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5 [소설] 얼어붙은 집

<크리스마스의 악몽 변주>

by 윤지안


<시놉시스>

한겨울의 밤,
한 남자가 눈보라 속을 뚫고

오랜만에 고향집으로 돌아온다.
집은 이상할 만큼 차갑고,
오래된 벽지 틈으로 바람이 스며든다.
그는 난방을 켜고 불을 지피려 하지만,
온도는 전혀 오르지 않는다.
얼음처럼 식은 공기 속에서,
그는 조금씩 ‘추위의 근원’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것은 단순한 온도의 문제가 아니라,
그가 두고 온 사람들의 기억이었다.
따뜻해야 할 방 안에서
그는 점점 자신이 아닌 어떤 존재의 숨결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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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집>>

(크리스마스의 악몽 변주)

1. 귀향

밤 열한 시,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
도시 외곽의 가로등은
눈보라 속에서 거의 사라져 있었다.
승훈은 스티어링 휠을 꼭 쥔 채 도로를 뚫고 있었다.
차 안의 히터는 한참 전부터 식어 있었다.
차창에는 성에가 끼어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면… 그 집도 아직 그대로겠지.”
그의 입에서 새어 나온 숨이 하얗게 흩어졌다.
십 년 만의 귀향이었다.

그가 떠나던 해,
아내와 아이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에 죽었다.
보일러 배관이 터지며 가스가 새어 나왔고,
그는 출장 중이었다.
그날 이후, 그는 한 번도 그 집에 가지 않았다.
겨울이 올 때마다,
손끝이 유난히 차가워지는 병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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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집의 숨결

눈 덮인 골목 끝, 낡은 2층 양옥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붕에는 얼음 고드름이 길게 자라 있었고,
현관문은 녹슨 경첩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안은 숨이 막힐 만큼 차가웠다.
공기가 얼음처럼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승훈은 난방을 켜려 보일러실로 갔다.
그러나 버튼은 눌러도 반응이 없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이상하네…”
그는 거실로 돌아와 벽난로를 살폈다.
검은 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벽난로 옆에는 낡은 성냥과,
오래된 장작이 두어 개 있었다.
그는 불을 붙이려 성냥을 켰다.
짧은 불꽃이 튀었으나, 곧 사라졌다.
성냥은 차가워서 불이 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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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창문 위의 손자국

그는 잠시 잠이 들었다가 이상한 소리에 깼다.
창문이 흔들리고 있었다.
눈보라가 유리창을 때리는 소리 속에서,
분명히 손바닥이 유리를 두드리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툭, 툭.
승훈은 몸을 일으켰다.
창문 쪽으로 다가가자,
서리 낀 유리 위에 손자국 하나가 찍혀 있었다.
작은 손이었다. 아이의 손만 했다.

“... 민지?”
그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한동안 그는 그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름이 방 안에 울려 퍼지는 순간,
공기가 더욱 싸늘해졌다.
서리 위의 손자국이 조금씩 움직였다.
유리 바깥이 아니라, 안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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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목소리

밤은 깊었다.
벽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그건 물이 아니었다.
벽지 아래에서 무언가 움직이고 있었다.

“아빠...”

그 목소리를 들었을 때, 그는 얼어붙었다.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
아이의 목소리.

“아빠, 춥지 않아?”

승훈은 소파 뒤로 물러났다.
벽지 틈 사이에서 하얀 손가락이 나왔다.
그 손끝이 벽을 긁었다.
그 소리가 너무 차가워서, 마치 금속이 긁히는 듯했다.

“따뜻하게 해 줄게...”
아이가 속삭였다.
그 순간, 거실의 온도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10도, 5도, 0도, -5도…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폐 속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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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억의 방

승훈은 허겁지겁 2층으로 올라갔다.
문이 하나 있었다.
민지의 방.
문을 여는 순간, 냉기가 폭발하듯 밀려 나왔다.

방 안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전등줄에 달린 조그만 눈사람, 침대 위의 인형,
그리고 벽에 걸린 가족사진.
사진 속의 세 사람은 웃고 있었다.
그런데 사진의 표면이 얼음처럼 뒤틀려 있었다.
그의 얼굴만 뭉개져 있었다.

그는 사진을 집어 들었다.
손끝이 닿자마자 피가 얼어붙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사진 아래쪽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아니, 눈물처럼 보이는 얼음 조각이었다.
그가 그 조각을 내려다보는 순간—

> “왜… 떠났어요?”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내의 목소리였다.
그는 천천히 돌아봤다.
그녀가 서 있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 창백한 입술.
눈은 텅 비어 있었다.

“당신이 늦게 돌아와서... 우리, 너무 추웠어.”
그녀가 한 걸음 다가왔다.
한 걸음마다, 바닥이 얼어붙었다.
그녀의 발밑에서 얼음꽃이 피어났다.

“이제 괜찮아.
다시 우리랑 함께 있으면, 따뜻해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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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얼음의 품

그는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문은 닫혀 있었다.
손잡이를 잡자 손가락이 얼어붙었다.
피부가 금세 하얗게 변했다.
그는 문을 쾅쾅 두드렸다.
“나가게 해 줘!”

“왜 나가려고 해요?”
아내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눈처럼 무표정했다.
“여기, 따뜻한데…”

그녀가 팔을 벌리자, 공기가 일순간 정지했다.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숨소리조차 얼었다.
승훈은 천천히, 그녀의 품으로 끌려갔다.
그 품은 차가웠다.
하지만 점점, 오히려 익숙한 따스함처럼 느껴졌다.
그는 저항을 멈췄다.

> “이제 괜찮아.
우리 다시, 같이 있는 거야.”

그는 눈을 감았다.
눈썹 위에 하얀 서리가 내려앉았다.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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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다음날

이튿날 아침,
구조대가 그 집을 발견했을 때,
모든 것이 얼어 있었다.
거실, 부엌, 벽, 공기, 그리고 사람.

승훈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얼어붙은 얼굴로,
무언가를 안고 있는 자세였다.

그의 품 안에는
두 개의 하얀 형체가 있었다.
아내와 아이의 실루엣.
얼음 속에서도,
세 사람의 얼굴은 모두 미소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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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끝의 끝

한 달 뒤, 그 집은 철거되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에도,
그 자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말했다.

“밤마다, 눈 오는 날이면
그 집이 다시 생긴 것처럼 보여요.”

그리고 누군가 창문을 보면,
서리 낀 유리 위에 이런 글씨가 남아 있다고 했다.

> “춥지 않아요,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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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1. ‘추위’의 정체 ― 물리적 온도가 아닌 감정의 상태

작품 전반에서 반복되는 추위, 얼음, 서리, 온도 하강은
단순한 환경 묘사가 아닙니다.
이는 승훈의 정서가 멈춘 상태,
즉 시간이 사고의 밤에 고정된 심리를 상징합니다.

난방이 켜지지 않음 → 현실로 돌아갈 수 없음

불이 붙지 않는 성냥 → 의지로는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

집 전체가 냉동된 공간 → 기억이 보존된 무덤


이 집은 ‘유령이 사는 집’이라기보다,
승훈 자신의 내면에 봉인된 기억의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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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집은 기억 그 자체다

집의 구조는 곧 승훈의 기억 구조입니다.

1층: 일상과 회피

2층: 민지의 방 → 가장 깊은 죄책감의 핵

벽지 아래, 창문 안쪽 → 억압된 기억이 내부에서부터 드러남


특히 손자국이 ‘유리 안쪽’에서 찍힌 장면은 중요합니다.
이 공포는 외부 침입이 아니라, 내면에서의 침투입니다.

즉, 망령들은 그를 찾아온 것이 아니라
그가 그들을 떠올렸기 때문에 존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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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이와 아내는 ‘원혼’이 아니라 ‘죄책감의 화신’

이 작품의 탁월한 점은
아내와 아이를 악령으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위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말합니다.

“춥지 않아?”

“따뜻하게 해 줄게”

“다시 우리랑 함께 있으면…”


이 말들은 저주가 아니라,
승훈 스스로에게 해온 자기 합리화의 언어입니다.

> “내가 그날 집에 있었더라면”
“차라리 같이 갔으면 덜 아팠을 텐데”



그의 죄책감은 결국
사랑의 언어를 한 파괴적 충동으로 변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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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진 속 ‘뭉개진 얼굴’의 의미

사진에서 승훈의 얼굴만 일그러진 것은

아주 명확한 상징입니다.

그는 더 이상 그 가족의 ‘일원’이라고 느끼지 못함

동시에,

그 가족의 죽음에서 스스로를 지워버리고 싶어 함

살아남은 자의 정체성 붕괴


즉, 그는 살아 있음 자체를 배신으로 인식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그는 살아 있는 몸을 포기함으로써
비로소 ‘사진 속 인물’로 복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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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결말의 미소 ― 구원이자 파멸

마지막 장면은 공포이면서도,
슬프게도 승훈에게는 해피엔딩입니다.

얼어붙은 미소

세 사람이 함께 있음

“춥지 않아요, 이제.”


이 문장은 독자에게는 섬뜩하지만,
승훈에게는 완전한 안식입니다.

그는 마침내

죄책감을 멈추고

시간을 다시 흐르지 않게 만들고

혼자가 아닌 상태로 고정됩니다.


즉,
이것은 자살을 ‘재회’로 인식하는 심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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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크리스마스 변주의 의미

크리스마스는 원래 탄생·온기·가족의 상징입니다.
이 작품은 그 상징을 정반대로 사용합니다.

탄생 → 죽음

온기 → 동결

가족 → 죄책감의 형상


그래서 이 작품은 공포라기보다
크리스마스라는 계절이 유발하는 상실의 증폭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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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종합 해석 한 문장

> 《얼어붙은 집》은
사랑하는 이를 잃고 살아남은 사람이
기억 속에서만 따뜻해질 수 있었던 비극에 대한 이야기다.


유령은 없다.
괴물도 없다.
오직 떠나지 못한 기억과,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의 공포만이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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