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알 유희>, <유리 반지>

by 산이세라

'마침내 육중한 문을 열고 샘물 곁에 앉아 고요하고도 맑은 물을 들여다보며 전율했다. 조그마한 돌멩이를 들어서 유리 같은 수면에다 던졌다. 아직도 그 마술 같은 놀이가 힘이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유리처럼 맑은 파문들이 소리 없이 물 위에 번졌다가 되돌아오면서 교차하고 이상스럽지만 법칙에 따른 무늬를 이루었다. 나는 비로소 알았다. 앞으로 나의 생애를 이끌어 갈 것은 뒤엉키고 어두컴컴하며 괴로움에 찬 인간적인 격정이 아니라는 것을. 맑고도 냉엄한 정신의 법칙이 바로 나의 생애를 끌고 가리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됐던 것이다.' (잔잔한 가슴에 파문이 일 때 / 루이제 린저)


'졸'이라는 나라라는 제목으로 잊을 수 없는 장소에 대해 썼던 글에서 루이제 린저의 잔잔한 가슴에 파문이 일 때 책의 마지막 문장을 가져와 글의 마지막에 인용했던 부분이다.

중학교 때에 읽었던 것 같은데 여고생이었던 시절의 내면에까지 상당한 부분으로 자리 잡아 영향을 끼쳤던 책이었다.

이 책을 좋아했던 친구에게 선물했는데, 내가 읽은 범우사 문고판으로는 구할 수 없어 어렵게 구했던 책이 '유리 반지'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었던 기억이다. 얼핏 훑어봤던 내용은 내가 읽었던 그 책과 전혀 다른 느낌의 번역이었던 것 같아 실망스럽기도 했던 기억...

그런데 그 제목만큼은 기억에 남아, 헤세의 <유리알 유희>와 계속 혼동이 되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그 혼동 때문에 헤세의 <유리알 유희>를 평생 읽어보고 싶어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인연이 아니었던 건지, 몇 번씩 빌려보기는 했지만 한 번도 끝까지 다 읽지는 못했던 책을 이번 겨울에 드. 디. 어. 끝까지 다 읽었다.

헤세는 결국 방황의 끝에 답을 찾아내어 이 책에서 그걸 알려주는 건 아니었을까 가져왔던 환상은 일단... 내 이해의 한계 내에서는 아니라는 결론. 아니, 헤세의 결론에 공감 안 되는 어정쩡한 상태로 책은 끝나버렸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인지, '이력서'라는 제목으로 세 편의 짧은 글을 덧붙였지만, 그전의 책에서 크게 진전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게르트루트>에 이미 등장하는 세 가지 유형의 사람들, 쿤과 무오트, 그리고 타이저는 그 이후의 책에서도 끝까지 계속 반복되어 나온다. 때로는 쿤의 유형인 유제프 크네히트가 죽고(유리알 유희), 때로는 무오트나 골드문트가 죽는다.(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타이저의 유형은 황야의 이리에서 파블로, 모차르트와 같은 명랑성으로 대변된다. 헤세의 책에서 죽지 않고 이 세상과 유머로 타협해 적당히 잘 살아가는 부류는 파블로, 타이저와 같은 사람들인 듯하다. 마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책에서 비관에 빠져 있던 소세키가 '풍자'적인 글을 쓰며 명성을 얻고 세상과 적당히 손을 잡은 것처럼 보이는 유형으로 변신한 것처럼 보이는 그런 유형이라고 해야 할까. 세상의 비관을 극복할 길이 없어 유머, 풍자, 해학으로 극복하는... 그건 우리나라에 존재해 왔던 정서와도 비슷하다. <황야의 이리>에서 비관적인 자신의 상황을 그런 식으로 극복하고 돌파해보려고 했던 헤세의 의지가 보이지만, 파블로의 유형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유리알 유희에는 한 인격체로 더 이상 묘사되지는 않는 것 같다. 단지 '유희', '명랑성'이라는 언어로만 남아 있던가... 아니면 유리알 유희에서 무오트와 같은 유형인 폴리니오의 아들 티토가 그런 유형으로 짧게 등장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마치 마지막으로 남겨진 희망처럼...


잔잔한 가슴에 파문이 일 때의 마지막 문장은, 인간적인 격정을 벗어나 맑고도 냉엄한 법칙을 따를 것이라는 결심을 보여주면서, 화자는 결국 자살하게 되는 무오트의 길에서 쿤의 길로 돌아서는 듯하다.

유리처럼 맑은 파문이 법칙에 따른 무늬를 이루는 것과 같은 냉엄한 정신의 법칙... 아마도 그래서 '유리 반지'라는 제목으로 잠깐 번역이 되었었는지 모르겠는데, 루이제 린저가 결심한 그 정신의 법칙은 헤세의 '유리알 유희'의 법칙과도 연결되어 크네히트가 평생 걸었던 길이 그러한 길이기도 하니, 두 책의 제목이 단지 '유리'라는 글자 때문에만 혼동되어 끌렸었던 건 아닌 듯하다.


문학을 통해 작가들이 답을 알려줄 것을 기대하기보다는, 그들의 고민과 질문을 통해 같이 질문하고 생각해 보게 된다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할 듯하다. 그런데 뭔가 그들은 결국 비밀을 발견했고 그들이 발견한 것을 명쾌하게 알려주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며, 토마스 만과 헤세의 발자취를 따라갔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야 '철학'쪽으로 발걸음을 조금씩 디뎌보고 있으니, 너무 늦은 걸까 적당한 때에 이른 걸까


생각해 보면, 젊은 날 이런 책들을 읽었더라면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을 거라는 건 명백하니... 몇 번씩이나 유리알 유희를 읽어보려고 빌려왔지만 읽지 못했던 게 너무 당연하게 느껴지고, 겨우 읽었더라도 그때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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