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점점 깨끗해졌다. 한때 사람들은 창문 밖이나 성 밖으로 쓰레기와 오물을 던졌고, 거리는 악취로 가득했다. 귀족들은 진한 향수로 악취를 덮었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도시는 더욱 심했다. 오염된 환경은 흑사병 등 전염병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도시가 깨끗해지기 시작한 것은 상하수 시설이 발달하고 위생 개념이 확립되면서부터다. 1596년 영국의 존 해링튼 경이 최초의 현대적인 수세식 변기를 고안했다. 약 200년 후인 1778년 조지프 브라마가 밸브 장치가 개선된 변기를 내놨다. 현대식 수세식 화장실은 19세기 중반부터 유럽과 미국에서 개발되기 시작했으며, 1852년경 미국의 한 호텔에 설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오물과 쓰레기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폐기물 관리 시스템이 발전하면서 집 안에 화장실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위생 시설의 개선은 도시 환경을 점차 깨끗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이 원리는 다른 곳에도 적용된다. 자동차는 배기가스를 정화하지 않으면 도로가 오염되고, 폐수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강이 더러워진다. 음식물 쓰레기를 방치하면 집 안에 악취가 진동한다. 집과 도시를 넘어 사람들은 이제 지구환경, 나아가 우주쓰레기까지 고민할 만큼 생각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불쾌한 감정을 다룰 수 있을 때, 비로소 그것을 가까이할 수 있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자극과 반응이 일어난다.
감정이 쏟아진다. 기쁨, 불안, 분노, 후회, 질투, 두려움… 그런데 이런 감정들을 적절한 방식으로 배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마치 쓰레기가 쌓여 악취가 나듯, 우리의 내면도 점점 탁해진다. 쌓이고 쌓이다 보면 결국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워진다. 감당할 수 없는 불쾌한 감정을 만만한 사람에게 그대로 표출하는 것은, 귀족들이 성벽의 돌출된 곳에서 용변을 보고 성벽 아래로 떨어뜨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감정을 배출할 수 있는 적절한 공간이 필요하다.
컴퓨터를 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아이콘이 있다.
바로 ‘휴지통’이다. 사진을 찍고 이미지를 편집하는 프로그램에도 휴지통이 있다. 불필요한 파일을 삭제할 때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공간. 만약 이 휴지통이 없다면? 용량 제한에 걸려 더 이상 사용을 못할 것이다.
우리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문제 상황은 물론 일상생활 중에도 우리는 여러 가지 감정을 만난다. 이때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쌓아두면 뇌도 지친다. 번아웃이 오기도 한다. 모든 감정을 그대로 다 끌어안고 있으면 밖으로 표출되는 활동이 없어도 내부에서 에너지를 다 써버려 고갈된다. 낮은 효율성과 생산성에 보상 또한 없으니 몸은 더 피곤하다.
우리의 감정을 정화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거나, 운동을 하거나, 대화를 나누지만, 나는 ‘난화 그리기’를 추천한다.
난화란 아무 목적 없이 종이에 선을 긋는 것이다.
24색 48색 크레파스를 펼쳐놓고 지금 이 순간 나의 감정과 비슷한 색을 꺼내서 집는다. 하얀 도화지 위에 크레파스를 대고 손이 가는 대로 무작정 움직여본다. 가로, 세로, 곡선, 직선, 속도가 빨라지기도 하고 느려지기도 하고, 위로 아래로... 진하게, 흐리게... 동그라미, 네모, 세모... 머릿속이 복잡할 때, 감정이 쌓였을 때, 특별한 생각 없이 색연필이나 크레파스를 들고 선을 그어보자. 색깔 있는 재료가 없다면 연필도 좋다. 신기하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감정이 복잡하게 소용돌이칠 때, 하루에 한 번은 꼭 난화를 그렸다. 처음엔 투박하고 거칠었다. 정신없이 뒤엉킨 선들. 내 마음속만큼이나 엉망이었다. 감정 덩어리가 뭉친 날은 몇 시간이고 앉아서 북북 색칠하며 난화를 그렸다. 한참 동안 계속하다 보면 선이 달라졌다. 머릿속이 맑아졌다. 복잡했던 감정이 조금씩 흘러나오는 기분이었다.
감정은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나’라는 배수관을 타고 흘려보내야 한다. 화를 참는다고 해서 분노가 사라질까? 주변까지 불 붙이면 속 시원해질까? 더 복잡하고 통제 불가한 상황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감정은 억누르거나 전이하는 것보다 적절한 방식으로 해소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하루 5분만이라도 감정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감정을 정리한다고 하면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믿기 쉽다. 하지만 때로는 생각을 멈추고, 손을 움직이는 것이 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종이 한 장을 꺼내 의미 없이 선을 그려보자. 펜 끝을 따라 흐르는 선들이 우리의 감정을 부드럽게 흘려보낼 것이다. 그렇게 하루를 정리하다 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차분해질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깨닫게 될 것이다. 마음에도 휴지통이 필요하다는 것을.
Clostridioides difficile이라는 병원균을 퇴치하기 위해 지금까지는 항생제를 처방해 왔다. 하지만 이 방법은 오히려 Clostridioides difficile의 재발을 초래하는 악순환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이식하는 치료법이 도입되었으며, 이를 통해 환자의 80~90%가 완치되는 놀라운 결과가 보고되었다.
예술작품이 단순히 밝고 즐거운 정서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작품 속에는 작가가 경험한 고립과 불안, 슬픔과 고통이 녹아 있다. 하지만 그런 작품이야말로 현재의 사람들과 깊이 공명한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위로와 감동을 주는 것이다. 건강한 사람의 장내 미생물이 다른 사람에게 약이 되듯, 건강하게 표현된 감정은 치유와 영감을 선사한다.
마음이 지치고 무거운 날, 빈 종이 앞에 앉아보자. 손끝에서 흐르는 선이 감정을 어루만지듯, 우리의 몸도 작은 균형 속에서 회복될 수 있다. 화가 이중섭이 은박지에 그림을 그리며 마음을 달랬듯, 손에 잡히는 종이를 펼쳐놓고 가만히 바라보자. 그것은 마치 우리의 장이 몸의 독소를 걸러내듯, 감정을 정화하는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