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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Apr 25. 2020

애 많은 엄마의 하루 한 장면 시리즈 <1>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한 기록


#1. 내로남불
남편이 식단 조절을 하겠다고 했다. 도시락 싸줄 자신이 없어 거금을 들여 풀무원 다이어트 도시락과 간식으로 먹을 샐러드를 주문했다. 5일 동안 꾸준히 먹더니 주말에 양념치킨을 시키는 남편. 그럴 거면 풀무원 도시락 다 뱉어내라고 말했다.
나는 부쩍 안 좋아진 피부를 개선시켜 보려고 1일 1팩을 계획했다. 그 즉시 꽤 좋은 브랜드의 마스크팩 20개를 주문했다. 3일 동안 꾸준히 하고는 피부 안 좋게 하는 1등 공신인 라면을 이틀 연속 끓여먹었다. 남편이 그럴 거면 팩 값 다 뱉어내라고 말했다.

"아니, 오빠랑 나는 다르지!"
내로남불이 멀리 있지 않다.


#2. 영업의 정석
새로 가는 어린이집에서 업체식판 신청서를 나누어 주었다. 신청하면 단체 식판 배식에 세척까지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단다. 한 달에 만 원 두 명 이만 원이 아까워서, 귀찮지만 그냥 개인 식판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곤 1주일 무료체험 기간을 지냈다.
1주일 후, 신청할 사람은 신청서를 내라고 공지가 왔다. 설거지 안 하는 것과 가방 안 싸는 것의 달콤함을 고작 5일 맛보았을 뿐인데, 개인 식판을 쓸 생각이 말끔히 사라졌다.
이것이 영업이다.


#3.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아침으로 시리얼이랑 과일 몇 조각 내놨는데, 가뜩이나 야채도 안 먹는 아이가 그 서너 조각의 과일마저 안 먹으니 답답한 마음에 잔소리를 하고야 말았다. 아이 안 먹는 것에 대해 많이 내려놨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나 보다.
'나는 집 더러운 거 잘 보고 잘 견뎌. 아들 셋 키우면서 더 그렇게 됐어. 너도 좀 내려놔.' 다섯 살 딸이 어질르는 더러운 거실을 조금도 못 보겠다는 친구한테 무림의 고수라도 되는 양 조언했다. 어? 그런데 5주간 집콕을 하면서 이건 아닌데 싶게 흘러간다. 얘네가 책상을 옮기고 의자를 이동하고 급기야는 바닥에 놓인 침대 매트리스를 다 같이 밀어낸다.

"이것들아!!!!"

더러운 집에 대해 많이 내려놨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나 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4. 애씀 없는 육아
막내가 밥 먹다가 씨익 웃길래 귀여워서 사진을 찍었다. 그 모습을 본 둘째가 볼맨 소리를 한다. "쟤만 이뻐하고!"
내가 아침마다 볼을 꼬집어주며 이뻐이뻐 말해주고 춤추는 거 영상 찍어 할머니한테 보내주는 건 정작 자기인데. 그건 기억에서 지우고 동생 사진 한 번 찍어주는 모습에 입을 삐죽이는 것이 자식인가. 하긴 서른다섯 먹은 나도 엄마 아빠의 따뜻했던 말은 크기를 줄이고 유독 서운한 말만 풍선껌처럼 씹고 또 씹어 풍선 불 때가 있다.
부모는 어떻게 해도 자식에게 원망 듣고 서운함 사게 되어 있나 보다. 그러니 아이 키우는 일에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 다독여본다.


#5. 의심병
밥솥 카스테라를 만들려고 500그람짜리 핫케이크 가루를 한 봉 샀다. 한 번 만드는데 250그람이 필요하단 말에, 이유식 만들 때도 안 샀던 요리용 전자저울을 구입했다.
그 뒤로 나는 의심병이 생겼다. 진공포장된 오리고기를 보며 '이게 600그람이라고?' 하며 올려본다. 개별포장된 국거리 소고기 한 팩을 사와서는 '뭐? 이게 150그람?' 하고 또 재본다. 레시피대로 하기 위해 재는 것도 아니고 정말 정육점 주인이 무게를 정확히 맞췄나 의심하며 잰다. 만 원짜리 저울 하나 사고는 없던 병이 다 생겼다.


#6. 놈놈놈
훈제 오리고기와 삶은 계란 얹은 냉면을 저녁으로 차려줬더니, 면만 남기는 놈, 계란만 남기는 놈, 고기만 남기는 놈이 나왔다.
인간 셋을 키우며 다채롭게 펼쳐질 나의 앞날을 예견이라도 하는 듯이.


#7. 온라인 개학
초등 2학년 첫째와 나는 지금 같은 식탁에 앉아있다. 나는 이 글을 키보드로 쓰고 있고, 아들은 학교에서 받아온 배움노트 오늘 분량을 하고 있다. 그냥 쓰기만 하면 되는 건데 입에서 오디오가 끊이지를 않는다.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 같은 걸 계속 중얼거린다. 시끄럽다.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길래 슬쩍 보니, 교과서를 들춰보며 해야 하는 초성퀴즈다. 답이 '휘파람'인데 갑자기 나보고 휘파람을 불어보랜다. 휘~ 한 번 해줬더니 휘파람으로 노래를 불러 보랜다. 못 한다 했더니 아니 제발 한 곡만 해달랜다. 빨리 개학했으면 좋겠다.




3번 장면에 쇼파 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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