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이 된 안방(다섯 식구의 잠자리)을 보면 화가 난다. 아니, 다른 집 애들은 하지 말라면 정말 안 하나? 궁금하다. 신애라는 '신박한 정리'에서 정주리에게 "이제 아이들한테는 거실에서만 놀고 방에 장난감 갖고 가는 거 아니라고 말해주세요."라고 하던데. 정주리와 그 아들들은 지금 안녕한가? 하지 말라면 안 하나? 정말?
어떤 전문가는 남자아이들은 시각화된 게 중요하다고, 규칙을 눈에 보이게 써서 벽에 붙여 놓으라던데. 백날 붙여봐야 그쪽은 쳐다보지도 않는 건 우리집 남아들만의 문제인가? 아니 그전에 자기 이름도 제대로 못 쓰는 예비 일곱 살 문맹을 데리고(한글 아는 놈도 마찬가지라는 것은 큰 슬픔)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나는 청소를 부지런히 하는 편도 아니고 원체깔끔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유독 잠자는 방만큼은 좀 사수를 하고 싶다. 먼지 풀풀 날리고 머리카락 나뒹구는 안방을 보는 것, 모래 낀 외출복과 양말 걸치고 누군가 안방에 들어가 이불을 밟는 거 질색팔색 한다. 어려서부터 엄마가 그랬던 모습을 봐와서일까? 못 견디겠으니까 우리집의 규칙이라며 "엄마가 이걸 너무 싫어해 얘들아. 우리 제발 이불 베개는 좀 놔두자." 여러 번 설명을 하는데 내 말은 언제나 그렇듯 허공을 맴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안방 문을 잠그는 것!(오은영 선생님이 그랬다. 아기가 변기에 손 넣는 건 뭐라고 할 일이 아니다, 그게 싫다면 변기가 눈에 안 띄게 차단하거나, 만져도 무관할 정도로 변기를 깨끗하게 관리하는 것 두 가지만이 답이라고.) 그런데 안방은 내 공간이잖아! 왔다 갔다 할 일이 많으니 종일 잠가놓는 것도 쉽지 않다. 내가 뭐 안방만 지키는 문지기도 아니고, 화장실도 가고 설거지도 하고 이것저것 하느라 분주한 사이, 열린 방문 틈으로 그들이 기어들어간다. 잠자리는 또 어느새 난장판이 되어있고, 나는 뒤늦게 그 장면을 발견하곤 퓨즈 나가듯 "으악!!!" 하는 거다.
오늘도 제멋대로 널브러진 이불과 베개들을 보고 나는 전구가 틱 꺼졌다. 오죽하면 미세먼지 있는 날 창문 열어두었을 때의 공기청정기 수치보다, 문 다 닫은 순수 안방 공기의 먼지 수치가 더 높을까. 아홉 살이면 알아들을 만도 한데 이 정도 약속도 못 지키나, 저게 안 되나, 돌아서면 잊는 건가, 난 청소만 하다가 이렇게 늙어 죽는 건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문제는전구가 희미하게 들어올 때쯤이면 급 혼자만의 갈등모드로 전환한다는 거다. 나도 스무 살 넘어서도 엄마 말 안 들었는데 내가 저 애들 심지어 남자 애들 셋한테 과한 걸 바라면 안 되지, 안 바래야 하는구나, 저런 규칙 따윈 애초부터 코 풀고 버리는 휴지조각 같은 거구나(feat. 고문영) 하고 말이다.
오늘은 흥분하지 말자, 좀 더러워도 돼, 별 거 아니다, 여유를 갖자 다짐을 하고 아침을 맞는데, 이불을 질질 끌고 다니는 걸보는 순간 니들도 휴지조각처럼 약속 버리는데 나도 그냥 다짐 버리자며 버럭 화를 내고 만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릴쯤엔또, 내가 너무 깔끔을 떠나, 아들셋 키우면서 이 정도는 당연한 거지 하는 내적갈등이 온다.화낸 것에 대한 후회라기 보단, 나도 좀 화낼만한 것 같고 쟤들도 틀리진 않은 거 같은 그런 마음.
인원수도 많아서 베개, 패드, 이불은 또 얼마나 많은지. 매일 이불장에 넣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난 그저 아침마다 두꺼운 요 두 개 고이 반 접어 두고, 침대 위에 모든 베개 올려두고 선풍기 한 번 샤악 돌려주고 싶을 뿐인데. 그것조차 과욕인 건가!
가정보육으로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을 케어하며 엉망진창이 된 안방 이불을 '다시' 깔고 청소기를 '또' 돌린다. 아이들을 거실에 둔 채 방문을 잠시 닫고 혼자 분리되어 멍하게 앉아있자니, '고작 안방 더러워지는 게 뭐라고' 하는 마음과 '그래도 나도 할 만큼만 해야지, 무리해서 참을 필욘 없잖아' 하는 두 마음이 속 시끄럽게 맞선다. 단단한 베개로 미끄럼틀을 만들고 오만 장난감을 다 들고 와서 여긴 놀이터라며 노는 아이들을 나무라면서, '지금 아니면 언제 이렇게 창의적으로 놀아보겠냐, 그냥 눈 감아!!' 하는 마음과 '그래도 집에서의 기본 규칙, 엄마가 힘들어하는 행동에 대해서 가르칠 필욘 있잖아' 하는 마음이 부딪힌다. 정말 사소하지만, 두 마음이 끝없이 저울질하는 육아의 작은 순간들이 있다.
이 와중에, '아니 이게 무슨 문제야, 사춘기 자녀 키우는 엄마들이 보면 배를 잡고 웃겠네'하는 마음과 '그때그때마다의 힘듦이 있는 거지 뭐 누가 뭐라 할 수 있어?' 하는 마음도 충돌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