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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이세라 Dec 26. 2023

엄마 정체성 15년... 그 후...

< 2 >

"결혼을 하고, 셋을 이루고, 하루하루 시간과 몸과 마음을 저 드넓은 세상보다는 우리의 울타리 안으로 끊임없이 쏟아붓는 일은 그 자체로 쉽지 않은 일임은 분명하다. 이 일은 무엇보다도 끊임없이 질문을 하게 만든다. 이 시절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아이를 키운다는 건 어떤 가치가 있으며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는 일인지, 무엇으로부터 쫓겨나 무엇을 박탈당했으며, 어디로 진입해 어떤 삶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매일같이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무엇을 왜 견뎌내고 있고, 무엇을 위해 무엇을 포기했고, 무엇을 향해 살아가고 있는지 계속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 질문의 끝이 후회나 잘못, 절망이나 실패가 되지 않으려면 아무래도 우리 셋은 함께 이 시절을 이겨내야만 한다."

-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 바로 곁에 있는 사람, 82년생 김지영 / 정지우>


위의 구절을 읽고 나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저 드넓은 세상과 우리의 울타리 안과의 비교 의식. 아이를 키운 다는 것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 끊임없이 의미부여를 해야 하고,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인식해야 하며, 쫓겨나고 박탈당한 기분을 느낀다는 것.

정지우 작가가 말한 이 구절은, 아마도 아이를 키우며 세상에서 소외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 엄마들의 생각을 대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쫓겨나지 않았고, 박탈당하지 않았다. 나는 울타리 안에서 더 소중한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저 세계를 내가 스스로 박차고 나왔고, 더욱 소중한 보물을 박탈당하지 않기 위해 세상을 스스로 등졌다. 그리고 그 결정에는 15년의 세월이 지나고 난 지금도 여전히 조금의 후회도 없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몰랐다. 그때의 나도 당연히 세상에서의 나의 일, 나의 직업을 아이로 인해 희생해서는 안 되는 것, 당연히 지켜내야만 하는 거로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소중히 생각할 만큼 가치 있는 일도 아니었는데, 그 속에 휘말려 있을 때는 그게 내 세계의 전부인 줄 알고 있었던 거다.

아이를 낳기 전에, 이미 결혼해서 육아까지 어느 정도 졸업했던 친구 두 명과 만났는데, 그 친구들이 아이 낳으면 일은 어떻게 할 건지 물었고, 그때는 당연히 일을 계속할 거라고 어렵지 않게 말했었다.

아이는 누가 키우냐고 물었을 때 또한 너무도 어렵지 않게 어린이집에 보내면 되지라고 대답했다.

쉽게 말하는 나의 답변을 들으며 친구들이 웃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 웃음의 뜻을 이제는 뼈저리게 이해하지만... 그때는 그 웃음의 의미를 전혀 몰랐었던 것 같다.


육아 휴직을 하고... 사실 휴직 기간 동안 계속 고민을 했다.

아이와 이렇게 떨어지기가 싫은데, 휴직이 끝나면 일을 꼭 해야만 하는 것인지 일하는 엄마에 대해 나오는 책은 전부 빌려보면서 치열하게 고민했다.


지금은 그때의 나에게 정확히 조언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고민은 시간 낭비였다. 그런 책을 읽을 동안 그 조그마한 아이를 더 많이 바라볼걸... 오직 그러지 못했던 것만이 후회스러울 뿐이다.

나에게 그렇게 조그만 아이가 옆에 있을 시간은 찰나처럼 짧을 테니... 그런 책을 보면서 고민하는 동안 차라리 그 귀여운 아기를 더 많이 바라볼 것을...

그 어떤 음악보다도 사랑스럽고 어떤 예술보다도 아름다웠던 그 모습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그 속에 더욱 흠뻑 빠져들었어야 했다.

어떤 음악에도 어떤 예술도 비교할 수 없는 그토록 놀라운 존재에게... 

아무리 밖에서 훌륭한 공연을 펼치는 예술가라 할지라도 내가 낳은 그 놀라운 존재를 향유하는 것보다 더 큰 행복과 충만감을 주는 것은 없었을 거다.

예술가에게 있어서 세상의 화려함과 명성이 중요할까? 진정한 예술가라면 그 모든 것들보다 오직 자신의 예술만이 소중했을 거다. 나는 아이를 통해 충만한 예술성을 얼마든지 느낄 수 있었을 테니, 다른 곳에서 찾아 헤맬 이유가 없었다.

음악을 좋아했었지만... 그 이상으로 아이에게 흠뻑 빠졌기에 나는 음악조차도 조금의 미련을 두지 않았던 거였다.

음악마저 그러했더라면 다른 그 어떤 것도 당시 아이보다 나에게 유혹적인 것은 없었을 거다. 나는 울타리 속에서 아무 미련도 없이 충만하고 행복했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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