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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Dec 13. 2019

아이들을 향한 '화'의 근원을 찾아보았다

어느 화 많은 엄마의 이야기


가끔, 그냥 자다가 지구 조용히 망해버려.. 또는 신이 내 그릇을 잘못 봤어.. 하는 날이 있는데 어제가 그런 날이었다.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아이한테 빽 소리를 질렀는데 이 정도면 병이다 싶었다. 다들 잠든 밤12시, 혼자 거실에 멀뚱멀뚱 앉아 내가 아이들한테 화가 나는 상황은 주로 어떤 때인지 무엇 때문인지 생각해봤다.
(주관적+제 살 깎아먹기 주의)


1. 내가 무시당하는 것 같은 느낌​
- 이 정도 말하고 부탁했으면 좀 들어줄 법도 하지 않냐
- 사람이 말을 하면 들은 척이라도 좀 해라
- 사람이 부르면 대답이라도 좀 해주라
426개월 산 남자 포함 우리집 식들을 향해 내가 많이 하는 말 중 한 부류다. 어떤 육아서에는 '몇 번을 말해야 돼!' 이 말은 하지 말라고 쓰여 있던데. 육아서에 금지어라고 되어 있는 단어와 문장은 왜 이리도 쉽게 입 밖으로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망했어...)
다 엄마 탓을 하면서 나한테 다짜고짜 짜증을 부릴 때도 화가 난다. 들은 척도 안 할 때도 그렇지만 내가 무시당하는 기분이랄까. 아이의 화에 화로 답하지 말랬는데!!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고, 애들도 엄마니까 집이니까 그러는 거라는 걸 아는데. 하지 말란다고 안 하면 그건 애가 아니라는 거 아는데. 머리와 마음의 거리는 이렇게나 멀다.

2. 울음소리와 징징소리에 취약한 편​
우는 소리 짜는 소리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냐만. 30년 가까이 조용한 집에서만 살았던 나는 정말 가끔은 귀마개를 끼고 있고 싶을 때가 있다.(까불이냐..) 아이가 울면 마음이 급해지고 하던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여름엔 땀이 나고 겨울엔 행동이 굼떠진다. 먹을거리를 준비하는데 식탁의자에서 막내가 빼액빼액 울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는 말을 못 해서 울고, 둘째는 그냥 마이웨이의 삶이 피곤한지 여러 모양새로 울고 성질을 낸다. 첫째는 그냥 원체 징징st. 지들끼리 싸울 때 소리 지르고 우는 것도 되게 신경 쓰이는데(특히 울면서 나한테로 올 때...) 그래도 무시하는 스킬을 꽤 길렀다. 정적과 고요함을 사랑하는 내가!! 애 셋을 키....키..키우고 있다니...

3. 아이에게 보이는 이상행동, 문제소견​
이상행동을 모른 척하는 것, 다독여주며 마음을 안심시켜 주는 것, 원하는 대로 어느 정도 해주는 것... 다 해줄 수 있는데, 나도 사람인지라 하루에도 그게 수십 번씩 반복되면 지쳐버린다. 그 마음이 좀 더 발전되면 이렇다.
'나도 한다고 했는데 대체 더 어떻게 하란 말이야!'​
나도 최선을 다했는데.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다 내 탓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여러 문제가 유독 한 아이에게서만 자주 나타날 때 '넌 대체 왜..' 하는 생각이 들면서 원망하는 마음이 올라오기도 한다.

4. 내가 싫어하는 행동들의 반복​
밥 안 먹을 때, 거짓말할 때,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만 가면 정신줄 놓을 때, 싸울 때, 때릴 때, 놀릴 때, 양치 안 할 때, 늦었는데 꾸물댈 때, 차 오는데 뛰어다닐 때, 되도 않는 떼를 쓸 때, 나를 머리로 들이받을 때 등등 이건 뭐 쓰자면 주야장천 쓸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들이니 그냥 싫어하는 행동으로 퉁 쳐 놓기로.

5. 내가 하기 싫은 일들의 반복(+컨디션과 체력 문제와도 엮인다)
쏟은 우유와 주스의 끈적거림을 다 제거해야 할 때, 젓가락 다른 거 줘~ 그릇 다른 거 줘~ 물 데워 줘~ 밥 데워 줘~ 온갖 사소한 수발을 다 들어야 할 때, 세 명의 요구사항을 동시에 들어줘야 할 때 같은... 사실 엄마가 당연히 해야 할 일상의 일들인데 말이다. 몸이 지쳐있을 땐 유독 이 일들을 짜증스럽게 하는 것 같다.

6. 다른 일에서의 스트레스​
아이들은(남편도 마찬가지고) 감정의 쓰레기통이 아닌데!! 집안의 골치 아픈 일이나 남편과의 싸움 그런 스트레스가 전염병처럼 막 옮겨 가는데, 감정의 전이는 정말 무섭다. 심지어 얘한테 화난 걸 나도 모르게 쟤한테 쏟기도 하는 최악의 경우도 있다.

7. 호르몬의 노예​
마의 기간 1주+그 전 1주. 즉 한 달에 멀쩡한 날이 2주밖에 없다는 말인데!!! 영향을 받는 것은 분명한데 사실 느낌일 뿐이지 마의 기간이 아닌 날에도 화는 난다. 호르몬은 거들뿐일까?!!

8. (인정하기 싫지만) 비루한 체력​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신체에서 온다고 했다. 어렸을 땐 체력이 좋아야 공부도 잘한다더니, 어른이 되니 체력이 좋아야 일도 잘한다고 했다. 그러고 엄마가 되니 급기야는 체력이 좋아야 애도 잘 키울 수 있댄다. 글쓰기 모임에 다정함과 열정이 흘러넘치는 분이 계셔서 그 원동력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그분은 '체력'이라고 답하셨고 나는 좌절했다!! 지긋지긋한 체력 녀석...
보통 때라면 그냥 넘어갈 아이의 행동도, 몸이 안 좋으면 화로 맞받아치게 된다.


그 외에도, 잠을 못 잘 때(피곤할 때), 내 시간을 충분히 못 가질 때, 그냥 천성이 그렇게 생겨먹...등이 있겠다. 굳이 분류해서 번호 붙여 봤지만 사실 여기저기 갖다 붙이기 나름.
잠을 그저럭 자고 요즘처럼 집안일도 최소화하면서 내 시간 많이 갖고 해도 이렇게 날뛰는 걸 보면, 어제의 화는 1+2+3이 복합적으로 며칠 내내 이어진 탓이 큰 것 같다.






결국 내 얼굴에 침 뱉기고 이게 화가 나는 이유를 쓴 건지 육아가 어려운 이유를 쓴 건지 뚜렷이 모르겠기도 지만! 그래도 한 번 쭈욱 쓰면 감정 정리도, 반성도, 다짐도 좀 게 된다. 계속   해서 마치 내가 24시간 화만 내는 상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오늘도 하원 할 때 마주한 아이가 너무 예뻐서 꽉 껴안아주고 귀엽다고 사진을 찍는다.(병이다..) 오늘 본 연극에 대해 재잘재잘 얘기하는 혀 짧은 소리가 듣기 좋아서 계속 맞장구를 쳐주고 내용을 물어본다. 분명 예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새끼들이다. 나도 저 중에 한 요소가 어쩌다 한 번 걸려들었다고 폭발하지는 않는. 여러 개가 꾸준히 '반복'되는 게 참 힘들다.(라고 위로해본다ㅠㅠ)




예뻐 죽겠다가 화나 죽겠다가를 참 성실하게도 되풀이하는 내 육아. 기복 좀 없고 유연하고 여유롭게 아이를 키울 수 없을까? '내 자식이 아니다 손님이다' 기법을 무심하게 적용하는 내공은 역시 하루아침에 쌓이는 게 아닌가 보다.

화 내지 말자, 화 내지 말자.. 화를 내어 무엇하나!! 이렇게 오늘은 예뻐예뻐 하며 지나갔지만 또 내일 아침 언제 버럭할지 모르니 방심하지 말도록!!!



최소한의 찝찝함만 정리하고 내 시간을 가진다



오해하지 마세요 진짜 싸우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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