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냥 자다가 지구 조용히 망해버려.. 또는 신이 내 그릇을 잘못 봤어.. 하는 날이 있는데 어제가 그런 날이었다.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아이한테 빽 소리를 질렀는데 이 정도면 병이다 싶었다. 다들 잠든 밤12시, 혼자 거실에 멀뚱멀뚱 앉아 내가 아이들한테 화가 나는 상황은 주로 어떤 때인지 무엇 때문인지 생각해봤다. (주관적+제 살 깎아먹기 주의) 1. 내가 무시당하는 것 같은 느낌 - 이 정도 말하고 부탁했으면 좀 들어줄 법도 하지 않냐 - 사람이 말을 하면 들은 척이라도 좀 해라 - 사람이 부르면 대답이라도 좀 해주라 426개월 산 남자 포함 우리집 식구들을 향해 내가 많이 하는 말 중 한 부류다. 어떤 육아서에는 '몇 번을 말해야 돼!' 이 말은 하지 말라고 쓰여 있던데. 육아서에 금지어라고 되어 있는 단어와 문장은 왜 이리도 쉽게 입 밖으로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망했어...) 다 엄마 탓을 하면서 나한테 다짜고짜 짜증을 부릴 때도 화가 난다. 들은 척도 안 할 때도 그렇지만 내가 무시당하는 기분이랄까. 아이의 화에 화로 답하지 말랬는데!!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고, 애들도 엄마니까 집이니까 그러는 거라는 걸 아는데. 하지 말란다고 안 하면 그건 애가 아니라는 거 아는데. 머리와 마음의 거리는 이렇게나 멀다. 2. 울음소리와 징징소리에 취약한 편 우는 소리 짜는 소리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냐만. 30년 가까이 조용한 집에서만 살았던 나는 정말 가끔은 귀마개를 끼고 있고 싶을 때가 있다.(까불이냐..) 아이가 울면 마음이 급해지고 하던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여름엔 땀이 나고 겨울엔 행동이 굼떠진다. 먹을거리를 준비하는데 식탁의자에서 막내가 빼액빼액 울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는 말을 못 해서 울고, 둘째는 그냥 마이웨이의 삶이 피곤한지 여러 모양새로 울고 성질을 낸다. 첫째는 그냥 원체 징징st. 지들끼리 싸울 때 소리 지르고 우는 것도 되게 신경 쓰이는데(특히 울면서 나한테로 올 때...) 그래도 무시하는 스킬을 꽤 길렀다. 정적과 고요함을 사랑하는 내가!! 애 셋을 키....키..키우고 있다니... 3. 아이에게 보이는 이상행동, 문제소견 이상행동을 모른 척하는 것, 다독여주며 마음을 안심시켜 주는 것, 원하는 대로 어느 정도 해주는 것... 다 해줄 수 있는데, 나도 사람인지라 하루에도 그게 수십 번씩 반복되면 지쳐버린다. 그 마음이 좀 더 발전되면 이렇다. '나도 한다고 했는데 대체 더 어떻게 하란 말이야!' 나도 최선을 다했는데.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다 내 탓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여러 문제가 유독 한 아이에게서만 자주 나타날 때 '넌 대체 왜..' 하는 생각이 들면서 원망하는 마음이 올라오기도 한다. 4. 내가 싫어하는 행동들의 반복 밥 안 먹을 때, 거짓말할 때,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만 가면 정신줄 놓을 때, 싸울 때, 때릴 때, 놀릴 때, 양치 안 할 때, 늦었는데 꾸물댈 때, 차 오는데 뛰어다닐 때, 되도 않는 떼를 쓸 때, 나를 머리로 들이받을 때 등등 이건 뭐 쓰자면 주야장천 쓸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들이니 그냥 싫어하는 행동으로 퉁 쳐 놓기로. 5. 내가 하기 싫은 일들의 반복(+컨디션과 체력 문제와도 엮인다) 쏟은 우유와 주스의 끈적거림을 다 제거해야 할 때, 젓가락 다른 거 줘~ 그릇 다른 거 줘~ 물 데워 줘~ 밥 데워 줘~ 온갖 사소한 수발을 다 들어야 할 때, 세 명의 요구사항을 동시에 들어줘야 할 때 같은... 사실 엄마가 당연히 해야 할 일상의 일들인데 말이다. 몸이 지쳐있을 땐 유독 이 일들을 짜증스럽게 하는 것 같다. 6. 다른 일에서의 스트레스 아이들은(남편도 마찬가지고) 감정의 쓰레기통이 아닌데!! 집안의 골치 아픈 일이나 남편과의 싸움 그런 스트레스가 전염병처럼 막 옮겨 가는데, 감정의 전이는 정말 무섭다. 심지어 얘한테 화난 걸 나도 모르게 쟤한테 쏟기도 하는 최악의 경우도 있다. 7. 호르몬의 노예 마의 기간 1주+그 전 1주. 즉 한 달에 멀쩡한 날이 2주밖에 없다는 말인데!!! 영향을 받는 것은 분명한데 사실 느낌일 뿐이지 마의 기간이 아닌 날에도 화는 난다. 호르몬은 거들뿐일까?!! 8. (인정하기 싫지만) 비루한 체력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신체에서 온다고 했다. 어렸을 땐 체력이 좋아야 공부도 잘한다더니, 어른이 되니 체력이 좋아야 일도 잘한다고 했다. 그러고 엄마가 되니 급기야는 체력이 좋아야 애도 잘 키울 수 있댄다. 글쓰기 모임에 다정함과 열정이 흘러넘치는 분이 계셔서 그 원동력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그분은 '체력'이라고 답하셨고 나는 좌절했다!! 지긋지긋한 체력 녀석... 보통 때라면 그냥 넘어갈 아이의 행동도, 몸이 안 좋으면 화로 맞받아치게 된다. 그 외에도, 잠을 못 잘 때(피곤할 때), 내 시간을 충분히 못 가질 때, 그냥 천성이 그렇게 생겨먹...등이 있겠다. 굳이 분류해서 번호 붙여 봤지만 사실 여기저기 갖다 붙이기 나름. 잠을 그럭저럭 자고 요즘처럼 집안일도 최소화하면서 내 시간 많이 갖고 해도 이렇게 날뛰는 걸 보면, 어제의 화는 1+2+3이 복합적으로 며칠 내내 이어진 탓이 큰 것 같다.
결국 내 얼굴에 침 뱉기고 이게 화가 나는 이유를 쓴 건지 육아가 어려운 이유를 쓴 건지 뚜렷이 모르겠기도하지만! 그래도 한 번 쭈욱 쓰면 감정 정리도, 반성도, 다짐도 좀하게 된다. 계속 화화 해서 마치 내가 24시간 화만 내는이상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오늘도 하원 할 때 마주한 아이가 너무 예뻐서 꽉 껴안아주고 귀엽다고 사진을 찍는다.(병이다..) 오늘 본 연극에 대해 재잘재잘 얘기하는 혀 짧은 소리가 듣기 좋아서 계속 맞장구를 쳐주고 내용을 물어본다. 분명 예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새끼들이다. 나도 저 중에 한 요소가 어쩌다 한 번 걸려들었다고 폭발하지는 않는데. 여러 개가 꾸준히 '반복'되는 게 참 힘들다.(라고 위로해본다ㅠㅠ)
예뻐 죽겠다가 화나 죽겠다가를 참 성실하게도 되풀이하는 내 육아. 기복 좀 없고 유연하고 여유롭게 아이를 키울 수 없을까? '내 자식이 아니다 손님이다' 기법을 무심하게 적용하는 내공은 역시 하루아침에 쌓이는 게 아닌가 보다.
화 내지 말자, 화 내지 말자.. 화를 내어 무엇하나!! 이렇게 오늘은 예뻐예뻐 하며 지나갔지만 또 내일 아침 언제 버럭할지 모르니 방심하지 말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