 전부는 아니라는 반전을 마지막 회에서 보여주길 혼자 진지하게 기대해본다!!
(나만 바랄 시 머쓱+이 와중에 그럼 덕순씨는.... 곽덕순 걱정 한 스푼 ㅎㅎ)


다른 대사와 이야기도 써두고 싶은 게 많지만 다 줄이고.. 오늘 밤을 기다리며 써보는 두서없는 곽덕순과 동백이와 우리 어머님과 나의(?)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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