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3일 밤, 퀵퀵 물류센터 앞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눈발이 조명 빛에 부딪혀 공중에서 부서졌다. 입구 위 슬로건은 색이 바래 있었다.
“오늘 주문, 내일 도착.”
투명한 글씨는 천사의 축복 같지 않았다. 오히려, 어딘가 협박처럼 느껴졌다. 나는 앱을 켰다. 출근 체크. 김효숙, 서른하나, 계약직, 파트명, 야간조. 나의 정보는 시스템 속 데이터 한 줄도 되지 않았다.
“스캔율 100% 목표입니다.”
캡틴의 목소리는 너무 깨끗했다. 마치 기계음 사이로 날아온 명령처럼 들렸다. 50여 명의 근무자들이 줄을 섰다.
피크 시즌, 마지막 며칠.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어떤 것도 말할 정신이 없었다. 컨베이어 벨트의 웅웅 거림이 대신 공간을 채웠다. 벨트가 움직였다. 모든 것이 동시에 깨어나는 순간. 바코드 스캐너 불빛이 눈앞을 스쳤다.
왼손으로 스캔,
오른손으로 밀기.
끊임없이 이어지는 ‘삑—’.
화면에 내 정보가 깜빡이며 쏟아졌다.
<오늘 목표 대비 92%. 속도 개선 필요.>
얼굴은 뜨거워지고, 등골은 얼어붙었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기계 사이에 끼인 무언가가 된 기분이었다. 숨이 마스크에 들러붙고, 손목 보호대가 젖었다.
동일한 작업복, 동일한 존재감. 서로에게 동료애는 없었다. 우리는 함께 있지만 서로를 몰랐다. 그저 스캐너 불빛 아래에서 움직이는 그림자일 뿐이었다.
속도와 효율 목표치만이 존재하는 공간, 인간보다 물류 박스가 먼저였고 시스템은 멈추지 않았다.
“사람 쓰러졌어요!”
새벽 1시 48분, 반대편 라인에서 비명이 터졌다. 그러나 벨트는 멈추지 않았다. 기계음이 오히려 또렷하게 울렸다.
감독관이 달려왔다.
“멈추지 말고 일하세요. 구급차 오면 처리합니다.”
‘처리.’
사람이 아니라, 물량을 처리하듯. 들 것이 지나갔다. 늘어진 팔, 창백한 손끝에 스캐너 끈이 흔들렸다.
누군가 중얼거렸다. “심정지… 올해만 세 번째야.”
이 말은 컨베이어 벨트 아래로 빨려 들어갔다.
새벽 2시 30분, 관리자 방송.
“시스템 점검이 잠시 있겠습니다.”
그 ‘점검’은 누군가의 죽음을 의미했다. 역시 벨트는 멈추지 않았다. 내 손목 스캐너 파란 불빛은 죽은 이의 손에서도 여전히 깜박이고 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이브, 포털 메인 기사.
퀵퀵 물류센터 50대 노동자 사망
회사 측 '정상 근무 중 돌연사.'
옆 직원 속삭였다. “지난주에 죽은 분… 3라인이었대.”
이성민. 53세. 무기계약직을 꿈꾸던 분이었다. 12시간 근무도 견딘 사람. 그러나 시스템은 그의 존재를 단 한 줄 기사로 덮었다.
댓글은 잔인하게 가벼웠다.
“그 정도도 못 버티면 다른 일을 해야지.”
“그래도 새벽배송이 편하잖아.”
나는 휴식시간이 끝나기 전에 휴대폰을 덮고 일어났다. 다시 박스를 들었다. 며칠 전까지 함께 일하던 동료가 사라진 자리에는 이미 새로운 사람이 서 있었다. 같은 위치, 같은 동작, 같은 속도, 다른 사람.
물량이 가장 많은 시즌. 손목에는 멍이 퍼지고, 손끝은 무감각했다. 나는 벨트에서 잠시 손을 떼고, 나만의 근무일지를 꺼냈다. 오늘 스캔 상자 4,627개. 근무시간 6시간 28분. 효율 97%. 쓰러진 동료 이름과 당시 회사의 조치까지 기록했다.
서버 속 데이터는 회사만을 위한 기록일 뿐, 내 피로는 서버에 저장되지 않는다. 노트에 나만의 기록을 남기며 아직 살아있는 오늘의 흔적을 남겼다.
달빛 아래, 물류 트럭이 줄지어 떠났다. 오늘 자정까지 주문해도 내일 도착하는 번개배송을 자랑한다. ‘오늘 주문, 내일 도착’ 이 문구가 누군가의 마지막 숨을 싣고 떠나는 것처럼 보였다.
계단 옆 눈송이 장식과 반짝이는 글씨.
“메리 크리스마스. 퀵퀵맨 여러분 감사합니다.”
아무도 감사하지 않는 세상을 조롱하는 듯했다.
잠깐 멈춘 공기, 다시 스캐너 불빛. ‘삑—’ 소리가 이어졌다. 심장 모니터 마지막 파동과 닮았다.
새벽 3시 40분, 내 라인에서 누군가 휘청—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 여직원 울먹이며 외쳤다.
“119 불러요!”
관리자는 무전기로 대답했다.
“라인 멈추지 마세요. 물량 밀립니다. 대체 인력 투입합니다.” 숨이 끊어지는 소리는 기계음 속에 묻혔다. 쓰러진 동료의 가슴이 미세하게 떨다 멈췄다.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내 스캔율 떨어지겠네.’
여기가 바로, 사람보다 기계가 먼저인 세상이었다.
퇴근 버스에 앉아서야 긴 호흡을 내쉬며 휴대폰을 켰다.
아프리카의 한 엄마가 등장하는 국제 긴급구호 영상. 아이에게 오염된 물을 먹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 화면 위로, 오늘도 산재 사망을 무릅쓰고 출퇴근하는 피곤한 내 얼굴이 겹쳐 보였다. 나와 그 아이, 그리고 아이의 엄마까지. 모두 부실한 시스템과 부실한 생존 사이에 놓여 있었다.
오늘 신문 1면 기사 제목
‘새벽에 일할 권리 왜 뺏나!’
문제의 핵심은 목숨을 담보로 일하는 시스템이다. 새벽배송 찬반이 아니라 안전한 근무환경을 우선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눈앞 트럭 옆면, ‘오늘 주문, 내일 도착’이 서늘하게 비웃었다. 수천 개 상자 아래, 누군가의 숨과 땀, 멈춘 심장이 묻혀 있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블랙 라인.
하얀 트럭과 검은 시스템이 살아 있는 새벽.
휴대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귓가에 남은 소리.
‘삑—’
죽음과 노동, 생존과 시스템, 이 모든 것이 조용히 이어지는 새벽의 단 하나 리듬이었다.
ps.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후 매출이 급감했다. 회사는 무급휴가라는 이름의 ‘관리’를 시작했다. 매출이 생명보다 먼저라는 기업가치가 또렷하게 드러났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블랙 라인>은,
물류센터 야간 근로자들의 반복되는 사고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 인간보다 시스템과 매출이 우선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아프리카의 오염된 식수를 먹는 이들처럼, 선진국이라는 오늘의 한국에서도 눈앞의 생존과 위험을 강요받고 있는 현실을 담았다.
새벽배송은 안전한 근무환경이 전제가 되어야 함을 시사하며, 개인정보 유출과 같은 사건 이후에야 시작되는 최소한의 변화는 생명의 가치가 얼마나 쉽게 무시되고 있었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