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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Dec 19. 2021

소나티네가 알려준 뜻밖의 재미

욕심 내지 않아서 얻는 기쁨


아이의 사랑스러움과 육아의 고됨은 또 전혀 별개의 일이라 그걸 좀 잊는? 벗어나는? 방법으로(잊고 싶다고 잊히지도, 벗어나고 싶다고 벗어나지지도 않는 게 팩트지만) 요즘 틈틈이 손가락을 움직인다. 정신이 너덜너덜할 때 몸뚱이를 움직이면 가끔 너덜함이 좀 꿰매지는 기분이 드는데(무작정 걷기, 운동하는 날, 요리 등) 그 움직임에 손가락도 포함되는 거였다니!!





소나티네.

초딩 때 피아노 좀 배워본 사람들의 필수코스. 난데없이 소나티네를 꺼낸 이유는... 소나티네 도장깨기를 해보고 싶다는 피아노 전공자 친구가 그걸 실행에 옮기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너한텐 너무 쉬운 거 아니냐 했더니, 딱 자기 수준이라고 치기 좋다는 친구. 영상을 보내주는데 어머, 소나티네가 이렇게 좋은 곡이었다고? 싶으면서 나도 모르게 주섬주섬 오래된 소나티네를 찾게 되네?

추억의 악보. 가요도 명곡집도 아닌데 동네 피아노 학원 배경음악 같은 익숙하고 반가운 1악장 음들이 자동재생 다!! 그렇게 갑자기 신이 난 세 친구는 며칠에 하나씩 연주 영상을 주고받게 되는데...


물론 내가 치고 보니 전공자 친구의 연주만큼 편안하거나 아름답진 않았는데 뭐 당연하지 프로랑 아마추어의 스타카토, 이음줄, 속도, 박자, 트릴, 강약 조절, 여유로움, 리듬감... 등등이 어떻게 같겠어?!ㅋㅋㅋ 초딩 수준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포르티시모(건반뿌심)로 뚱땅뚱땅 치지만 기분이 꽤 괜찮다.

아이들 레슨까지 하는 친구가 이걸 딱 자기 수준이라 했을 때 처음엔 좀 의아했다. 에이 아니지. 너무 껌이잖아. 근데 연주를 주고받으며 문득 드는 생각. 얘한텐 힘 빼고 칠 수 있는 곡이 필요했던 걸지도 몰라. 100을 쏟아붓지 않고 슬렁슬렁 치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편안하고 충분한 연주. 사춘기 초입 아들과의 매일이 버거운 친구의 '빨리 피아노나 쳐야지' 하는 한마디가 나까지 막 움직이게 한다.

나도 얘 덕에, 욕심 내지 않아서 얻을 수 있는 재미를 느낀다. 좋아하는 곡이랍시고 샵 네 개 달리고 화음 제대로 짚지도 못하는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을, 최애가 즐겨 듣는 곡이랍시고 플랫 다섯 개 달린 '스텝핑 온더 레이니스트릿'을 굳이 굳이 연습하면서 한 페이지도 제대로 못 치고 아몰라 그만두기 일쑤였는데. 너무 공들이지 않고 한 악장씩 어쨌든 완성해내고 보니 좀 느려도 더듬어도 재미가 보인다. 연습 의욕도 생긴다.


목표를 높게 잡아 뭘 이루어 도약의 기쁨을 느껴야 할 때가 있고, 난이도를 조금 낮춰서 그저 시작하고 작은 완수를 쌓는 보람을 느껴야 할 때가 있는 것 같다. 쓸 때도 읽을 때도 칠 때도 그렇네. 뭐 지금 상태라면 전자의 날이 딱히 올 것 같진 않지만...



자동재생 되는 사람,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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