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 [에세이] 다시 또 크리스마스

by 선후





'We wish a merry christmas.'





가장이 불교인 집안에서 꿈도 꿀 수 없었던 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나의 크리스마스에는 '크리스마스'라는 단어도 케이크도 선물도 없었다. 그날은 우리 가족에게 예수의 탄생이 아닌 가장의 빠른 취침을 기도해야 하는 날이었다. 아버지의 말마따나 '예배당 것들'의 축제에 우리 가족은 낄 수 없었다. 아버지의 퇴근길에 그 어떤 거슬리는 것도 없기를. 아버지가 돌아오셨을 때 내가 교회에 놀러 갔다가 온 사실을 들키지 않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그놈의 달란트가 문제였다. 방구석에 떨어져 있던 달란트. 선물로 받은 과자꾸러미에 들어있었던 것 같다. 예수님은 아무래도 나를 지켜주고 싶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달콤한 과자 몇 개 받아먹은 죄로 다시는 교회에 가고 싶지 않을 만큼 호되게 벌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감흥없이 성인이 되어버린 나에게도 첫 크리스마스의 설렘이 생겼다. 아니 새로운 '우리 가족'에게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태어난 지 2달 된 작은 딸. 그 아이가 맞이할 첫 크리스마스. 결혼하고 첫해는 남편이 일 때문에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두 번째 해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야 우리 가족은 첫 크리스마스를 함께 맞이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돈이 문제였다. 통장잔고 3만 원 남짓. 케이크를 사기에는 너무 과감하고 트리를 사기에는 무모한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 아침이면 남편이 돌아올 텐데.. 나는 최대한 머리를 굴려야 했다.


조그마한 아이를 가슴팍에 안고서 동네를 돌았다. 군사지역에 있는 작은 시골 동네라 딱히 좋은 수는 없었다. 나는 마트에 가 브라우니 만들기 세트를 하나 집어왔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곧 해가 지나는 큰 달력을 찢어내 널찍한 뒷면에 크리스마스트리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 큰 달력을 거의 다 써갈 무렵 아침해가 밝아오고 있었고 완성된 트리에 나름 뿌듯해했었다. 밤새도록 신생아 아이 돌보랴 꾸벅꾸벅 졸면서 완성 한 우리의 첫 크리스마스트리. 비싸고 멋진 트리는 아니지만 나에게 낭만이 없으랴 돈이 없을 뿐이지. 내 아이의 첫 크리스마스. 우리 가족의 첫 크리스마스는 대단한 프로젝트인양 나를 무척이나 설레게 했다.


'띵동'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런데 집 안으로 들어온 것은 남편인지 좀비인지 모를 지친 껍데기 하나였다. 짐을 내려놓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껍데기. 군화도 벗지 못한 채 애써 짓는 미소로 엉덩이를 간신히 걸쳐 앉아 한마디 했다.


"저게 뭐야?"


"여보! 메리크리스마스야! 내가 돈이 좀 부족해서 직접 그렸어. 브라우니도 있는데 한입 먹어볼래? 맛있게 잘 된 것 같아!"


"아구. 애썼네. 근데 나 너무 피곤해서 좀 쉴게"


그렇게 첫 번째 크리스마스는 끝이 났다. 나는 남편을 꽤나 잘 알고 있다. 폼생폼사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남편에게 크리스마스의 낭만 따위가 들어올 틈이 없었을 것이다. 사회에서 잘 나가다가 빚만 잔뜩 지고는 뒤늦게 입대를 하게 되면서 직업군인으로 전향한 케이스였다. 생활비도 친정에서 눈치 보며 빌려다 메꾸고 있는 가난한 일상에 지치고 그깟 트리하나 해주지 못한 것이 가슴을 콕콕 찔러 두 눈을 질끈 감고 싶었으리라. 그리고 그는 용기를 내어 정말로 눈을 감아버렸다. 그렇게 우리의 첫 번째 크리스마스는 그의 마지막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그가 떠난 후. 나는 다시 또 크리스마스에 대한 감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날은 그냥 술을 먹는 날 중에 하루였고 예수고 뭐고 촉촉해지기만 하면 되는 그런 날이었다. 아이가 조금 컸을까 어린이집에서 크리스마스 행사를 한다고 크리스마스 카드를 가지고 왔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께 전하는 희망사항이었다.


"엄마 우리는 왜 트리 없어?"


"집도 좁고... 뭐... 트리는 왜?"


"착한 일 하고 자면 할아버지가 트리 밑에 선물을 준데. 그래서 트리가 필요해."


아이의 얼굴에서는 그를 닮은 작은 내가 보였다. 그 눈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깊은 곳에서 잊고 있던 감정들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어린 나에게도 그에게도 또 우리의 너에게도 만회할 수 있는 아주 아주 큰 트리를 사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우리 집에는 다시 또 크리스마스가 왔다.






'We wish a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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