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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Dec 27. 2019

어린이집 산타잔치가 귀찮은 엄마의 아무말

크리스마스가 무사히 지나갔다



내가 어린이집 산타잔치를 피곤하게 여기게 된 이유는 대충 이렇다.(아무말인데 쓰다보니 진지한 것처럼 보임)
*긴 글 주의


1. 매년 논란이 되는 이놈의 선물 크기​
산타잔치 가정통신문에 늘 적혀있는 멘트가 있다.

'선물은 적당한 크기로 준비해 주세요.'
'아이가 들고 갈 수 있는 크기로 준비해 주세요.'

적당한 크기는 정녕 무엇이냔 말이다.. 너무 작아도 안 될 것 같고 너무 커도 안 될 것 같은 이 적정 사이즈!! 사실 뭐든 대충 해치우는 나한테 이건 별로 어려운 문제는 아닌데, 선물 모으는 원장실 보면 항상 눈치싸움 같은 게 느껴진달까?ㅎㅎ 산타잔치가 끝나면 맘카페에는 가끔 이런 원망 섞인 글이 올라온다.

'대왕만 한 선물 보내는 거는 정말 너무하지 않나요.'

애초부터 규격이 딱 정해져 있었다면 그걸 벗어나는 대왕선물은 뭐 좀 원망 들을 법도 한데, 그게 아니었다면 또 그 엄마는 뭔 잘못이겠나. 아이가 죽어도 그게 갖고 싶다고 했을 거고, 엄마도 분명 이런 대왕을 제출(?)해도 되나 내적갈등 쩔다가 냈을 텐데.

아이가 갖고 싶다고 한 게 되게 작을 경우도 난감하긴 마친가지다. "산타잔치 때 후회할 수도 있을 텐데 좀 더 큰 물건 중에는 뭐가 갖고 싶니?" 라고 물을 수도 없고!!(크기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어른들은 잘 알지만, 대부분의 영유아들 눈에는 커~~~다란 게 장땡인 듯하다.) 설령 아이는 아무 생각 없었다고 쳐도 조그마한 걸 들고 있는 내 아이와 큰 선물을 들고 있는 아이들 무리가 함께 찍은 단체사진을 보면, '아, 우리 애 맘 상한 거 아닐까?' '아이고 저런. 표정이 안 좋아 보여..' 라며 쓰잘데기 없는 추측을 애미 혼자 하게 되는 것이다.

전에 살던 동네 어린이집 원장님은, 사이즈 한도를 정확하게 정해달라는 엄마들의 요구에 이렇게 답하셨다.

"아니 어머니. 저희가 뭐 애들도 아니고 다 어른들인데 이런 걸 딱딱 규격화해서 굳이 정해야 할까요? 그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원장님!!!!
원장님!!!!
아니지 않아요... 그게요 원장님 생각처럼 그렇지가 않아요!!!
라고 반격을 당했던 원장님의 그 당황스러운 표정이 이맘때쯤이면 늘 떠오른다.


2. 학교에는 산타가 안 옴을 주장하는 녀석(우리집만 이럴 시 사과함)​
초딩으로 거듭난 첫째가 세상 논리적으로 나에게 질문했다.

"동생들은 어린이집에 산타가 와서 선물 받는데 나는 그럼 언제 어떻게 받아? 학교엔 산타 안 오잖아!!"

니 선물은 집으로 와서 주시겠지- 했더니 다시 말한다.

"그럼 집으로 올 때 내 거만 들고 오기는 좀 그러니까 쟤네들 거 또 들고 올 텐데, 쟤네만 그럼 두 개 받는 거잖아!!!"

와. 너 되게 논리적이구나. 정말 이번에 처음 알았네??? 야 그래그래 산타는 없어 내가 다 총알배송으로 시켰다 산밍아웃 해버릴까 3초 진지하게 고민했다.

더는 이런 귀여운 항변을 듣고 싶지 않다.(귀여운데 왜 안 듣고 싶어?♡) 뭐, 더고 뭐고 할 것도 없다. 2학년 되면 믿어달라 해도 안 믿을 텐데. 모두 모두 집산타로 퉁 치자 퉁 치자!


3. 허술한 보안과 산타분장​
첫째가 일곱 살 때 산타잔치를 끝내고 와서 말했다.

"엄마, 근데 산타가 체육선생님이야? 체육선생님 옷 가방이 복도에 있던데..."

오.. 주죄측의 치명치명한 실수!!! 보안도 보안인데 분장도 그렇다. 내가 마스크랑 모자로 얼굴을 싹 덮고 평소에 잘 안 입던 패딩을 입고 외출했는데도 길에서 사람들이 "어? 집사님 어디가?" 해서 진짜 세상 놀랐는데... 나는 그날 사람 얼굴에서 눈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잔치에 동원되는 산타할아버지는 안경을 껴야 한....

이런 식으로든 뭐든, 눈썰미 좋아지는 일곱 살쯤 해서 몇몇의 아이들은 '대애충' 산타를 눈치채거나 의심해보는 것 같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되면 의외로 또 산밍아웃을 한 엄마들이 꽤 있기 때문에, 교실에서 "야 너 아직도 모르냐?" 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등장하기도 하더라.

아무튼 속여도 내가 속이는 게 나을 거 같은 너낌적인 너낌 ㅎㅎ


4. 이브날부터 박터지게 싸우는 계기(우리집만 이럴 시 반성함)​
그래서 산타선물로 각자 원하는 것을 받고 하원 후에 선물을 푸는데 내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구슬퍼즐 받은 놈은 병원놀이 받은 놈한테 가서 병원놀이를 무력으로 빼앗는다.
두더지게임 받은 놈은 동생이 버린 구슬퍼즐 먼저 해야겠다며 눈이 뒤집힌다.
병원놀이를 받긴 했는데 26개월 밖에 살지 않아 물리적 힘이 딸리는 놈은 자신의 병원놀이를 되찾아 오려다 영문도 모른 채 얻어맞는다!!!

지가 버린 구슬퍼즐을 형이 가져간 거 발견하곤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놈,
애초부터 지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지가 맞추던 구슬 빼앗겼다고 엎어져 우는 놈,
그냥 아까부터 계속 우는 26개월 놈.
모두가 뒤엉켜 울고 있는 이 곳이 동물들의 정글 아니고 크리스마스이브의 따뜻한 우리집 거실인 거 무슨 일??

기왕 싸울 거 집산타 행사가 다 끝난 크리스마스 오전부터 싸우는 편이 좋겠다.(이게 뭐야 ㅋㅋ 산타잔치를 하거나 말거나 거실의 정글화는 어차피 예견된 일...)

결국 저녁 하는 내내 터지고 울고 하는 애들 틈바구니 속에서 빡이 칠대로 친 애미는, "산타가 너네 갖고 싶은 거 다 알아서 사줬더니 왜 다들 서로 거 못 뺏아서 안달이야아아아아!!! 니들 내년부턴 셋 다 똑같은 걸로 통일이다아아아!!!!!" 라며, 산타가 나인지 내가 산타인지 모를 말도 안 되는 멘트로 버럭버럭을 했다는 해피 크리스마스이브의 이야기.




아이에게 꿈과 상상의 세계를 남겨두는 것은 좋은 일이라며, 이제는 산타의 존재마저도 전문가의 육아 칼럼에 소재로 쓰이던데. 상상의 세계 남기는 건 왠지 집산타로 해도 충분할 거 같다. 파티하는 거 다 알고 있어서 안 보낼 수도 없는 이놈의 산타잔치! 어린이집용, 집용 선물 두 개 사기는 더 싫은 이놈의 산타잔치!


연초엔 '초등학교 1학년 합동생일파티 문화'에 대해 고찰을 하더니, 연말엔 '어린이집 산타잔치 문화'에 대해서 고찰을 하고 앉은 나란 인간... (사실 고찰 레벨과 진지 레벨로 따지자면 합동생일파티가 훨씬 상위...)

그런 의미에서 산타잔치의 좋은 점을 생각해 보자면, 뭐... 재미있었을 거다! 아이가 즐거우면 그만이다.(진심이다.) 산타랑 사진도 찍잖아? 사진도 남고 엄마는 사진 보는 재미도 있잖아!(정신승리 아니다. 장점 맞다..) 즐겨 즐겨 인생 뭐 있어!! 이것도 끽해야 4년 남았다. 아니 근데 왜 갑자기 4년이라 하니 막 아쉬우려 그러지? 귀찮다로 시작해서 4년 남아 아쉽다는 정신 나간 의식의 흐름..

됐다, 크리스마스 무사히 보냈으니 되었다.
좋은 크리스마스였다.....


한 줄 요약: 사실 여러모로 내가 귀찮아지기 싫어서 그렇다.




내가 울어야 되는데 1



내가 울어야 되는데? 2



이것이 최대 장점 중 하나 아니겠나



내 건 내가 지키겠다는 삼형제 막내의 강려크한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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