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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Nov 26. 2021

당신의 '아무튼'은 무엇입니까?

'아무튼,000' 글쓰기를 하면서



제철소, 코난북스, 위고. 세 출판사가 함께 펴내는 에세이 '아무튼 시리즈'를 좋아한다. 아무튼, 이게 최고지! 라며 자신이 좋아하는 한 가지에 대하여 쭈욱 말하는 책. 이 시리즈를 꾸준히 읽어온 독자라면 '나는 아무튼 으로 뭘 써볼 수 있을까' 한 번쯤은 스쳐 지나가듯이라도 생각해보지 않았을까...(않았음 말구) 무궁무진한 이놈의 아무튼. 진짜 아무거나 다 갖다 붙여도 어색함이 없는 마성의 시리즈. 책이 조그맣고 얇다고 우습게 보면 안 되는데... 전에 누군가가 이런 책은 어쩌고 무시하는 듯한 말을 해서 속으로 '야 니가 써봐, 저렇게 좋아하는 한 가지로 책 한 권 쓸 수 있는지.'라고 대꾸한 적이 있다. 한 가지 소재로 책 한 권을 채우는 공력에 나는 늘 감탄한다.(비록 내가 상상한 내용으로 흘러가지 않는 챕터도 있지만 그거랑은 관계없이)






그래서 아무튼간에(?), 나의 '아무튼'이 뭐가 있을까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혼자 손가락으로 꼽아보고 있을쯤, 자기만의 '아무튼, 000'를 함께 는 모임을 발견하게 되었. 500자씩 15일, 열 명 남짓한 멤버. 이 500자가 묘했다. 오늘로 14일차가 끝났는데 이건 다 쏟아내는 것도 불가고, 생략생략 다 빼자니 또 얘기가 안 이어지고. 500자 껌이지 했는데 줄이고 정리하는데 시간이 의외로 걸린다. 구구절절 말하는 거보다 나은 거 같기도 하면서 부연설명이 너무 적은 거 같기도 하면서...


친구 한 명은 이걸 쓰고 있는 나한테, 야 너는 중급자 코스로 도약을 하려 해야지 왜 초급자 코스에 있냐고 했는데, 야... 도약 개나 줘ㅠㅠ 난 지금 도약 같은 거에 관심이 없어. 스트레스받기 싫어. 말끝마다 개기는 열 살하고 싸우고, 손 안 씻고 도망가는 일곱 살 하고 싸우고, 여러모로 난국인 다섯 살하고 싸우는 하루하루만으로도 죽겠는데 뭔 도약이냐. 재밌을 만큼만 할래. 라고 답했다.(야망 없는 편...)


남의 500자 읽는 게 또 재밌다(글쓰기 얘기를 할 때마다 말하게 됨). 이번엔 다른 사람의 '아무튼'은 무엇인지 보는 거 자체부터 기대됐다. 열흘 동안 읽으면서 모든 글이 매력있었지만 정말 '잘 쓴 글'이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내일 또 읽고 싶은 글.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하나 싶은 글.

어떤 분은 '아무튼, 겨울'을 쓰는데 나는 겨울이 싫은 이유를 대라면 당장 열 개를 댈 수 있을 정도로 겨울을 안 좋아하지만, 이 글을 읽다보면 겨울을 좋아해야 할 거 같은 느낌이, 막 설득되는 느낌이 든다.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하며 쓴 '아무튼, 엄마'를 보면서는 덤덤하게 써서 더 슬픈,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을 느끼기도 한다. '아무튼, 핑크'를 보면서는 '나 그냥 핑크 처돌이야'가 아닌, 핑크가 자길 어떻게 위로해 주었는지 에피소드를 술술 풀어쓰는 능력에 감탄하기도 한다. 내가 '아무튼 민트'를 썼다면 도대체 무슨 말을 쓸 수 있었을까!!


가끔은 우리집 안에 좋은 소재가 많단 생각도 한다. 내 것이 아니라는 게 문제라면 문젠데... 야 이거 소재 완전 좋다 아들아 '아무튼 바둑' 좀 써볼래? 남편남편 '아무튼 테니스' 좀 써볼래? 하고 싶단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둘 다 이런 쪽엔 흥미도 뭐도 못 느끼는 분들이라 그런 글을 원한다면 차라리 내가 바둑이랑 테니스를 배우는 편이 빠를 거 같다...ㅋㅋㅋ(물론 배울 생각 전혀 없음...)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나의 아무튼은 '팬심'다. 14일 동안 시간 지켜서 500자를 써낸 것만으로도 게으름뱅이 나 자신 칭찬할 일이다. 쓰는 재미와 공개하는 용기는 또 달라서, 아직 그 모임 밖에선 공개할 용기가 선뜻 나지 않는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에게 친근감은커녕 저항을 받을 거 같기도 하고(부정적인 생각을 먼저 하는 편ㅎㅎ),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댄 느낌이 들기도 하고. 일단 남은 오늘치부터 채워야지.

"아무튼, 000"라고 말할 수 있는 어떤 한 가지 정도 갖고 사는 거, 정말 좋은 일이다. 다른 사람들의 '아무튼'이 계속, 계속, 궁금할 것 같다.   




사진제공_오키로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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