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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Sep 09. 2020

엄마의 두 마음이 충돌하는 사소한 순간

애미는 매일 별 것도 아닌 일로 고민을 한다


엉망이 된 안방(다섯 식구의 잠자리)을 보면 화가 난다. 아니, 다른 집 애들은 하지 말라면 정말 안 하나? 궁금하다. 신애라는 '신박한 정리'에서 정주리에게 "이제 아이들한테는 거실에서만 놀고 방에 장난감 갖고 가는 거 아니라고 말해주세요."라고 하던데. 정주리와 그 아들들은 지금 안녕한가? 하지 말라면 안 하나? 정말?

어떤 전문가는 남자아이들은 시각화된 게 중요하다고, 규칙을 눈에 보이게 써서 벽에 붙여 놓으라던데. 백날 붙여봐야 그쪽은 쳐다보지도 않는 건 우리집 남아들만의 문제인가? 아니 그전에 자기 이름도 제대로 못 쓰는 예비 일곱 살 문맹을 데리고(한글 아는 놈도 마찬가지라는 것은 큰 슬픔) 이게 무슨 소용인가 싶다.






나는 청소를 부지런히 하는 편도 아니고 원체 깔끔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유독 잠자는 방만큼은 좀 사수를 하고 싶다. 먼지 풀풀 날리고 머리카락 나뒹구는 안방을 보는 것, 모래 낀 외출복과 양말 걸치고 누군가 안방에 들어가 이불을 밟는 거 질색팔색 한다. 어려서부터 엄마가 그랬던 모습을 봐와서까? 못 견디겠으니까 우리집의 규칙이라며 "엄마가 이걸 너무 싫어해 얘들아. 우리 제발 이불 베개는 좀 놔두자." 여러 번 설명을 하는데 내 말은 언제나 그렇듯 허공을 맴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안방 문을 잠그는 것!(오은영 선생님이 그랬다. 아기가 변기에 손 넣는 건 뭐라고 할 일이 아니다, 그게 싫다면 변기가 눈에 안 띄게 차단하거나, 만져도 무관할 정도로 변기를 깨끗하게 관리하는 것 두 가지만이 답이라고.) 그런데 안방은 내 공간이잖아! 왔다 갔다 할 일이 많으니 종일 잠가놓는 것도 쉽지 않다. 내가 뭐 안방만 지키는 문지기도 아니고, 화장실도 가고 설거지도 하고 이것저것 하느라 분주한 사이, 열린 방문 틈으로 그들이 기어들간다. 잠자리는 또 어느새 난장판이 되어있고, 나는 뒤늦게 그 장면을 발견하곤 퓨즈 가듯 "으악!!!" 하는 거다.


오늘도 제멋대로 널브러진 이불과 베개들을 보고 나는 전구가 틱 꺼졌다. 오죽하면 미세먼지 있는 날 창문 열어두었을 때의 공기청정기 수치보다, 문 다 닫은 순수 안방 공기의 먼지 수치가 더 높을까. 아홉 살이면 알아들을 만도 한데 이 정도 약속도 못 지키나, 저게 안 되나, 돌아서면 잊는 건가, 난 청소만 하다가 이렇게 늙어 죽는 건가(?) 하는 생각 자주 한다. 문제는 전구가 희미하게 들어올 때쯤이면 급 자만의 갈등 모드로 전환한다는 거다. 나도 스무 살 넘어서도 엄마 말 안 들었는데 내가 저 애들 심지어 남자 애들 셋한테 과한 걸 바라면 안 되지, 안 바래야 하는구나, 저런 규칙 따윈 애초부터 코 풀고 버리는 휴지조각 같은 거구나(feat. 고문영) 하고 말이다.

오늘은 분하지 말자, 더러워도 돼, 별 거 아니다, 여유를 갖자 다짐을 하고 아침을 맞는데, 이불을 질질 끌고 다니는 걸 는 순간 니들도 휴지조각처럼 약속 버리는데 나도 그냥 다짐 버리자며 버럭 화를 내고 만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릴쯤엔 또, 내가 너무 깔끔을 떠나, 아들  키우면서 이 정도는 당연한 지 하는 적갈등이 온다. 화낸 것에 대한 후회라기 보단, 나도 화낼한 것 같고 쟤들도 틀리진 않은 거 같은 그런 마음.


인원수도 많아서 베개, 패드, 이불은 또 얼마나 많은지. 매일 이불장에 넣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난 그저 아침마다 두꺼운 요 두 개 고이 반 접어 두고, 침대 위에 모든 베개 올려두고 선풍기 한 번 샤악 돌려주고 싶을 뿐인데. 그것조차 과욕 건가!






가정보육으로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을 케어하며 엉망진창이 된 안방 이불을 '다시' 깔고 청소기를 '또' 돌린다. 아이들을 거실에 둔 채 방문을 잠시 닫고 혼자 분리되어 멍하게 앉아있자니, '고작 안방 더러워지는 게 뭐라고' 하는 마음과 '그래도 나도 할 만큼만 해야지, 무리해서 참을 필욘 없잖아' 하는 두 마음이 속 시끄럽게 맞선다. 단단한 베개로 미끄럼틀을 만들고 오만 장난감을 다 들고 와서 여긴 놀이터라며 노는 아이들을 나무라면서, '지금 아니면 언제 이렇게 창의적으로 놀아보겠냐, 그냥 눈 감아!!' 하는 마음과 '그래도 집에서의 기본 규칙, 엄마가 힘들어하는 행동에 대해서 가르칠 필욘 있잖아' 하는 마음이 부딪힌다. 정말 사소하지만, 두 마음이 끝없이 저울질하는 육아의 작은 순간들이 있다.

이 와중에, '아니 이게 무슨 문제야, 사춘기 자녀 키우는 엄마들이 보면 배를 잡고 웃겠네'하는 마음과 '그때그때마다의 힘듦이 있는 거지 뭐 누가 뭐라 할 수 있어?' 하는 마음도 충돌하네!





화려한 이불이 감싸버린 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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