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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Mar 27. 2020

집콕이 아이 셋 엄마에게 준 아이러니

어느 집순이 엄마의 집콕 일기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도 모르고 지내는 게 벌써 며칠 째냐. 토요일이 되면 그제야 "아니 뭐? 벌써 '놀면 뭐하니' 하는 날이라고? 또 토요일이라고?!!" 하면서 요일의 흐름을 깨닫는다. 하는 것 없이 속절없이 잘도 흐르는 시간.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것 자체가 '커다란 하는 일'이지만, 나를 위해 마음 편히 쓰는 시간이 없어서인가, 정말 하는 것 없다는 느낌을 요즘 많이 받는다. 며칠 전엔 식탁에 책 펴고 앉았다가 애들 소란에 한 장을 채 못 읽고 우두커니 앉아서 '나 요즘 뭐 하는 거지?' 하고 멍을 때렸다.(현타가 왔다 이 소리다...) 집에만 있는데 이상하리만큼 그 어느 때보다 밤에 못 살아 나오고 기절하는 날들. 밤에도 온전한 내 시간을 못 가지니 더욱 허무하다. 잠으로 빠져드는 건 육체적 피곤 때문만이 아니라 정신적 피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도 큰 것 같다. 글쓰기 동료 말에 의하면, 애써 아무 자극 안 받고 싶은 마음, 딱 그거.

이렇게 뭐라도 혼자 조용히 포스팅하려면 저들은 미디어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다. 최대한 싸움 소리 안 나고 나를 덜 찾도록! 이건 엄연히 긴급상황이라 평소처럼 하루 한 시간 안짝 티비시청으로는 이건 뭐 되지도 않는다. 버틸 수가 없다.(애들 말고 내가.) 그럼에도 평소와 똑같이 평일 티비 금지의 원칙을 지키며 애들을 가정보육하는 지인들이 진짜 대단해 보인다. 나는 일찌감찌 내 한계를 깨달았으니 이건 다행이냐 뭐냐!! (스페셜 땡스투 kbs2 공룡의 왕국, ebs 오션킹, 호기심 딱지 등등..)



근근이 집콕을 이어가면서 나는 여러가지 아이러니한 상황들을 만나게 되었다.

1. 돈 나갈 일이 줄어든 거 같은데 방구석에서 돈이 계속 나간다.​
아무래도 외출을 거의 안 하니 돈 나갈 일이 적다...고 생각했는데? 묘하게 돈을 더 쓰는 거 같은 건 느낌적인 느낌인가. 특히 집콕 초반에는 정말 이러다 택배도 못 받겠다 싶어, 최저가 비교고 뭐고 배송 가장 빠른 데서 먹을 걸 장바구니에 막 집어 담고 결제하고 보면 10만원 넘는 건 우스웠다. 근데 또 점심, 간식 모두 집에서 해결하니 그 10만원 넘는 것들이 순식간에 없어지는 거다. 계란이랑 우유 없어지는 속도는 정녕 무섭다. 우린 대식가도 아닌데!!

그러다가 좀 안정이 되고 집 아래 마트에서 식료품을 조금씩 사올 수 있게 될 쯤엔 아이들 손에 앵겨줄 놀잇감들을 자꾸 주문했다.(진짜 스마트폰 없어져라...) 클레이, 종이컵, 쿠키 만들기... 거기다 첫째는 간간이 생각날 때마다 나무집 시리즈 사달라 무슨 책 사달라 요구를 하는데, 아니 심심한 애가 읽겠다는데 책이라도 사줘야지 하는 생각에 또 안 살 수가 없는 거다.

그러다보니 나도 책 읽고 싶고, 나도 그림 그리고 싶고, 나도 리본 만들고 싶은데? 하며 할 시간도 없으면서 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내 걸 또 야금야금 구입한다. 연이은 돌봄 노동에 보상이라도 받아야겠다는 심산인가.(집콕 아니어도 샀을 거면서) 끊임없이 간식거리를 찾는 아이들에게 요즘 유행하는 '크로플'을 해주겠다며 크로와상 생지를 사고(마음의 소리를 들어봐라 아이들을 위해서냐 애미가 만들어보고 싶어서냐), 냉동실에는 인스턴트 떡갈비, 만두, 오뚜기 피자가 늘 있어야 할 것 같고. 돈을 아껴서 돈을 쓰는 모양새라니.

와플이 되길 기다리는 크로와상 생지



2. 셋하고 붙어있으려니 거의 정신병 걸릴 지경인데, 이 판국에 외동 키웠다면 나는 더 뒤졌을 힘들었을 거 같다.​
나의 이 말에 남편은 '진짜?'라고 물었는데 이게 참 딱 부러지게 설명할 수가 없네. 사실 외동과 다둥이는 좋고 힘든 포인트가 너무 다른 면에서 오기 때문에 비교 자체가 무의미 하긴 하지만... 가끔 사람들이 '저는 애 하나 키우는데도 왜 이렇게 힘든가요' 하는 말을 하는데 그건 틀린 말이다. 하나는 그냥 하나대로 겁나 힘든 거다. 애가 막 들러붙어, 애가 막 나만 찾아, 와 진짜 두통 온다.

영상도 잘 안 본다는 껌딱지 딸 하나를 가진 친구가 한 명 있다. 내가 누굴 걱정할 입장은 솔직히 아닌데 나는 그녀가 정말로 내내 걱정됐다. 나처럼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을 좀 힘들어하는 친구라 그랬을까? 어느 날 밤에는 친구랑 카톡을 하다가 막 그 입장에 빙의돼서, 뭐라도 사서 보내 주거나 뭐라도 꿀팁을 주고 싶었는데 아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겠고 아무 아이디어도 없어서 괴로웠었다.(너나 잘해 그냥...)

셋은 드럽게 싸우고, 하루 종일 싸우고, 눈뜨면 울고, 때리고, 피나고, 셋이 동시에 나 찾고, 둘이 편먹고 한 명 소외시키는 악질적인 짓을 하고, 뭐 그래도 어쨌거나 '셋이 노는 시간'이 분명히 있다. 내가 문 닫고 방에 들어와도 혼자 밖에서 무서워 무서워하지 않는다. 외동은 그게 안 되는 것만으로도 게임 끝 아닌가? 이런 시국에 접어든 요즘 나는 애 하나였으면 지금쯤 분명 더욱 뒤졌겠다 힘들었겠다 생각하면서도... 아들 셋하고 붙어있는 지금 진짜 내 하루가 뭔가, 나는 미친 여자인가, 이렇게 애들한테 신경질을 있는 대로 내면 만회하겠다고 만드는 정성스러운 두부조림과 멸치볶음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싶다.

소용없는 두부와 멸치


** 내가 요즘 제일 많이 하는 말 BEST 5.
- 니네 붙어 있지 마.
- 니네 따로 놀아.
- 니네 지금 이 시각 이후로 말 섞으면...(험한 말 생략)
- 니네 지금 이 시각 이후로 장난감 갖고 싸우면...(험한 말 생략)
- 아이고 내가 이꼴 저꼴 안 보고 안 듣고 방에 들어가야지 아이고 아이고(타령)



오해하지 마세요 잠 자는 방 따로 있어요




3. 싹 다 갈아엎어 주세요 등원 등교시키고 싶어 죽겠는데, 요즘 등하원 안 시키는 거 너무 편하잖아...​
그렇다. 나는 삼십 년 넘게 프로집순이의 삶을 살았던 잉간으로서 지금 막 바깥에 엄청 나가고 싶지가 않다. 나가고 싶은 이유가 있다면 그건 단 하나. 해야 할 집안일이 눈에 안 보이고 수발들어야 할 애들 없는 조용한 곳, 그냥 그런 공간과 시간이 필요할 뿐 니네와 굳이 함께 하는 산책과 나들이가 막 막 간절한 건 아니다.

옷 안 입으려는 자와 입히려는 자의 구질구질한 싸움을 아침마다 안 해도 돼서 좋다. 마스크 일일이 챙겨 해주고 외출하고 들어와서 손 안 씻고 거실로 도망간다고 소리소리 지를 필요도 없고. 정해진 시간 내에 나가야 하니 맨날 애를 잡게 됐는데 정해진 스케줄이 없으니 이렇게 편할 수 없다. 부랴부랴 8시 전에 씨리얼 차리고 뭐하고 할 필요 없으니 어떤 날은 심지어 토스트를 만들 에너지도 생긴다.

물론 이런 편안함과 맞바꾼 오전 오후 내내의 깊은 빡침의 시간과, 조리원의 '밥 젖 젖 밥 젖 젖'과 비슷한 '밥 간식 설거지 밥 간식 설거지'의 뫼비우스가 기다리고 있긴 하지만!!

어린이집에서는 오전에 살짝 나와서 한 시간씩 적응시키라고도 하시는데, 거리두기를 해야겠는 양심 20프로+열이라도 날까 봐 하는 노파심 40프로+옷 입혀서 등원시키고 다시 하원 하러 가는 귀찮음 40프로(아닌가 그 이상인가..) 이런 이유로 계속 데리고 있게 된다. 이렇게 집콕에 익숙해지고 있는데...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인 이놈의 '개학'은 과연 어찌 될 것인지 이것도 할 말이 많다.


5일만의 외출인데 나가자마자 비 옴



무사하고 무탈함에 그저 감사해야 하는 날들임이 분명한데 역시 사람은 간사한가. 동네에 확진자가 나오고 남편이 회사에 붙잡혀 격리될 상황에 놓였을 때만해도 나는 이렇게 말했다. 다같이 둘러 앉아 저녁 먹는 거 정말 축복이고 기적이라고. 좀 잠잠해진 지금은? 나 삼시세끼 밥 차리는 건 해도 이것들 밥상머리에서 진상 피우는 거 보면서 겸상하는 건 못 해먹겠다고 볼멘 소릴 한다. 옆 동네에 전쟁이 나도 자기 손톱 밑 가시가 제일 아프다더니 딱 그 꼴이네. 평생 이렇게 어리석고 간사한 인간으로 살 예정....

'밥 간식 설거지 밥 간식 설거지' 루트의 마지막  시간이 다가온다. 오늘은 또 무엇을 파먹나!!

아니 그래서 뭐라고? 내일이 또 '놀면 뭐하니' 하는 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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