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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May 27. 2020

아이의 마음이 단단해지기를

내 손을 놓고 세상으로 나갈 너


아이에게 부담주기 싫어서 안 하려 애쓰는 말이 있다.

"형이니까 양보해."

"형이니까 엄마 많이 도와야지."

근데 내가 하지 않아도 아이의 할머니 할아버지, 지나가는 어른들이 내 몫 이상으로 그런 말들을 자주 한다.

아이가 자신의 작은 키와 덩치로 스트레스받는 게 싫어서 일부러 키 얘기는 잘 꺼내지 않는다. 정성껏 만든 건데 왜 이렇게 안 먹냐고 타박은 해도, 이렇게 안 먹으니 키가 안 크는 거란 말은 안 한다. 근데 처음 보는 선생님, 이웃집 엄마는 불쑥 말한다.
"얘는 많이 작네요."
"얘 일곱 살이에요?"
또래 아이들도 그냥 아이답게 눈에 보이는 대로 말할 뿐이다. "쪼끄만 게!"

"엄마는 딸 키우는 것보다 아들 키우는 게 좋아."

백날 말해봤자 밖에 나가서 듣는 말은 한결같다.
"니 엄마 힘들겠다야."
"아들만 셋인가보다, 쯧쯧쯧."

브롤스타즈를 깔아주지 않아도 이제 자기도 그런 거 하면 안 되냐며 다 알아온다. 집에서 핸드폰 게임하는 사람 한 명 없어도 여기저기서 재밌는 게임 하는 걸 보고 "나도 이거~ 나도 저거~" 요구한다.


내가 안 주려 노력해도 교회에서 열심히 주던 돌 전 아기의 야쿠르트, 내가 주지 않아도 어린이집에서 다 먹고 오던 네 살 아이의 마이쮸 몇 개와는 비교할 수 없는 무게. 내가 일일이 통제할 수도 따라다닐 수도 없고 때때마다 '저 사람 말은 틀렸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자'라고 해줄 수도 없다. 내가 하지 않아도 이제 어디서든 혼자 듣고 보게 될 것들이 더 많을 텐데.

사람 다 내 맘 같지 않고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살 순 없는 세상. 그저 내 손 놓고 밖으로 나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좀 시무룩할 날은 있어도 자존감은 무너지지 않기를. 상처되는 말을 듣더라도 회복이 어렵지 않은 마음 단단한 사람으로 자라기를. 옳고 그름을 스스로 잘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덧)
사실 상처 받는 말은 엄마한테 듣는 게 8할이라는 게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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