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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Mar 02. 2020

내향적인 내가 이사를 앞두고 깨달은 사실

결국 '사람'이었다.



나는 내향적이다.

외향적인 사람은 여럿이 있을 때 힘을 얻지만
내향적인 사람은 혼자 있을 때 힘을 얻는다.

조용히 보는 드라마 한 편과
사부작사부작 머리핀 만드는 시간은
하루의 낙이다.
혼자 밥을 먹거나 서점에 다녀오는 일.
아이들 없을 때 노트북을 꺼내 뭐라도 적는 일.
나는 에너지가 생긴다.

힘의 원천은 그런 것들뿐이라고 생각했다.


3년 전, 낯선 동네로 이사를 갔을 때.
등하원 정류장에서 매일 만나는 엄마들을

경계했다.
하원 때마다 간식을 뜩 챙겨와 나눠주는 

친절이 불편했고,
아이들을 다같이 놀리다 들어가자는 제안이 부담스러웠다.
렇지만

매일 켜켜이 쌓인 시간들은
나를 사람들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했다.
하루하루 오가는 인사와 대화.
따뜻한 베풂.

불편하다고만 느꼈던 호의의 반복.

분위기를 잘 이끄는 외향적인 한 사람.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놀고 있는 내 아이를 잠깐 봐달라 하고
정육점에 다녀오는 일
리집에 옥수수를 챙겨준 엄마를 위해
이것저것 챙기며 그를 떠올리는 일이

가능해졌다.

그때쯤부터였다.
사람이
관계가
하나하나 소중하다고 느낀 것이.

그곳에서 지금의 동네로 이사오던 1년 전의 날.
오랜 친구도 아닌
새로 사귄 이웃들과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뜻밖의 내 모습에 놀랐다.

그리고 지금
더욱 먼 동네로

또 한 번의 이사를 앞두고 있다.


단골 가게, 익숙한 거리,
아이들이 잘 적응한 기관
모두 아쉽지만,
이사를 앞두고서야 나는
나에게 힘을 주었던 진짜가 무엇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난생처음 내게 대낮 떡맥을 권하는 사람.
쉽다며 아이를 집으로 초대해도 되냐는 엄마.
내 생각이 났다 뜻밖의 선물을 안겨주는 사람들.
아침마다 아이들이 예쁘다고 말 걸어주던 청소 아주머니.
퇴사했으니 커피 마시자고 나를 기억하고 연락해준 동네 친구.
갑작스러운 사정에 녹색을 못 서게 되었을 때

흔쾌히 대신 서주며 걱정 말라 말하던 반 엄마.
이사 가기 전 밥이라도 한 끼 해야 한다며

모임을 식사시간으로 내어준 글쓰기 동료들.


변한 건 아니다.
지금도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나고 오면
저녁 준비할 힘이 떨어진다.
건전지 닳듯이 물리적 힘이 약해진다.
그러나 분명한 건

다른 힘이 채워진다는 것.
내가 뭐라고

집 근처까지 와주는 사람 때문에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차오르고,
나를 칭찬하고 격려해주는 사람 덕분에
내가 그렇게 못난 사람은 아니라는

자신감이 채워진다.


어쩌면 나는
혼자 드라마를 보는 시간보다
같은 것에 빠진 누군가와

드라마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혼자 서점에 가는 시간보다
그곳에서 누군가를 떠올리며

선물할 책을 고를 때,
혼자 머리핀을 만드는 시간보다
내 머리핀이 정말 예쁘다 말해주는

누군가의 칭찬 한마디에
힘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경계심 많고
사람에게 상처 받는다.
넓은 인간관계는 더더욱 아니고
늘 그렇듯이 혼자 하는 것이 좋고
혼자만의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참 좋은 인연이다. 귀한 인연이고.
가만히 보면 모든 인연이 다 신기하고 귀해.
갚아야 돼. 행복하게 살아.
그게 갚는 거야.
                       -드라마, '나의 아저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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