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드리셋 Dec 02. 2019

어느 전업주부의 이유 있는 사치

아들이 내 손톱을 보며 말했다. "아침 하늘의 별 같아."



“오빠, 나 네일 아트 한 번 받아볼까?”


함께 동네를 오가며 네일샵이 보일 때 나는 종종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은 얼마든지 언제든지 니가 하고 싶다면 아까워 말고 받으라 했지만, 전업주부인 나에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악성 곱슬머리를 쫙쫙 펴기 위해 미용실에는 으레 반년에 한 번씩 가면서, 수분크림은 떨어질 때마다 꽤 괜찮은 브랜드로 사면서. 그런데 손톱을 관리하기 위해 전문 매장에 들어간다는 것은 왠지 쓸 데 없는 일인 것만 같았다.(쓸 데 없다 생각하면서도 한 번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5년 정도는 한 것 같은 이중성 1) 그런 내게 지름신이 강림했는지 두 달간의 축농증 치료에 심신이 지쳤는지 갑자기 바람이 들었다. 인생 첫 네일 아트를 받기로 한 것이다. 내 집처럼 들르던 이비인후과 옆에 작고 아늑해 보이는 네일샵이 들어선 것이 신의 한 수였을까! 5년을 밀어냈는데 이제 이 사치 한 번 부려봐도 되지 않겠어? 하며 샵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큰 사거리 건물 2층에 자리 잡은 매장은 길가다 본 여느 네일샵처럼 조그마했다. 열 평 남짓한 공간의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색색의 제품들을 창밖이 아닌 매장 안에서 직접 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내 마음은 요동쳤다. 얼마 전 고운 색감에 홀려 플러스펜 36색 세트를 이유도 없이 구매했던 일이 생각났다.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하고 깔끔한 물건들을 좋아하는 나는 금방 매장 안의 작은 볼거리들에 매료되었다.


네일 아트가 난생처음이라고 말하는 나에게 사장님은, 한 시간 좀 넘게 자기에게 손을 푹 맡기라고 말했다. 아니, 손을 맡기라니! 목욕탕에서 몸을 통째로 맡겨본 적은 있어도 누군가에게 한 시간 넘게 손을 맡겨보는 은 처음이었다. 그녀의 말도 작업 테이블도 생경하기만 했다. 내 손톱은 작고 동그랗고 얇다. 손가시가 수시로 일어나는 건조하고 거칠거칠한 못난 손톱이다. 이래도 네일 아트를 받을 수 있나 걱정함과 동시에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남편이 떠올랐다. 사치를 부리기로 마음먹었으면서 이런 여유를 누리는 게 왠지 남편한테 미안해졌다. 여러 의미가 담긴 나의 “걱정이네요.” 한 마디에 그녀는 말했다.


“누리셔도 돼요. 마음껏 누리세요. 안 되는 건 없어요. 다 돼요. 제가 오늘 여태 산 날 중에 최고로 빛나는 손톱 가진 날로 만들어 드릴 게요.”


동그랗고 까만 뿔안경 너머로 두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는 그녀에게 손을 맡기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푹신한 쿠션 위에 두 손목을 올렸다. 손톱이 작지만 못나지 않다며 이름 모르는 도구들로 내 손톱을 정리하던 그녀는, 민트색에 빠져 있다는 내 말을 듣곤 몇 가지 색을 테스트해주었다. 손톱 끝에 톡! 톡! 칠하는 붓질 몇 번만으로 나는 ‘우와’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녀는 붓이 내 손톱보다 크다며 작은 스펀지로 콕콕 두드려주는 방식으로 손톱에 그라데이션을 입혀주었다. 갈색 체크무늬 앞치마를 단정하게 두르고 스펀지를 잡고 있는 그 모습을 보니, 어릴 적 다니던 미술학원 생각도 나고 어쩐지 양가감정이 들었다.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나 하는 부담스러운 느낌과(비록 비용을 지불한다지만), 내가 뭐라도 된 것만 같은 으쓱한 느낌. 나는 중간중간 외벌이 전업주부로 사는 이야기를 했고, 아기자기한 것들을 좋아하는데 아들만 셋 키우게 된 푸념 아닌 푸념을 하기도 했다. 그러자 그녀는, 이 지역에 나와 같은 엄마들이 많은 것 같아 등원 시간대 이벤트를 많이 고민한다고 했다. 전업주부를 생각하는 섬세함에 내가 놀라자 “다 알아요. 알죠.” 한다. 사람 대하는 직업을 가진 사장님들의 쉽고 뻔한 멘트로 넘길 수도 있지만, 나는 네일 아트를 받아볼까 말까 했던 내 지난날의 내적 갈등을 들켜버린 느낌이었고 그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손톱을 구워주는(?) 기계도 처음 봤고, 프렌치 네일이 뭔지도, 큐티클 오일이란 게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어떠세요?”


실컷 이야기를 나누며 신기함에 젖어 있는 동안, 내 손톱이 변했다. 여리여리한 민트색의 은은한 손톱. 겨울이라 추운 색이 아닐까 걱정했지만 마무리된 걸 보니 설령 추워 보인 대도 상관없었다. 몸만 안 추우면 되지. 아이들은 세상 추워 보이는 엘사 드레스로 대동단결인데 나라고 뭐 어때?

다섯 살 아들한테 보여주니 “우와! 예쁘다! 매직큐야?” 한다. 그래, 매직이야. 엄마 손에 오늘 매직 좀 부려 봤어. 여덟 살 첫째아들은 좀 더 구체적인 질문을 쏟아낸다. “언제 색칠했어? 엄마가 했어? 누가 해줬어?” 괜히 시간이 남아도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아, 빨래산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아직 어린 너희들 포함 우리 식구를 위해 엄마가 매일 집을 깨끗이 관리하고 있는데, 손톱에 예쁜 옷을 입히면 그 일들을 좀 더 기분 좋게 힘내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손 좀 가꿔 봤어. 어때?”

아들은, 엄마 손톱이 밝은 아침 하늘에 떠 있는 별 같다고 말했다.






돈과 시간을 썼으니 부지런히 집안일을 하겠다며 부산을 떨던 나는 오후 내내 히죽거렸다. 마른빨래를 손으로 쫙쫙 펴서 갤 때도, 장 보고 계산하면서 카드를 내밀 때도. 엄지손가락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할 때도, 도어락을 누를 때도. 키보드를 두드리는 이 순간에도 웃음이 새어 나온다. 하얀 자판 위에 옅은 옥빛의 손톱이 타닥타닥 튀어 오른다.


네일 아트를 받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주부고 엄마다. 고무장갑 끼는 걸 싫어해서 설거지할 때마다 신경이 쓰이고, 아이들 옷의 빡빡한 단추를 끼워 줄 때도, 막내 응가를 처리할 때도 신경이 쓰인다. 서비스로 받은 큐티클 오일을 수시로 발라 주는데, 바르고 돌아설 때마다 손에 물 묻힐 일이 생기고 생기고 또 생긴다. 손톱도 짧고 티도 거의 안 나는 색으로 했으면서 아주 오만 호들갑, 육만 기쁨, 칠만 조심을 하고 있는 내가 좀 웃기기도 하다. 왠지 한 번으로 끝날 것 같지 않은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날. 히죽거리는 순간들에 하루 천 원을 지불한다 치면 까짓 거 한 달에 3만 원 아깝지 않을 것 같다.(아깝지 않다면서 '3만 원'을 키보드로 쓰며 깜짝 놀라고 있는 이중성 2)


내년엔 아들들의 군것질 거리와 장난감처럼, 남편의 테니스 동호회 월회비처럼 오롯이 나에게 만족을 주는 품위유지비를 너무 아끼지는 말아야겠다. 그게 피부마사지가 될지 눈썹 문신이 될지 뭐가 될진 모르겠지만. 전업주부의 소소한 사치를 스스로 시간낭비, 돈 낭비라고 치부하지 않아야 할 텐데 쉽지는 않을 것 같다.(또 아까워하며 망설이다 못하는 순간들이 다반사겠지!) 전업주부 낮은 자존감을 손톱으로 끌어올릴 수 없는 건 당연한데 세상이 어디 논리로만 돌아가나. 한 시간 남짓 좁은 공간에서 색색이 융숭한 대접을 받고, 글감까지 되어주었으니 나의 첫 네일아트는, 로맨틱, 성공적이다. 받은 지 열흘이 다 되어가는 오늘도 아이들 고구마 껍질을 까주며 손톱 반짝임에 입술을 씰룩거리니 이걸로 사치의 이유는 충분하지 않은가!



입술을 씰룩
매거진의 이전글 이번 생은 곽덕순 같은 엄마는 못 되겠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